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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비엔날레 신드롬

윤범모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 ‘제8지구대’, ‘억조창생(億兆創生, 億兆蒼生이 아님)’,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생경하기 그지없다. 
아니, 진짜 외계인이 지구에 왔나 보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점입가경이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화성인의 상상적 미래언어라 한다. 진짜 화성인이 지구에 왔나 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와서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비엔날레이야기다. 올가을은 ‘비엔날레 비즈니스’ 철이 되어 전국 여러 곳에서 법석이다. 그런데 주최 측과 전시기획자 그들만의 잔치이지, 일반 대중은 딴전을 피우고 있다. 정말 대중에게 비엔날레는 강 건너 불이다. 거금을 들인 전시가 왜 그런가. 우선 전시 제목부터 난해하고 관념적이다. 이는 대중과의 편안한 소통을 출발부터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역대 비엔날레 사상 올해가 최악인 것 같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의 아이덴티티

올가을 나는 여러 도시를 순례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생경한 이름과 대면하고 당혹감을 안고 다니느라 더 그랬다. 고행, 바로 그것이었다. 전시장 다니느라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했다. 수지 관계의 결산은 마이너스, 감동은커녕 정말 재미없는 비엔날레 관람이었다. 왜 이렇게 재미없을까. ‘혼혈하는 지구’(부산), ‘제8지구대’(광주), ‘억조창생’(창원),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서울), 특히 ‘네리리’는 일본 시인 다나카와 슈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인용한 화성인 언어라 한다. 별것을 다 일본에서 빌려 온 셈이다. 그것도 “고도성장과 민주화 시기를 거쳐 성장해온 한 도시가 생애 최초로 봉착한 머뭇거림 앞에서 미래 시제로 고안해 보는 미술 언어”라 한다. 무슨 말인가. 비엔날레는 화성인의 전용물로 승화/전락해야 하는가.

신드롬(Syndrome)이란 말이 유행한 적 있다. 증후군(症候群)으로 쓰기도 하는바, 의학적 해설에 의하면, ‘어떤 공통성이 있는 몇 가지 증후가 함께 나타나는 병적 증세’이다. 병적 증세. 원래 신드롬의 어원은 그리스 언어로 ‘함께 달리다’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특정 인물에 대한 우상과 모방문화의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뭐 연상되는 것 없는가. 바로 오늘의 비엔날레 증후군을 일컫는 말이다. 대도시마다 비엔날레 병을 앓고 있다. 이런 대열에 끼지 못한 몇몇 도시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어떤 도시는 운영상의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예전의 부산비엔날레부터 이번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비엔날레 부작용은 폭발 위험물처럼 예측 불허이다.

비엔날레 비즈니스는 무엇보다 외형상 화려함을 추구한다. 거기다 아직도 ‘엽전 의식’이 남아있는지 ‘외제(外製)’는 무조건 우대받고, 상등품처럼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거기에 놓여 있는 작품이 전시 맥락과 적합한지 아닌지는 그다음의 문제일 때도 있다. 화려함의 경쟁은 설치작품과 영상작품 같은 분야가 돋보이고 있다. 눈요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엔날레는 ‘설치’가 설치는 무대로 바뀌기도 한다. 여기서 미술 문외한은 현대미술에 대한 오해를 나름대로 안고 돌아서기도 한다. 물론 전통성 위주의 작가들 불만은 많다. 상대적으로 평면 회화 작품은 냉대를 받아 왔다. 그래도 그렇지 ‘정통’ 회화작품의 홀대는 아쉽게 하는 부분이다. 특히 미술 입문의 미대생에게 비엔날레는 교육적 측면에서 과연 ‘교과서’일까.

비엔날레 신드롬. 왜 이런 증후가 번지고 있을까. 무엇보다 주최 측의 철학 빈곤이다. 일관된 맥락에서의 성격 부재가 원인이다. 매회 흥행사를 차출하듯 외부인력에 비엔날레의 운명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총감독 추천과 선정 과정의 일회성 구조는 정말 무책임 수준일 때도 있다. 체계적 그리고 항구적 조직과 연구의 결여에서 오는 예정된 실패의 구도이다. 비엔날레 기구가 비엔날레 문화 연구의 본거지가 아니라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비엔날레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모델로 지목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총감독의 역할은 중요하다. 탁상공론은 금물이다. 이번 전시 제목과 전시 내용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의식이나 시대정신과 같은 철학이 중요하다. 일과성 소모품에 불과한 전시기획자는 쌍방의 손해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비엔날레 비즈니스로 넘치고 있다. 사실 비즈니스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말만 시끄럽다. 거금을 투자하고 있지만, 얼마만큼의 성과를 얻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래서 신드롬, 바로 비엔날레 신드롬은 몸살을 앓게 한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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