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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서예박물관의 미래와 현대서예 문제

윤범모

재개관한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어렵게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재개관했다.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서예박물관이라고 선전하면서 개관했던 곳이지만 현재 서예박물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서예의 사양길을 의미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게 한다. 하루 입장객의 숫자가 겨우 몇 십 명 정도라면, 정말 간판이나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예박물관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물론 이유는 단순하다. 무엇보다 현대사회는 지필묵의 시대가 아니다. 젊은 세대 가운데 붓을 잡아 본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기야 스마트폰 시대에 웬 붓일까. 거기다 한문 교육까지 강 건너갔다. 하얀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씨일 따름이다. 서예전에 가봐야 감동은커녕 재미도 없다. 그러니 이름만 거창하게 서예박물관이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절실한 것은 글자 그대로의 환골탈태이다. 한번은 죽어야 한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는 위기임을 절감해야 한다. 하지만
서예계는 조용하다.
서예박물관은 재개관 기념전의 하나로 ‘문자도와 책거리 특별전’(6.11-8.18)을 개최했다. 관객이 운집했다. 서예박물관 역사에서 최상위권의 관객동원 전시일 것이다. 하기야 우리의 책거리와 문자도처럼 국제 경쟁력 있는 장르가 얼마나 있을까. 책은 문장의 집적물이다. 문장은 글자의 연결이다. 결국, 책거리는 문자문화의 총체가 아닐 수 없다. 문자와 회화의 결합, 이는 현대미술이 추구했던 한 방향이기도 하다. 아니, 한때 문자 추상과 같은 분야가 현대미술계를 화려하게 수놓기도 했다. 문자를 기본으로 한 회화작품은 문자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서예란 무엇인가, 특히 현대 서예란 무엇인가, 따져보게 한다. 한 걸음 더 나가 전통의 본질 혹은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부분을 고민하게 한다.
우리 전통은 원래 서화동체(書畵同體)의 사상을 견지해 왔다. 아니, 시서화 삼절(三絶)이라 하여 시서화의 동질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던 것이 미술과 서예는 분리되어 딴살림을 차리게 되었고, 더불어 시서화 삼절이란 용어도 폐기되었다. 시를 읊조리고 그림 그리면서 글씨까지 쓰는 풍류, 오늘날 보기 어려운 과거가 되었다. 그래서 서예의 위상은 날로 낙하 되고 있는지 모른다. 서예는 시정신(詩精神)을 바탕으로 할 때 풍요로웠다. 본인의 자작시나 문장을 본인의 서체로 품어내는 것, 여기에 서예의 묘미가 깃들었다. 본인의 글 내용에 따라 서체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오늘날 이런 경지에서 붓을 드는 서가(書家)는 얼마나 있을까. 형식과 내용의 일치가 힘을 불러온다.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고, 또 남의 이야기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독창적 예술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서예’가 그리운 것이다. 현대인과 호흡할 수 있는 그 무엇, 바로 현대적 감성을 기초로 한 문자예술일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서예는 독창성과 시대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의미한다. 

서예박물관이 살아 남으려면 체질 개선
서예박물관의 책거리 전시를 보고 대중은 열광했다. 그런 사이에 희한한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서예계 단체장들이 서예박물관에서 책거리 문자도 전시를 개최했다 하여 항의의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아니, 칭찬해도 부족할 텐데, 이 무슨 희한한 일인가. 서예박물관이 살려면 대중과 함께 가는 운영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과연 현대사회에서의 서예는 무엇인가. 더불어 ‘현대 서예’는 무엇인가. 모든 예술품은 독창성과 더불어 시대정신을 담보하고 있다. 서예박물관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으려면 체질 개선해야 한다. 넓은 의미로 문자문화의 요람이 되어야 하고, 또 현대 서예의 모태가 되어야 한다. 독창성이나 다양성도 없고 폐쇄적으로 과거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서예박물관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추사선생은 전통 공부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석학이 붓글씨 연습으로 몽당붓 무덤을 이루었다고 했다. 추사는 <세한도>의 경우처럼 그림도 그렸지만, 오늘날 두툼한 책으로 출판했듯 많은 분량의 시를 썼다. 그야말로 시서화 삼절사상을 창조적으로 실천했다. 서예박물관의 간판을 유지하려면, 서화미술관이라는 대안도 있겠지만, ‘오늘의 서예’를 창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삼절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야 하고, 지필묵이라는 재료 문제와 더불어 문자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독창성과 다양성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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