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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고석, 커피와 산 그리고 굳은 신념의 화가

김정

박고석(1917-2002)의 특징은 커피와 산행이다. 커피만 있으면 이 세상의 고민과 문제를 묵묵히 혼자 삭히는 의지 굳은 분이다. 박 선생과의 첫 만남은 1958년 고3때, 이철이 선생 소개로 돈암동 박고석 화실 찾아간 날이었다. 소개서를 보시며 “부모님 다 계시디요? 구러문 다음 토요일부터 하디” 하셨다.

당시 41세로 정릉에 사셨고, 출강을 하는 듯했다. 나는 주 1회 뎃생 지도를 받았고, 대학 진학 후 1961년도 입대로 화실을 떠났다. 제대와 복학 후 8년 만에 박 선생을 다시 만난건 원남동 사거리 한의원 3층 화실이었다. 이때 박고석은 50대 초반이었는데, 혼자 밥, 찌개도 끓이시며 독신생활을 했다. 식사시간을 피해 방문하려해도 박 선생의 식사가 워낙 불규칙하니 조리하거나 식사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마침 두부를 썰다가 나를 보자마자 “두부는 큰거이 좋티, 먹어보간?” 하며 파를 찢어 넣는 폼이 예술이었다. 숙달된 요리 솜씨로 봐서 독신생활이 오래됨을 느꼈다. 당시 부인은 미국으로 디자인계통 공부를 하러 가셨다. 박 선생은 전혀 내색 없고, 인품이 훌륭해 마치 세상을 달관한 통 큰 사나이 같은 태도였다. 주변 사람들도 항상 그를 존경했지만 나 역시도 청소년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공감하고 좋아했다.



박고석 41세때 뒷모습. 필자가 대학1년때 그린 것


1969년 내가 결혼소식을 알리자 “야, 그거이 잘됐다”하며 나의 결혼청첩장에 ‘청첩인 박고석’ 이름까지 올려주셨는데, 마치 외
삼촌 같았다. “야! 김정~ 나도 자네 신온초롬 힘좀 내서 구림을 해야 갔다” 하며 그때부터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다시 붓을 놓고 조용했다. 이유는 건강이었다. 커피와 담배가 주원인. 독신 생활의 긴 고독과 식사를 제때 못하셨고 설상가상으로 독한 시가 담배를 항상 손에 달고 살았다. 커피는 원두커피로 큰 대형 주전자에 가득 끓여놓고 온종일 새까만 원액 커피를 숭늉처럼 드셨다. 식사는 둘째고 커피가 우선이다. 이때가 박고석 10여 년의 그림 작업을 못한 침체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박고석은 혼자 도봉산을 다녔다. 여럿이 동행하는 걸 싫어했다. 그 이유는 ‘산을 제대로 못 본다’는 것. 1971-75년 봄 도봉산에 나도 우연히 동행했다. 동행보단 따라갔다는 게 맞다. 내가 작은 스케치북을 펴고 몇 장 끄적이니까, “김정, 그거이 구리는거 보단 구릴시간 이쑤문 더 봐야디.



1972년 박고석 스케치한 것


볼 시간도 부족한데 구릴 시간이 업디….” 이것이 박고석의 산행(山行) 철학이다.
산을 눈에 담는 듯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머리도 끄덕끄덕하시며 산과 대화를 나눈듯한 행동이다. 나는 그 당시 잘 몰랐는데, 두고두고 생각해 보니 ‘감정이미지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 박고석의 산행은 바로 ‘이미지 축적’이다. 지금도 도봉산을 보면 박고석 선생 얼굴이 떠오른다.

많은 이가 산 앞에 이젤을 펴놓고 그렸다. 마티스, 고흐, 최덕휴, 이마동도 그랬다. 그러나 즉석 그림이 반드시 필수는 아니다.이미지의 필(받는 느낌)을 중요시하는 작가도 있다. 모두 작업의 한 방법이다. 박고석의 산 그림은, 그 산이 주는 인상 또는 보고 느낀 필이 더 큰 역할이란 의미가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산 앞에서의 그 모습은 마치 <커피와 산과 박고석>을 그대로 상징한 모습이었다.


1972-77년 조선일보 학생미술대회 심사 때 매년 1주일간 매동초교 강당에서 온종일 박고석, 황염수, 박근자 등 나를 포함해 7명 심사위원이 같이 지냈다. 쉬는 시간에 평양시절 이중섭과 술먹기 내기하던 일화, “누가 빨리 술을 많이 마시느냐를 중섭이랑 했는데, 내가 약간 빨랐으나 갑자기 재채기 하는 바람에….” 이중섭과 박고석은 아주 절친해서 일화가 많았는데, 그걸 기록 못해 아쉬웠다. 나는 그때 박고석 얼굴을 현장에서 많이 그렸다. 당시 그는 전립선 이상증세로 화장실 출입이 잦았던 회갑 나이였다.


박고석이 좋아하는 음식 1위는 평생 ‘생선 초밥에 정종 반주’ 다.
술을 마실수록 초밥은 덜 들고 말수는 조용해진다. 이 원리는 늘 공식이다.
철없던 나의 고교와 청년 시절과 결혼까지 이끌어주신 존경하는 스승님, 남자다운 멋과 의리의 사나이, 굳은 신념과 고귀한 인품, 오늘도 박고석의 예술은 빛나고 있다. 2002년 5월 23일 85세로 별세하셨다. 병세가 위중하실 때 혼자 명륜동 자택에 갔는데, 차마 못 들어가고 대문 밖에서 머뭇거리며 선생님 회복을 위해 홀로 기도하고 돌아섰음을 오늘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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