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4)이만익, 시와 기타노래와 전통을 사랑한 화가

김정

 이만익




이만익과 김정


이만익(1938-2012)은 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기억했다. “내 이름도 모친의 고집으로 삼수변(彡)을 넣었고 그림도 엄마가 시킨 거죠. 어릴 때 종이에 그린 그림이 엄마 눈에 들었는지 그려보라는 주문이 많았고 그림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요즘 말로 마더파워쯤 된듯했다. 그는 중고교 땐 이봉상, 박상옥 화실에서 데생을 배웠고, 미대 졸업 후 바로 그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1992년 12월 1일 이구열논총출판기념으로 인사동 국밥집에서 옛날 중학 시절 얘기가 나왔다. 동석한 L씨가 풀어놓길 “나는 김흥수 선생 지도를 받았는데, 이만익에게 서울예고를 같이 가자고 했죠. 그랬는데 어머니가 경기고도 괜찮다고 했다며 그만두지 뭡니까” 란다. 역시 마더파워다. 1992년 1월 22일 이만익 모친은 시카고에서 85세 화가로 등장했다. 아들을 화가로 키우다 보니 노모까지도 화가가 된 모자(母子) 화가다.
유난히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는 어머니 관련 시를 즐겨 암송하기도 했다. 
이만익과 나는 신사동, 역삼동에 살며 근처 노래방에 자주 갔다. 이만익은 마이크를 잡으면 바로 정지용 <향수>와 고운봉 <선창 >, <바우고개>를 연달아 불렀다. 난 노래와 기타로 <타향살이 > <고향설>, <아리랑>을 켰다. 이 6곡 노래가 두 사람의 전반부 지정곡이다. 다음 후반부는 시암송과 기타 반주다. 이만익은 시인 정지용, 윤동주, 박목월, 김소월 등 시 열수를 계속 달달 외운다. 음료수를 마시곤 또 십여 수, 모두 25수를 외곤 담배를 피운다. 잠시 후 나는 노래방 주인이 건네준 기타로 미독불영스페인 등 5개국 민요와 아리랑, 짐 리브스의 <힐헤브투고>와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켠다. 어느새 시와 리듬과의 만남이 시문학 콘서트 무대 분위기로 된다.
나는 시를 잘 외는 이만익이 늘 부러웠고, 이만익은 시를 쓰는 나를 부럽다고 했다. 이만익은 시를 암송할 때 작은 저음의 기타리듬을 깔아 주면 어느새 눈물까지 흘리며 암송했다. 눈물을 보는 나도 눈물이 났다. 시 낭송자와 반주자가 동시에 우는 묘한 풍경이다. 이런 모습은 둘 이외엔 없을 것이다. 감성적인 이만익은 시는 못 쓰지만 시암송은 대단했다. 나는 그의 문학열에 감동을 했다. 나도 시, 소설 등 문학을 좋아했지만, 저토록 암송하진 못한다.
나는 강원도 최전방에서 힘든 군 복무 3년을 시작(詩作)으로 극복했다. 이만익과 난 성격차가 크지만 그림, 시, 노래를 사랑하는 정서가 공감되다 보니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방에 자주갔다. 노래방은 시암송과 기타리듬의 ‘행복-기쁨’ 교감장이었다. 두 늙은 문학소년은 유럽 경험도 비슷했다. 이만익은 파리 2년, 김정은 독일 4년. 더욱이 그림 테마 까지 그는 심청전, 삼국유사요 나는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등 50년을 하고 있다. 누가봐도 둘은 한국적 공통 정서로 보았고, 객관적 담론이 비슷했다. 이만익은 “김정은 아리랑 리듬과 동심표현 감정을 융합시켜준다면 큰 욕구를 풀 수 있다. 그건 김정만이 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라는 충고도 해줬다.
평상시 그는 시와 노래가 없으면 예민해져 화를 잘 낸다. 1978년 앙가쥬망 여행 때 미대동기인 C씨와 의견대립을 못 참아 혼자 서울로 가버린 일, 모 대학 전임교수 임용 탈락에 실망하자 그날부터 하루 담배 3갑을 태웠다. 그의 불같은 성질 앞엔 누구도 속수무책…. 사람들은 그 성격을 X 같다고 했지만 나하고 시암송과 노래할 땐 항상 웃는 얼굴로 생판 딴사람이 되었다. 그만큼 이만익은 시와 노래에서 살아가는 데 큰 힘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담배 좀 줄이슈” 했더니 “난 아침 먹기 전 10개비는 피는 걸 못 끊어”란다. 지금 아쉬운 건 그때 더 강하게 금연 권유를 못한 것이다. 담배, 시암송, 기타 음률, 특히 서툰 내 기타 리듬에 매력 있다고 좋아했던 그는 결국 폐 질환으로 2012년 8월 먼 길을 떠났다.
이만익이 생각날 때면 난 정지용의 ‘향수’를 수십 번 들으며 행복했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