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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커에 미쳤던 소년에서 ‘헤지펀드 왕’이 된 스티브 코헨, 미술품 수집에도 승부욕 불태우다

이영란

스티브 코헨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1947


날카로운 금테 안경에 옥니, 과묵한 표정의 미국의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Steven A.COHEN). 그의 어린 시절은 영화 <레인맨> 속 주인공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처럼 코헨 역시 한번 본 숫자들을 줄줄 꿰곤 했다. 수(數)를 읽는 재능이 남달랐던 것. 그는 9학년(중3) 때부터 포커에 탐닉했는데, 게임에 나온 패들을 죄다 외워서 ‘상대가 무얼 갖고 있는지’ 훤히 아는 것도 레인맨과 닮았다.  
코헨은 타고난 승부사였다. 수줍음을 많이 탔지만, 포커를 할 땐 맹수가 됐다. 포커 때문에 인생행로도 정해졌다. 매 순간 승부를 걸어야 하는 주식거래는 적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 자신도 “유펜 1학년 때,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리의 주식시세판이 내 심장에 와 박혔다. 번쩍거리는 숫자와 회사이름이 ‘틱 틱 틱’하며 말을 걸어왔다. ‘50, 50, 50’하는 소리도 마법처럼 들렸다. ‘아, 저 회사 더 오르겠구나!’ 감이 왔다”고 했다.
며칠 후 코헨은 메릴린치증권을 찾아, 포커를 해서 딴 돈과 등록금을 쏟아부었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고, 대학 내내 트레이딩에 매달렸다. 포커 마니아는 이렇게 주식 마니아가 됐다. 그리곤 세계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로 등극했고, 아트컬렉션에도 뛰어들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번 부호들이 인생의 레이스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며 예술품을 트로피처럼 수집하듯, 코헨 역시 금융계의 새로운 왕자가 되자 ‘트로피 아트’를 열광적으로 사모으기 시작해, 수익성 높은 ‘초고가 유명작’들을 바구니에 쓸어담았다. 이에 뉴욕타임즈는 2005년 ‘월가의 뉴 프린스가 미술시장을 후끈 달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의 부모와 형제는 코헨이 이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억만장자(자산 127억 달러, 포브스 선정 미국 내 30위 부자)에, 막강한 슈퍼컬렉터가 되리라곤 생각 못 했다.
코헨은 1956년에 의류봉제공장을 운영하는 유대인 아버지 밑에서 8남매에 이르는 번잡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생은 “형은 학교가 끝나면 밤늦도록 친구들과 포커를 했다. 아침마다 책상에 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고 회고했다. 코헨 자신도 “그때 포커를 하면서 어떻게 위험을 감수할 건지 뼈저리게 터득했다. 이 경험이 훗날 큰 자산이 됐다”고 밝혔다. 
뼛속까지 승부사인 그에겐 많은 기록이 따라다닌다. 대학을 마치고 1978년 그룬탈이라는 증권사에 입사한 첫날, 코헨은 8,000달러의 이익을 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주식 천재’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후 코헨의 팀은 회사에 매일 10만 달러의 수익을 안겨주는 등 놀라운 실적을 쏟아냈다. 1992년, 코헨은 자신의 돈 2,500만 달러로 이름 앞글자를 딴 ‘SAC캐피탈’을 차렸다. 때마침 미국경제가 엄청난 활황세를 이어가는 바람에 SAC는 20년간 매년 30% 이상의 수익을 달성했고, 140억 달러를 운용하는 거대 금융사가 됐다.

코헨은 수만 건의 거래를 진두지휘하면서도 결코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무실 온도도 ‘냉정한 판단’을 위해 20도를 고수하고 있다. 미 동북부의 혹독한 겨울 추위에 덜덜 떠는 직원들을 위해, 그는 양모스웨터를 사서 일괄 지급해왔다.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자 코헨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반 고흐, 모네, 고갱 등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을 샀다. 그리곤 미국의 전후 및 현대미술로 곧바로 갈아탔다. 월스트리트 거물들이 미술품 투자를 마치 주식 투자하듯 하는 것처럼, 그 역시 이슈가 되는 작품들을 앞장서 수집했다.  
2005년까지 5년간 3억 달러(한화 3,582억 원)를 컬렉션에 쏟아부었으니 실로 엄청난 기세였다. 미술잡지들이 선정하는 ‘세계 슈퍼컬렉터’의 상위 10위에 단숨에 진입했다. SAC캐피탈을 함께 만들었던 데이비드 가넥은 “나도 그림을 좀 사지만 그는 예술계를 맹공하고 있다”고 평했다. 다른 슈퍼리치들이 자산의 약 3%를 작품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코헨은 10-20%를 쏟아부었다. 미술품이야말로 주식, 금, 부동산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투자품목으로 봤던 것이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헤지펀드 킹(The hedge fund king)’이란 별칭을 부여받은 뒤론 1억 달러가 넘는 작품도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할리우드 거물 데이비드 게펜으로부터 윌렘 데 쿠닝의 <Woman3>와 <Police Gazzate>를 1억 3,570만 달러와 6,350만 달러에 넘겨받았다.
코헨은 자신의 수집품을 선보이는 컬렉션 쇼를 지난 2009년 4월 뉴욕 소더비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이 쇼에 대표작 20여 점을 내놓아 ‘비밀주의 코헨이 웬일일까’라는 궁금증이 모아졌다.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직원들에게까지 ‘언론과 접촉하지 않으며, 미디어 카메라 앞엔 절대로 앉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았던 그이기에 추측이 무성했다.


