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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경성, 선비정신으로 미술행정 기초 만들다

김정


이경성

1981 년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덕수궁) 이경성(1919-2009)관장 때 미술교육프로그램 ‘현대미술아카데미’ 강좌가 처음 시작됐다. 1988년 10월 26일 과천관으로 옮겨진 후 1990년부터 독립된 ‘현대미술아카데미’는 현재까지 34년간 12,000여 명을 수료시킨 한국의 대표적 미술강좌다.

이경성 관장은 제1회 미술아카데미 강좌에 국내외 명강사를 총동원하는데 심혈을 쏟았다. 1986년 필자는 과천관 복도에서 우연히 이 관장을 마주쳤다. “제가 강의나오면서도 관장님을 진작 찾아 뵈야했는데 죄송합니다” 이것이 이경성 관장님과 처음 만남이었다. 첫 인상은 고요한 산속의 소나무같았다.


문화재그리기 대회 심사모습. 좌측부터 이경성관장, 임영방교수, 김정 3인, 1988


1988년 11월 3일 오후 1시, 국립박물관 주최 청소년 문화재그리기 대회 심사를 하러 갔더니 이경성 관장, 임영방 교수 두 분이 계셨다. 청소년 그림 심사 중 선발기준의 차이가 나타났는데, 이관장은 아카데믹한 느낌을, 임교수는 파격적인 걸 뽑았다. 두 분 주장 모두 논리는 맞지만, 시각차가 더 커짐에 나는 좀 불안했다. 결국, 특선 심사 중에 임교수는 흥분된 어조로 “그럼 심사 그만두고 가겠습니다”고 하였고, 나는 황급히 임교수를 붙잡아 겨우 진정시켰다. 다시 심사는 진행됐고, 이관장은 부분 양보했지만 임교수는 계속 날카로운 주장을 보였다. 나는 심사보다 두 사람의 분노조절에 온 신경을 써야했다. 다행히, 두 분의 주장을 맞춰서 결론을 맺었지만, 뒤끝이 좀 찜찜했다. 이관장은 조용히 노력하는 눈치였으나 속이 좀 상한 듯했다. 그에 비해 임교수는 다 잊고 언제 그랬냐 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심사장에서 흔한 일이다. 모 심사장에서 유경채와 최덕휴 두 분이 서로 흥분하여 심사봉을 꺾어버리고 각자 심사장을 떠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김영주와 권옥연, 최덕휴와 박철준 이분들도 혈전이다.

1993년 4월 중앙일보 건물 6층 세미나실에서 우연히 이경성 관장을 만났다. 관장을 그만둔 뒤 오랜만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그는 그간 해외도 다녀왔다고 했다. 이경성 관장은 “김교수는 요즘도 과천 특강 나가요? 임영방 관장도 잘하는지…”라며 안부를 물었고, 나는 “네, 못 뵀지만 잘하시겠죠.”하고 답했다. 이경성 관장은 “그리고 전에 문화재그리기 심사 때 김교수가 중간 조절을 해 충돌 없이 잘 끝내서 고마웠어요”라며 그 당시 얘기를 꺼냈고, “저야 영광이지요. 관장님과 같이 심사한다는 게…”라고 답했다. 그는 “그 당시 펄펄 뛰던 임관장이 김교수의 청소년 미술 논리에 꼼짝 못 하는 눈치였어. 좀 이상할 정도로…허허허.” 나는 “아마 그건 임박사께서 학회 창립 초기 자문교수로 저를 격려해주셔서 그런듯합니다”며 대화를 이어 갔다. “나도 심사 당시 임박사 때문에 열 좀 받았소만… 김교수가 임박사를 잘 설득해줘 천만다행이었죠, 나는 마음이 약해 심장 뛰면서는 심사 못 해요. 손이 떨리고…허허허.” “네, 저도 마음 졸이며 두 분 사이에서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하며 지난 일을 웃어넘겼다.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내 후임 관장이 바로 임영방 박사에요. 내가 후임으로 임박사를 추천하고 떠났죠. 그리고 떠나는데…그런데….”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차마 입을 못 여는 표정이었다. 분명 가슴에 풀지 못한 뭔가 있기에 말할 듯 말 듯한…. 다시 또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이번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또 말을 할 듯하다가 끝내 말문을 닫은 후 헤어졌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평생 선비처럼 조용히 살면서 미술관 기초를 닦아놓은 미술계의 원로. 몇 년 전 내가 정선을 30년 오가며 시와 스케치를 담은 『정선아리랑』 시집을 한 권 드렸더니 “나도 시 좀 쓰려고 한평생 노력했지만 늘 시간이 없어 못 썼는데, 김교수처럼 강원도 정선 고갯길을 다녀야 시를 쓰겠구려”라며 미소 지으던 그분. 여러모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하지만, 그날은 내 가슴도 좀 답답했다. ‘그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걸 속으로 삭이며 창밖을 내다보던 표정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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