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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불각도인(不刻道人) 김종영, 붓으로 조각하다

윤범모

‘붓으로 조각하다’.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에 있었던가. 붓으로 조각을, 어떻게? 이는 새해 벽두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2017.12.22-2.4). 붓으로 조각한 작가의 작품을. ‘20세기 서화미술의 거장’이란 기획의 첫 번째 전시이다. 그럼 누가 붓으로 조각을 했고, 그것도 서예박물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바로 우성(又誠) 김종영이다. 김종영(1915-82)은 한국추상조각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김종영미술관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각가의 서예박물관 전시.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가.



김종영, 유희삼매(遊戱三昧), 연도미상, 서예, 92×18cm


김종영은 창원의 명문 지주가문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선비가풍을 익혔다. 자연스럽게 붓글씨를 쓰게 되었고, 평생 붓과 친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서예는 수양의 방편이었고, 예술세계의 심화를 위한 도구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은 글씨 쓰는 행위를 ‘서도(書道)’라고 불렀다. 중국의 서법(書法)과도 차별을 보였다. 다도처럼 형식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미는 ‘도’를 선택했다. 하지만 글씨를 예술로 보려는 한국인은 해방 이후 ‘서예’로 개명했다. 글씨 쓰기는 하나의 예술 장르였다. 그래서 김종영은 서울대 미술대 교수를 지내면서, 학과목에 서예 과목을 개설하도록 앞장섰다. 하기야 우리네 유년시절에도 학교에서 ‘습자’시간이 있었다. 조선미전 등에서 서예가 순수예술과 다르다 하여 축출되었다 해도, 서예의 비중은 매우 컸다. 물론 ‘서화’의 시대는 가고, ‘미술’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대미술’의 흥성은 상대적으로 서예 분야를 위축시켰다.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은 서예 몰락의 현실에서도 꾸준히 붓을 들었다. 그의 서예작품은 그래서 울림이 남다르다. 이번 서예박물관 특별전의 의의는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서예의 영역을 확장시켜준 서단(書壇) 밖의 인사들에 대한 주목은 파장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종영, 작품71-5, 1971, 나무, 12×15×25cm

김종영은 돌과 나무 같은 재료로 조각하면서도 지필묵 문화의 장점을 외면하지 않았다. 숱하게 남긴 그의 서예 작품은 이 점을 입증시킨다. 불각(不刻)의 미학을 추구했던 조각가의 서예 작업은 이색적이다. 김종영 예술의 바탕에서 정신성을 읽게 한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경지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뛰어난 기교는 오히려 졸렬해 보인다. 그러니까 고수의 작품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것 같은 경지에서 작업한다. 인위성을 크게 내세운 작업보다 오히려 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한 경지가 더 돋보인다. 김종영의 조각 즉 불각의 미학은 이런 의미에서 가치가 더 한다. 김종영은 환갑(1975)을 맞아 <자화상>을 그리고 한마디 썼다. “丹靑不知老將至 富貴於我如浮雲(그림 그리느라 늙어감도 모르나니 나에게 부귀는 뜬구름과 같네).” 세속적 부귀를 뜬구름으로 본 작가. 그의 세계는 졸박(拙朴)과 상통하면서 선비처럼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김종영은 이런 어록을 남겼다. “예술의 목표는 통찰이다.” 통찰!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통찰을 위해 김종영은 쉬지 않고 붓글씨는 썼고, 드로잉을 남겼다. 이 부분이 여타의 작가와 차별상을 갖게 한다. 사실 나는 김종영 별세 직후 유족 집에서 드로잉을 확인하고 감동한 바 컸다. 상상 이외의 작업량과 수준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고도의 정신성을 집약한 별 같았다. 추상조각 이외 이런 서예작품과 드로잉을 남겼다는 점, 김종영 예술의 실체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김종영은 추사 김정희와 세잔을 비교하면서, 추사를 높이 평가한 글을 남겼다. 울림이 큰 글이라 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 ‘김종영의 본질’을 서예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이는 홍복이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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