피카소, 꿈, 1932, 130×97cm, 캔버스 위 유채


2012년 말 코헨은 카지노재벌 스티브 윈으로부터 피카소의 <꿈(Le Reve)>을 1억 5,500만 달러에 매입해 또다시 화제를 뿌렸다. 이 작품을 넘겨받는 과정에는 재미난 스토리가 있다. 윈은 2006년, 대학후배인 코헨에게 피카소의 <꿈>을 1억 3,000만 달러에 팔기로 약조를 맺었다. 그리곤 지인들에게 작품을 보여주다가 팔꿈치로 15cm짜리 구멍을 내버렸다. 하지만 윈이 9만 달러를 들여 작품을 감쪽같이 복원하자, 코헨은 흔쾌히 더 높은 가격으로 그림을 사들였다. 1997년 경매서 4,840만 달러에 <꿈>을 낙찰받았던 윈은 이로써 1억 달러를 챙겼다. 피카소의 수많은 여인초상 중에서도 <꿈>은 구도와 표현이 특히 절묘하고, 환상적이어서 최고작으로 꼽힌다.

이후로도 코헨은 1억 달러를 상회하는 자코메티의 인물조각을 2점이나 매입했다. 또 앤디 워홀, 반 고흐, 프란시스 베이컨, 에드바르드 뭉크, 잭슨 폴락, 리차드 프린스의 작품도 사들였다. 물론 아담 팬들턴같은 유망 신예의 작품도 수집했다.  
그렇더라도 1억 달러가 넘는 작품을 6점이나 연달아 매입하는 것은 어지간한 베짱이 아니고선 어렵다. 고위험, 고수익에 이골이 난 ‘헤지펀드 대부’다운 면모다. 현재 300-400점으로 추정되는 코헨의 컬렉션 중에는 초고가의 유명작들이 즐비해 금액으론 총 10억 달러에 이른다. 코헨의 아트 어드바이저인 샌디 헬러는 “300점 중 100점이 그 작가의 대표작에 해당된다”라고 밝혔다.
늘 화제작을 쫓는 것도 코헨 컬렉션의 특징이다. 영국의 악동미술가 데미언 허스트의 상어 작품이 좋은 예다. 코헨은 2004년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란 허스트의 상어를 찰스 사치로부터 8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란 질문이 쏟아졌지만, 코헨은 개의치 않았다. 전 세계에 파문을 일으킨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후 재스퍼 존스의 <깃발(Flag)> (1억 1,000만 달러), 앤디 워홀의 <청록 마릴린> (8,000만 달러)과 <슈퍼맨> (2,500만 달러),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물화, 제프 쿤스의 풍선 강아지도 매입했다.
코헨의 수집품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자코메티 조각이다. 그는 2014년 11월 열린 소더비경매에서 자코메티의 <마차>를 1억 10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이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이듬해 5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를 크리스티에서 1억 4,130만 달러에 또 사들였다. 이로써 점당 1,000억 원이 넘는 자코메티의 조각을 2점이나 보유하게 됐다.

이처럼 천문학적 가격의 작품들을 매입하자 세간의 비난이 들끓었다. ‘내부자거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자숙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고가작품을 계속 사들이냐’는 지적이 빗발친 것. 코헨의 SAC캐피탈은 2013년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돼 직원 2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벌금 18억 달러를 부과받았다. 미국 증권거래위는 코헨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재판에선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당국은 코헨이 2년간 외부투자자 자금운용을 못 하도록 조치했다.
코헨은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저택을 보유 중이다. 부지 18에이커(79만 평)에, 총면적 3,250㎡(983평)의 이곳엔 아이스링크, 골프코스, 개인미술관이 조성돼 있다.

코헨 외에도 미국 헤지펀드업계에는 레온 블랙, 케네스 그리핀, 존 폴슨, 대니얼 롭 등 ‘미술시장의 큰손’이 여럿 있다. 레온 블랙은 뭉크의 <절규>를 사들였고, 대니얼 롭은 소더비주식을 9% 매집하며 경영에도 관여 중이다. 이들은 미술투자가 (금융투자에 비해) 정부규제를 덜 받고, 수익성이 높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트마켓이 헤지펀드업계와 닮은꼴이 돼가고 있다. 저들의 치고 빠지기식 전략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뉴욕 매거진도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작품을 성장주처럼 대한다. 이들에게 ‘보상’은 커지는데, 통제가 없다”고 우려했다.
코헨이 미술품 구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는 예술이 모든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할 거라 믿는다. 사옥 곳곳에 독특한 작품을 설치했는데 반응이 제각각이다. 그걸 살피는 게 무척 재밌다”고 밝혔다.  
유명 아트딜러와 전문가들은 코헨의 컬렉션을 ‘가히 세계 정상급’이라 평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컬렉션의 뚜렷한 방향과 맥락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철저하게 유명작품 위주로 수집해왔기에 ‘투자’라는 그림자 또한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야말로 ‘트로피 아트’의 총집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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