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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김흥수, 만년청춘으로 살다간 노 화가

김정

한국의 멋쟁이 화가로 불리던 김흥수(1919-2014) 화백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를 따랐다. 화려하던 꽃나무도 때가 되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이 철칙이다. 그의 결혼식은 1992년 1월 19일 신라호텔 웨딩홀에서 12시에 진행됐다. 하객 초대를 100명으로 제한했는데, 그것은 딱 100살 이상 살아야 한다는 신랑 신부의 아이디어였다. 신랑 나이가 있다 보니 권옥연, 이종무, 임직순, 최덕휴, 김서봉 등 노년층이 70% 였고 나머지는 50대와 신부측 하객 정도였다.



김흥수 결혼식


테이블에 나이별로 앉았는데 나는 50대 6인과 앉았다. 결혼식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 주례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유명 연예인결혼식 같았다. 신부인 장수현은 43세 연하로, 신랑이 대학 출강 때 만난 제자였다. 소설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라 세간의 입소문도 많았다. 주례가 “오늘 늙은 새 청년이 새 출발 합니다. 70대 연배로 보이지 않는 만년 청년 김화백입니다. 하객 여러분, 우선 힘찬 박수로 축하를 보냅시다.” 말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김동건 사회자가 신랑에게 질문했다. “오늘 소감이 어떠신지, 짤막하게 부탁합니다.” “조금 걱정이 됩니다.” “뭐가 그리 걱정이 되시나요?” “네, 자꾸 적어지기도 하고요.” 김동건은 짓궂게 다시 묻는다. “뭐가 점점 작아진다는 겁니까?” “경제가 나쁘니 화랑에서 소품만 그려달라고 해서 자꾸 적어진다는 겁니다.”


주례와 사회자, 하객 모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번엔 신부에게 소감을 물었다. “8년을 기다려 온 날이라 오늘 기쁩니다. 다만 부모님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셨어요.” “ 기쁜 날인데 부모님이 오지 않으셨군요. 신랑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 사위보다 나이 어린 부모님께서 참석하시기엔 불편하신 것 같아 편한 쪽으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신랑의 첫인상은 참 맑고 순수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나이 차를 못 느낍니다.” 

회자가 다시 신랑에게 또 한마디 물었다.
“신부를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은 어떠셨는지요?” “나이 차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 신부를 봤을 때 마음에 들었어요, 사랑싸움도 여러 번 했습니다. 장인, 장모를 만나면 나보다 어리지만, 두 분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썼어요. 이런 영광을 나만 가질 수 있나요. 모든 노총각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습니다”. 사회자는 다시 신부에게 질문했다. “사귈 때 어려움이나 힘든 사항은 없었는지요. 또 신부 또래의 친구나 주변의 시선은 어떠셨나요?” “처음엔 그림을 보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만나기 시작하면서 가까워졌고요. 점차 나이 차를 못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사랑하게 됐습니다. 사랑에 빠지다 보니 주변의 시선이나 친구의 충고 같은 건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사회통념을 깨트려 보고 싶었습니다.”




김흥수 1994년 시청 앞에서


사회자는 김흥수 선생에게 다시 물었다. “신랑께선 왜 수염을 길게 기르셨는지요? 보통 새신랑이라면 깨끗이 면도 하셨을 터인데 신랑께서는 정반대로 수염을 기르셨어요. 결혼 후 깎아버릴 용의는 없으신가요.” “오늘은 나이 차를 초월했으니까요.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건 저녁에 골목길을 지나는데 고등학생이 내게 담뱃불 좀 빌려달라고 해서 젊어 보여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날부터 기르게됐습니다.”라며 김 화백은 웃음을 덧붙였다.


그렇게 화려한 결혼식도 무정한 세월엔 속수무책이었다. 나이차는 극복했지만 2012년 11월 13일 부인이 먼저 먼 길을 떠났고, 2년 뒤 2014년 6월 9일 김흥수도 뒤따라 떠났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글과 말은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1993년 7월 30일자 한국일보에 예술원 정체를 비판, 언급했던 글로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도 했다. 지금도 예술원의 논란은 여전하다. 특정소수를 위한 존속이냐 폐지냐는 일찍이 새 신랑이었던 김흥수 선생이 제기한 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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