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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도교미술과 요지연도 병풍

윤범모

요지연도, 경기대박물관


장생불사(長生不死), 인간사(人間事) 이보다 강력한 키워드가 있을까. 말로는 ‘죽고 싶다, 죽고 싶다’라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오래 살고 싶다는 것. 노래도 자꾸 하면 통하는가. 오늘의 한국사회는 고령화 사회로 ‘날로 늙어가고 있다’. 이제 백수(百壽)는 그림의 떡이 아니다. 하기야 인간이란 존재는 글자 그대로 욕망의 화신이 아닌가. 욕망 덩어리. 욕망 가운데 으뜸은 장수(長壽)일 것이다. 신선과 같은 존재, 이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운 존재가 아닌가.  

한국민화학회(회장 윤진영) 주최 학술대회, 주제는 ‘민화와 도교문화’, 참으로 특이한 행사장이었다(9월 13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도교(道敎). 우리 말 가운데 쉽게 쓰는 용어로 ‘유불선(儒彿仙)’이 있다. 하지만 우리네 생활 속에서 도교는 어디에 있는가. 거기다 도교미술? 도교의 핵심사상은 도(道)일 것이고, 이 같은 도를 조형적으로 표현한다면 도교미술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도교는 불교와 유교처럼 교단 같은 조직을 형성한 바 없어, 위력을 과시할 수 없었다. 거기다 도교의 신선사상은 현실을 초월하려는 탈속의 경지를 그리워했다. 신선이 되는 것, 이는 도교의 최고가치라 할 수 있다. 그러니 현세에서의 미술이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게다가 이런 어록은 어깨를 찍어 누르고 있지 않은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즉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 노자 『도덕경』에 있는 유명한 말이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도’ 운운할 것인가. 길 위에서 길이 어디냐고 묻는 그대여!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요지연도(瑤池宴圖) 연구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박본수 경기도미술관 선임학예사 발표). 요지연도는 한마디로 곤륜산(崑崙山)에 사는 서왕모(西王母)가 요지(瑤池)에서 베푸는 잔치 그림이다. 곤륜산 배경에 등장인물의 화려함은 이 그림의 형식을 더욱 빛나게 한다. 주목왕(周穆王) 이외 잔치에 초청받아 오고 있는 신선들의 모습은 가히 경이로운 경지이다. 석가, 사천왕,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노자, 수노인(壽老人) 등 30명이 넘는다. 어떤 그림은 선동(仙童) 선녀(仙女)를 포함하여 신선 100명이 넘게 등장하기도 한다. 도교적 세계관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십장생과 어우러지는 소재들, 그 가운데 복숭아는 중요하다. 복숭아는 불로장생을 상징하고 있는바, 반도(蟠桃)로 귀히 여겼다. 복숭아, 복숭아, 이를 열심히 먹어야겠다. 하지만 요지(瑤池)의 복숭아를 어찌 구할 수 있을까. 서왕모의 파티 초대장은 오지 않고 있는데. 그래서 요지에서의 잔치 그림은 각별히 사랑받게 되었을 것이다.

요지연도는 조선 후기에 집중적으로 유행했다. 정조시대 규장각 자비대령 화원을 뽑을 때, 출제된 제목은 ‘요지의 서왕모’였다. 정조 임금 시절 책거리 그림의 출발과 함께 요지연도의 유행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요지연도는 병풍 형식으로 그려졌고, 대개 화면을 좌우로 나누어 육지와 해상으로 구성했다. 물론 중심은 요지 연못가에서 잔치를 베푸는 장면과 다양한 등장인물들 그리고 장수와 관련된 소재들의 복합이다. 이른바 민화는 벽사 초복(辟邪招福)의 주제를 즐겨 채택하여 민화를 길상화(吉祥畵)라고 부르게 한다. 요지연도는 요즘의 민화동네 모사화에서도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기야 인간의 행복 추구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집안에 요지연도 병풍을 모셔놓고 장생불사를 꿈꾼다면, 시각적 산물로 이보다 훌륭한 그림 내용이 얼마나 더 있겠는가.

요지연도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여기서 팁 하나를 주고 싶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요지연도에 대한 비중을 의미하는 사례여서 소개하고자 한다. 시대는 일제 강점기인 1918년 1월이다. 이왕세자(영친왕)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본 천황에게 줄 선물을 챙겨야 했다. 그러니까 강제 폐쇄된 대한제국이 일본 황실을 위해 바쳐야 할 보물, 거기에 <요지연도>가 있었다. 일본 천황에게의 선물이 요지연도였다는 사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왕실 비장의 <요지연도> 병풍, 여기서 우리는 요지연도의 의미를 새삼 주목하게 된다. 장생불사의 상징 요지연도. 하기야 1917년 6월 순종은 단 한 번의 도쿄 행차에서 천황에의 선물로 홍옥(紅玉) 문방구와 산호(珊瑚) 세공품을 선택한 바 있다. 나라 잃고 진상품을 챙겨야 했던 조선 왕실의 비애, 그 비애 속에 비장품 요지연도를 포함했다는 사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도교문화의 상징적 이야기인 서왕모 주인공의 요지연도 병풍은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일본 황실 소장의 우리 <요지연도> 작품이 궁금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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