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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공모전, 한 시대의 예술적 풍경이 만들어지는 한 방식

김동일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안상철 상장


예술은 무엇일까? 누구에게는 사무치는 감동이고, 또 어느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에 얽힌 이미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예술은 사회적인 것들이 서로 관계 맺는 한 형태이다. 한편에서 국가가, 다른 한편에서 그에 대항하는 또 다른 사회권력이 예술에 개입한다. 예술은 그 때마다 국가/사회세력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개입의 효과를 환류(還流)했고, 또한 그 때마다 예술의 모습 또한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때 공모전이란 바로 예술과 사회권력이 서로 교차하면서 서로 효과를 주고받는 첨예한 환류점으로 기능했다. 공모전( 公募展)은 권력과 예술이 그야말로 공모(共謀)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공모전을 통해 국가의 정치적 지배의도와 사회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제고하려 했던 예술가들의 욕망이 서로 얽히면서 당대 예술의 전체적 풍경을 만든 것이다.

‘한국미술 공모전의 역사’(6.26 - 10.31)는 해방 이후 한국화단에서 공모전의 역사를 뒤쫓는다.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조사는 이 전시가 과연 일개 사립박물관에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함께 나온 단행본은 전시에 담지 못한 다양한 담론들로 가득하다. 평자는 전시장을 가득 메웠던 도록과 상장들 앞에서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바로 당대 대한민국의 사회와 예술의 모습을 증거하는 인증서들이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공모전이 많았다. 그야말로 “공모전의 천국”이었던 셈이다. 그 이유는 해방 후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양한 권위와 세력의 분화와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해방 후 국가는 일제강점기에 선전이 그랬던 것처럼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개입한다. 국가에 이름으로 예술에서 최고 위계를 결정한다. 대통령이 국전 최고상인 대통령상 수장자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관찰가능한 최고의 스펙타클이라 할 수 있다. 1957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은 국가와 더불어 사회공간의 주도권을 다투던 언론의 위상을 보여준다. 당시 언론이 떠오르는 위상을 과시하는 방식은 대범하고, 과감했다. 즉 구상양식이 독점하고 있었던 국전의 대척점에 새로 부상하고 있었던 추상양식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한 전략적 양식 선택은 한편으로 예술계 내에서 서로 다른 이미지 조직방식을 선택하는 예술가들의 집단 형성을 통한 세력의 결집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공간에서 조선일보의 위상을 국가의 위상에 상응하는 지점에 놓을 수 있게 했다.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은 그러한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는 예술계와 사회공간의 역동적 변화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 ‘MBC미술대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지만, 그 효과는 공모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참여자들의 전략에 따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공모전을 꼭 사회정치적 관점에서 삐딱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다. 공모전을 통해 우리 화단은 비로소 예술적 인정을 생산하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갖게 되었다. 이는 자율성이 척박한 당대 상황에서 예술가를 생산하는 효과적인 외부적 자원으로 기능했다. 공모전이 생기고 사라질 때마다 우리는 스타작가들을 갖게 되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작가들이 우리 미술계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공모전이 위상을 잃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의 지적처럼 단순히 공모전 운영상의 비리나 모순 때문일까? 그 질문에 대한 사회학적 대답은 어쩌면 시장의 확대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시장의 인정은 국가나 사회권위가 수여하는 명예을 넘어선다. 예술작품의 천문학적 시장가격은 그 어떤 공모전이 수여하는 명예보다 우월해진 것이다. 시장이 예술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 예술계는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쉽게도 이 전시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현재의 자리에서 개최하는 마지막 전시라는 소식을 접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발전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우리 미술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한다. 



- 김동일(1969-) 서강대 사회학과 학부, 석사, 박사. 한국사회학회 논문상(2009),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분(2011) 수상. 저서『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갈무리, 2010).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 기초교양교육원 조교수. 예술현상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풀어내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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