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1)코리아나미술관의 색깔 짙게 하기

윤범모

하룬 파로키,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1995


거대한 건물의 출입구, 거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언뜻 보기에 옷차림은 단정한 것 같은데 그들의 직업은 공장 ‘노동자’라 했다. 그렇다면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길, 노동자의 발걸음은 가벼워야 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겁게 보인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뒤에서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일까. 글쎄, 무엇일까. 권력, 자본, 투쟁, 죽음… 아무튼, 영상은 일거에 쏟아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주목하게 한다. 작품 제목은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1995)이다. 여기서 ‘떠나는’이라는 단어는 복합적이다. 물론 그들 노동자는 내일 정시에 다시 출근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공장문을 아예 ‘떠나는’ 신세일 수 있다. 여기서 떠난다는 의미의 깊은 함유가 가슴에 남는다. 하룬 파로키의 싱글 채널 영상 작품이 주는 과외의 소득이다. 이 작품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는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1895)에서 출발했다. 같은 제목의 뤼미에르 작품 120주년을 맞아 새롭게 주목한 것이다. 초기의 영화여서 움직임 그 자체에 의미부여를 더 했을 것이다. 하룬 파로키의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 지금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스페이스씨(이하 코리아나미술관)은 ‘필름 몽타주’(5.17-7.11)라는 특별전을 개최한 바, 위 작품을 비롯하여 국내외 작가 12명을 초청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첫 번째로 맞이하는 작품은 울루 브라운의 <공원>(2011)이다. 동서양의 이미지를 섞어 가상의 공원을 조성했다. 이를 위해 상공에서 360도로 촬영한 영상을 새롭게 편집하여 시각적 즐거움을 담았다. 베아트리체 깁슨의 <호랑이 마음>(2012)은 실험영화답게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추상적 범죄 스릴러’ 형식을 빌려왔다. 이번 전시는 24분 가량의 전편을 상영하기 때문에 영화광들에게 최고 인기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그밖에 스테판 서클리프의 <아웃 워크>(2013), 엘리자베스 프라이스의 <1979 울워스 콰이어>
(2012), 그리고 김아영, 박민하, 노재운 등의 작품이 전시됐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지난번에 ‘코드 액트(Code Act)’전시로 눈길을 끌더니 계속 미디어 아트로 자신의 색깔을 짙게 하고 있다. 멋있는 일이다. 성격이 있는 미술관, 이는 우리 미술계에서 요구하는 기본적 원론이다. 색깔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사명감과 더불어 자신감의 표현이지 않을까.

코리아나미술관은 성수대교와 연결되는 강남구 신사동 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총 10층의 약 800평 규모 건물에 코리아나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이 들어있다. 건축은 ‘살아있는 문화공간’의 개념으로 정기용 건축가의 작품이다. 이 미술관의 모기업은 코리아나 화장품이고, 설립자는 유상옥 회장이다. 유 회장은 미술품 컬렉터로 이름이 나 있고, 지난 40여 년간 6,500점 이상의 작품을 수집했다. 그 사이 국립중앙박물관회 회장을 역임했고, 또 박물관에 문화재 200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화장품 회사의 특성과 어울리게 코리아나화장박물관은 여성의 화장(化粧)문화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소장품 전시사업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는 바, 그 가운데 하나는 한국 근현대 작가 특별전이다. 첨단의 현대미술에서 우리의 전통까지 아우르는 미술관, 하지만 매체 미술에 남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는 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은 강남권에서 이채(異彩)를 이루고 있다.

몽타주는 별개로 촬영한 장면들을 선택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기법의 하나이다. 몽타주, 이질적인 장면의 결합에 의한 새로운 이미지의 연출, 얼마나 매력적인 기법인가. 그러고 보니 현대사회의 특성은 몽타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용자와 노동자의 결합, 남과 여의 결합, 도시와 시골의 결합, 옛것과 새것의 결합, 이는 멋진 결합일 것 같다. 하지만 권력과 자본의 결합, 이는 우리 사회를 얼마나 어지럽게 했는가. 몽타주는 흥미로운 분야이다. 예술에 있어 몽타주 기법은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요구한다. 영상 예술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미술관이 도심에 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새삼 코리아나미술관의 분투를 빌 따름이다. 왜냐하면 유승희 관장이 나에게 들려준 말이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관은 개관 10년 동안 운영비로 약 100억 원을 지출했어요. 기업의 지원과 사명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어허, 10년간 100억원 지출! 기업과 예술의 싱그러운 결합, 멋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