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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김서봉, 표정은 무뚝뚝해도 속마음은 따듯한 화가

김정

위) 김서봉                                                                                     상하선생이 써준 포스터
아래) 미협선거 개표현장 필자 메모에서                                                


상하(尙何) 김서봉(金瑞鳳, 1930-2005)은 평안도 철산 출신으로 부산 피난시절 부둣가에서 노동하며 미대를 다녔다. 
1969년 필자는 앙가쥬망 동인들과 원서동 2층에 위치한 그의 화실을 처음 방문했는데, 실기수강생이 많았다. 상하는 삼선교 이쾌대 화실을 다니며 노하우를 일찍 터득했다. “내가 이쾌대 화실을 다닌 것도 행운이죠” 라는 상하의 짤막한 말을 더 깊이 못들은 게 아쉽다. 아마도 청년시절 이쾌대 화실에서 잔심부름과 조교 노릇을 하면서 미술을 배운 걸로 추정된다. 요즘 말로 아르바이트하며 그림을 배운 것이다. 상하의 얘기 중에 “돈 내고 다닐 형편은 안됐고 그림은 배워야 하니…”가 그 근거로 당시엔 모두 어려운 처지였다.

1987년 조형교육학회 초기시절 나는 상하 선생에게 학회논문 4집 머리말을 부탁하였고, 완성원고를 받는 날 D여대 근처에서 만났다. 식사 중에도 상하 선생은 원고를 읽었다.
“뭘 그렇게 또 보세요?” 물었더니, “어제 쓴 글을 지금 보니 고칠 부분이 한두 개 있구려.” 결국, 그는 원고를 다시 들고 갔고 다음날 우송해 왔다. 시간 약속은 1분 1초도 어김없는 철저한 분이었다.
이후 1989년 그는 미협 선거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선거 전 상하 선생은 아주 치밀한 작전을 세워 1mm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모습을 봤고 그의 성실하고 틀림없는 성격이 맞아떨어진 듯 했다. 

그런 철저와 또 반대되는 모습은 바로 노래를 통한 속마음이다. 1999년 2월 25일 저녁, 우연히 노래방에서 상하 선생 단골곡 장현의 <나는 너를>을 들었다. 
“세월은 흘러서가면 넓은 바다 물이 되듯이 세월이 흘러 익어 간 사랑 가슴속에 메워있었네” 상하의 음성은 쉰 막걸리처럼 시큼털털한 소리다. 그렇지만 장현 노래만큼은 감정 넘치게 참 잘 넘어간다. 다만, 고음일 땐 끅끅하고 못 넘길 때가 있다.
“이 노래 여러 번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늘 기막히게 잘 부르시네요?”
“하하하. 내게 좀 맞는 노랜가봐.”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난 피난생활 이후 열심히 살다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요, 그게 전부요. 하하하” 
껄껄 웃으며 말을접는다. <나는 너를> 노래가 바로 그의 함축된 상징이다.

상하 선생을 가리켜 직선적이며 무뚝뚝하고 화를 잘 내는 이북기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속마음은 정말 곱고 눈물 많은 소녀다.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도 그의 ‘속마음이 곱고 의리 강한 성품’을 알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가만있질 못하는 성격이다. 겉보기와 다른 속 깊고 따듯한 인격자다. 그 역시 날 사랑하는진 몰라도 내 개인전 18회 30년 세월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해 격려사를 자청해왔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그도 나를 이해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확실한 성격인데, 수년 전 평창동 이웃 신축공사가 속 썩여건강을 힘들게도 했었다.

상하 선생은 서예 솜씨도 일가견이 있다. 초기 작품은 서예와 회화로 구성한 작업을 했다가 몇 년 뒤 풍경 그림으로 대작을 계속했고, 결국 상하의 이미지는 풍경화로 종결한 셈이다. 그가 S예고에 재직하다가 D여대로 자리를 옮길 때도 속깊은 고민 등 살아가는 얘기를 새벽 3시까지 담소하며 지낸 적도 있었다. 그 후 나는 상하 선생을 친형처럼 여겼고, 그도 나를 동생처럼 귀여워해줬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그도 마음이 괴로울 땐 나를 불러낸다. 그리고는 장현 노래 <나는 너를>을 부른다. 그럴 때 나는 짐 리브스의 <He’ll Have To Go>와 <정선아리랑>으로 화답했다. 둘은 걱정과 괴로움보다는 노래를 통한 치유랄까, 뭔가 해소된다고 믿었다. 상하 선생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노래를 좋아했고, 나도 좋아해 행복했다.

나는 지금도 어쩌다 장현의 노래 <나는 너를>을 들으면 상하선생이 옆에서 부르는 걸로 착각하며 듣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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