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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우경희 이승만 신동우, 미대출신으로 출판미술에 성공한 분들

김정




1 김정, 우경희 드로잉                      2 김정, 이승만 드로잉                      3 김정, 신동우 드로잉



순수미술로 출발했으나 사정상 방향을 바꾸신 세 분의 미술인이다.

우경희(1924-2000) 선생은 동경제국미술학교 출신으로 1974년 12월 6일부터 12일까지 공간사랑에서 첫 개인전을 하셨다. 고향인 개성에서 중학교 미술교사를 하다가 서울로 피난, 정착했다. 전쟁 이후 60-90년대에 국내 신문연재 소설 삽화계 자리를 빛낸 화가였다. 필자는 1971년부터 1976까지 매년 5월 조선일보학생미술심사에서 우경희, 박고석, 이승만 선생과 1주일 내내 같이 지냈다. 우경희 선생은 성격이 깔끔했다. 내가 우 선생에게 “데생이 정확하고 섬세한데, 전부터 그처럼 잘 그리셨나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일제강점기 때 징병 되 동남아에서 1년을 고생했는데, 그때 틈날 때마다 스케치를 많이 했고, 6·25전쟁 땐 일본 유엔사령부에서 군화가로 일하며 스케치와 소묘를 끊임없이 했지요”라고 답하셨다. 그는 큰 키의 미남이셨다. 흡연은 박고석 선생과 비슷, 하루 두 갑을 피우시는 애연가였다. 큰 몸에 비해 실같이 가는 선을 즐겨 그렸다. 왜 가는 선으로만 그리냐고 물었더니 “내 체질이 맞는지 가는 펜으로 해야 그림이 잘된다”고 했다.

이승만(1903-75) 선생은 휘문보통학교 재학 중 춘곡 고희동에게 그림지도를 받았고, 일본 가와바다미술학교 졸업 후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 부문에서 연속 4회 특선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1928년 『매일신보』 편집국 입사, 학예부 미술 담당 기자였다. “나는 입사 후 1935년 박종화 역사소설 『임진왜란』과 『세종대왕』 삽화를 그렸지, 당시 『동아일보』 화가 기자로 청전 이상범,『조선일보』엔 심산 노수현 기자가 일했지. 두 분은 나보다 6년 선배였고 언론에 화가 기자가 필요했죠” 어떤 상황 묘사에 그림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있지만, 그림만큼 만족스럽진 못했다. 

1972년 학생미술심사 때 이승만 선생은 지팡이를 짚고 간간이 얘길 하셨다. “당시 일간지 지면에 미술기자가 그리는 게 많았고 일본도 비슷했지”라고 웃으셨다. 국내신문 역사소설 그림으론 청전, 심산, 이승만 등 3인의 화가가 명성을 떨쳤다. “난 『매일신보』 삽화를 했고, 박고석 선생은 『조선일보』를 했지.” 휴식시간에 박고석 선생과 담소하며 깔깔 웃으신다. 그 시절 『조선일보』, 『동아일보』, 『매일신보』엔 화가의 기자활동이 컸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신 장본인이다.

신동우(1936-94) 선생은 용산고와 S 미대 응용미술과를 다녔다. 함경도 회령출생으로 늘 석탄 나르는 기차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1947년 봄 38선 국경의 소련군을 피해 남하하였고, 6·25 때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부산 피난 시절 좌판에 만화책을 놓고 팔았다. 그때 김용환, 김태형의 만화 그림에 빠져있었다. 1976년 그는 필자에게 “김용환, 김의환 만화를 보고 부모님보다 더 위대한 분처럼 느끼며 살았지요”라고 말했다. 1968년 『새벗』 잡지 편집실서 처음 만난 후, 전시화랑에서 만나곤 했다. 

신동우 선생은 만화를 그렸는데, 미대를 나온 실력파로 데생이 좋았다. 친형인 신동헌 선생의 권유로 1953년 <땃돌이의 모험>이 데뷔작이었고 1966-69년 <풍운아 홍길동>을 『소년조선일보』에 1,200회 연재하여 국내 최장수기록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신동헌 선생과 국내 최초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을 제작하여 큰 히트를 친 바 있다. 그 외에도 <날쌘돌이>, <삼국지>, <차돌이>로 경제력을 쌓았다. 이 시절 『한국일보』 만화 응모 심사한 신동우 선생은 허영만이라는 신인 만화가를 뽑아 데뷔케 했다. 

신동우 선생은 그 후 만화보다 풍속화 쪽으로 기울면서 그림 작업에 노력했다. 필자가 요하임 뮐러 주한독일문화원장의 초대로 ‘김정 독일 소묘전’에 제일 먼저 찾아와 축하해준 분이 신동우 선생이었고, 1주일 내내 오셨다. 늘 회화 그림에 애착을 갖던 분으로 필자 전람회 때마다 한 번도 거름 없이 오셨다. 그분의 웃음소리는 까르르~하는 함경도 특유의 묘한 맛을 느낀다. 지금도 춘천시 애니메이션박물관에는 신동우 선생의 생전 자료와 일면들이 화면에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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