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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재환의 유쾌한 딴지걸기

윤범모

주재환, 몬드리안 호텔, 2000, 컬러 복사, 148.3×112cm


‘민중미술’ 전시장에 웬 서양 명화? 그것도 몬드리안의 대표작을? 1970년대 답답한 시절에 일군의 젊은 미술가들이 의기투합했다. 미술판에 뭔가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 대중과 소통 두절의 ‘현대미술’에 딴지를 걸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1980년에 ‘현실과 발언’이라는 이색적인 명칭의 동인 전시가 선을 보였다. 미술회관(아르코미술관 전신)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창립전은 탄압으로 불발되었지만, 깜짝 ‘촛불전시’에 문제의 < 몬드리안 호텔>도 진열품의 하나로 끼어 있었다. 격자 문양처럼 직선으로 구획된 화면은 몬드리안의 대표작처럼 빨강색과 파랑색 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그림은 구획마다 가는 선으로 인간군상을 그려 넣었다. 몬드리안의 대표작을 차용한 명화 비틀기였다. 호텔의 내부 풍경은 춤추거나 술 마시는 장면, 그림 그리는 장면, 그리고 벌거벗은 남녀 등 언뜻 보아 호텔은 ‘역동적’ 공간이었다. 몬드리안에게 딴지를 건 주인공, 그는 바로 주재환이었다. 그는 몬드리안뿐만 아니라 마르셀 뒤샹을 비틀기도 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계단마다 사람들이 아래 사람에게 오줌 누는 장면을 그린 것. 풍자정신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주재환은 ‘현실과 발언’에서 화가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미술과 생활』이라는 월간 미술잡지가 있었다. 임영방 교수가 주간을 맡았고, 편집위원으로 성완경, 주요 필자로 원동석, 최민, 그리고 편집기자로 주재환, 김용태 등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주재환을 처음 만났다. 후에 잡지는 폐간되었고, 여기서 만난 젊은 혈기들은 ‘현실과 발언’ 창립 주동자가 되어 새로운 미술운동의 ‘문제아(?)’가 되었다. 잡지사에서나 동인활동에서나, 주재환은 무욕(無慾)의 화신과 같았다. 우선 작가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욕심이 없었다. 그는 항상 모임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 조성에 일가를 보였다. 미술대학을 한 학기 정도만 재학했다는 것, 가정형편이 어려워 야경꾼 등 밑바닥 삶을 체험했다는 것 등 그는 진짜 민중이었다. 그런 그가 나이 50이 넘어 유화라는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값싼 생활용품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유화작품보다 설치미술이나 오브제 작품을 선호하였다.

주재환은 늦깎이다. 70대에 이르러 화려하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이 유쾌한 씨를 보라’전(2000, 아트선재센터) 이래 간헐적으로 전시에 참여했지만, 본격 조명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이번 주재환 개인전 ‘어둠 속의 변신’(3.4-4.6 학고재)은 ‘주재환 제대로 보기’에 불을 지른 것이다. 미술계의 국외자 같았던 주재환의 진면목을 한 자리에 모은 ‘유쾌한 전시’. 유화작품들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오브제 활용의 작품이나 설치작품은 흥미진진, 그 자체였다. 주재환의 덕목은 ‘심각한 체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딴지걸기이다. 그래서 풍자정신은 매우 고귀하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 이는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웃음, 특히 거대 권력에 대한 비판에 의한 웃음은 통쾌하기 그지없다. 값싼 포장지를 이용한 서푼짜리 같은 작품들, 만약 길바닥에 뒹굴고 있다면 과연 ‘미술작품’으로 인정이나 받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까지 하게 만드는 작품들, 관객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주제는 심각하나 표현은 가볍게, 주재환의 장점이다.

풍자와 비판, 이는 오늘의 미술계에서 소중한 개념이다. 두개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부착한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과 브라질 판자촌의 비교는 눈물 나는 풍자이다. 브라질의 가난한 어머니는 배가 고파 우는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릴 뿐, 밥 짓는 시늉을 한 냄비 속은 밥 대신 돌을 넣고 끓일 따름, 빈부 차이의 극심한 대비는 주재환의 진솔한 목소리이리라. 굶주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진실 보도, 거기에 작품 주제가 살아 꿈틀거린다. 사회를 향한 발언은 주재환의 덕목이다. 그래서 현대미술과 사회를 향한 딴지걸기 ‘유쾌한 씨’ 주재환의 작품은 삭막한 우리 사회에서 감로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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