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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황염수, 고독 속에서도 인간적인 삶은 풍부한 작가

김정


 
김정, 황염수 드로잉


황염수(1917-2008) 선생은 평양 출신으로 1934-35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시작, 1957년 박고석, 유영국 등과 모던아트그룹을 결성한 창립멤버였다. 피난 후 남쪽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나는 박고석 선생을 통해 황염수 선생과 가까이 지냈다. 조선일보 전국학생미술대회에 심사위원장이신 박고석 선생께서 1970년 필자를 예심위원으로 추천, 심사 참여케 했다. 

그 후 1971년 대회 응모 수가 급증, 본심위원을 늘려 홍종명 선생과 필자가 본심까지 들어갔다. 박고석, 황염수, 이승만, 김영주, 우경희, 박근자, 홍종명, 김상유, 전상수 등 열 사람이 점심 저녁을 함께하며 1주일간 계속 심사하다 보니 식구처럼 정들어 지냈다.

심사 중엔 박고석, 황염수 두 분의 평가관점 차이로 진행이 늦어졌다. 두 분 고집은 스스로 양보가 안돼 결국 심사위원 다수결로 결판했다. 두 분은 흥분하셨지만, 곧바로 히히 웃고 마셨다. 

황 선생은 박고석 선생과 동갑이며 고향도 같아 술자리에선 막역한 사이였다.어느 날 심사하는 도중에 박고석 선생은 황 선생을 부르는데, “염소 씨~~음메~” 하니까 저쪽에서 “돌멩 씨~~” 이런 농담이 오가자 심사위원들은 배꼽 잡고 웃었다. 

지루한 심사에 코믹한 농담을 먼저 던진 분은 박고석 선생이다. 박 선생은 능청맞게 웃지도 않고 천연스런 연기를 잘하셨다. 정말 매력 있는 평양 스타일 탤런트다. 

여기에 질소냐 ‘나도 여기 있다’를 보이신 황염수 선생 연기도 폭소를 자아냈다. 두 분 연기는 거의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수준이셨다.

어느 날 필자는 귀가 중 광화문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황염수 선생을 만났다. 필자는 역촌동 집이고, 황 선생은 돈암동. 버스 타는 곳이 같았다. 

뜻밖에 개인적 만남에 반가웠다. 황 선생이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가로수 밑 나무 벤치에 앉아 담소를 했다. 황 선생이 먼저 말을 하신다. “어제 박고석 씨와 나하고 시끄러웠디 좀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 난 박 선생과 지루하니깐 모두 웃자는 뜻이디…” 

보통 심사장에선 개인 대화는 못 하지만 황 선생과 박 선생의 유머러스한 담소는 늘 즐겁다. 자주 뵙고 보니 나 역시 황 선생도 박 선생처럼 존경하며 따랐다. 황 선생은 평소 말수는 적지만 유머가 풍부하셨다. 고독 속에서 인간적 맛이 흐르는 분이다. 

그늘 아래서 황 선생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그림은 주로 언제 그리세요?” 그는 “꼭 시간은 맞추어 하진 않고 사정에 따라 그리지요.” 라신다. “그림이 좀 팔리시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하하하” 하고 어려운 질문을 드렸더니 “허허허 여보 김 형, 요즘 그림 팔아 생활하는 화가가 몇이나 되겠소. 고석 씨도 힘들고 모두들 어려워. 그나마 고석 씨나 나나 작은 소품을 그려 용돈을 써야 하니깐…” 라며 답하신다.


“그래도 박 선생은 화실을 열어 레슨이라도 하시니 어려운 경제에 다소 도움이 되실 텐데요. 황 선생님도 작은 화실을 해 보시면 어떠세요? 대부분 화실운영 하시는데요.” 하고 다시 여쭙자 선생은 “요즘 누구라도 힘든 건 비슷해서 나도 실은 조그맣게 화실을 오픈하고 있다오. 그림 팔아 밥 먹고 살긴 현실적으로 어렵데요. 그렇다고 마냥 놀 수는 없지 않겠소? 그런데 그것도 해보면 쉽지 않아요. 나 같은 비상업적 체질은, 알다시피 내가 장사를 못 하지 않나. 허허허” 라고 밝히셨다. 

돈암동은 예전부터 몇몇 분이 교습소를 했었던 지역으로 당시 힘든 세월의 흔적이었다. 오랜만에 황 선생과 조용히 담소를 나눈 행복한 시간이었다. 

황선생은 마음도 곱고 평소 정의감이 강하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다’고 말하는 분이다. 급한 성격이지만, 장미를 그리실 땐 세상의 모든 걸 다 잊으신다는 황염수 선생. 5월이면 나는 황 선생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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