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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아카이브의 관점에서 본 ‘백남준 그루브_흥’전

비평그룹A4

지난 연말부터 정초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올 한해 미술계의 관심을 주도할만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렸다. 올해 백남준의 서거 10주년을 맞아 국내외의 여러 기관과 단체가 관련 추모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이 배출한 세계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예술가의 10주기 이거니와 대중적으로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테마이니 미술계가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 첫 문을 여는 전시가 바로 세종문화회관의 ‘백남준 그루브_흥’전(2015.11.13-1.29)이었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해 신년으로 이어졌으니 10주기 이슈를 선점하려는 노력이 엿보였고, 전시 마감 날짜를 백선생의 타계일에 맞춘 기획의 순발력 또한 놀랄만했다.



전시전경


전시 제목에는 일반에게는 약간 생소한 ‘그루브(GROOVE)_흥’이란 말을 넣었다. 흥이란 흥미 있다고 할 때의 흥이라고 보이니 넘어가자. 원래 그루브란 LP판에서 음악을 담아 재생할 수 있도록 음역에 맞추어 커터기가 파놓은 홈과 음반 전체 흐름을 말하는 단어다. 판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가장자리에 카트리지를 올리면 음악이 재생되기 시작하는데, 끝나는 부분에서 자동으로 카트리지가 떨어져 리턴할 수 있도록 하는 신호의 영역까지 그루브가 이어져 있다. 즉 시작부터 끝까지를 상징하는 말이기도하다. 이 용어는 뉴욕의 영상 아카이브인 EAI(Electronic Arts Intermix)가 소장한 백선생의 작품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에서 따온 듯한데, 백선생의 예술가로서의 평생 이력과 흔적 및 사상적 흐름 등을 작품과 함께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기획의 의도를 상징하려 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전시는 요즘 미술에서 유행하는 아카이브 전시를 표방했다. 아카이브는 요즘 와서는 그 의미가 좀 달라졌지만, 원래 전문연구자들 또는 정책결정자들에게 특정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정보와 그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백선생의 작품만이 아니라 모든 삶과 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 전시가 당연히 취해야 할 방법이기는 했다. 실제 전시를 보면 기획자가 백선생 관련 기록물이 포함된 여러 아카이브를 검색해서 종합하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백남준 전시 사용설명서』로 이름을 붙인 전시 도록과 전시장 입구 설명문에서 기획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파동이라는 아이디어로 ‘전자와 예술과 미디어융합’이라는 그의 20세기의 비전을 30세기(AD 3,000년)의 시간과 빅뱅우주라는 공간으로 확장했던 백남준의 진면목을 그의 작품과 다양한 아카이브 체험을 통해 춤과 음악을 즐기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유의 스케일은 놀랍고 그의 사유의 센스는 흥겹다.”-<백남준 그루브_흥> 서문 중에서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차분히 읽어보면, ‘백선생은 전자와 예술이 결합한 20세기의 문화적 현상을 30세기라는 사유 불가능한 미래의 비전으로 확장시켰고, 그 위대함을 가능하도록 한 작가의 진면목을 작품과 아카이브 체험으로 이해해 보자’라는 취지였던 것 같다. 사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다양한 아카이브를 체험하라는 말이었다. 전체적으로 전시에 설치된 작품들은 대부분 국내의 미술관과 방송국 등에서 빌려 온 것이고, 관련 기록물은 뉴욕의 아카이브 EAI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작품의 대다수는 국내의 것이다 보니 신화가 될 정도로 유명해진 이후의 작품들이어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정작 전시의 의도와 잘 맞는 전시물은 아카이브가 소장한 관련 영상 및 매뉴 스크립트 기록물 즉 Documents(아카이브 구성의 최하위 단위의 개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온 것은 선생의 도록 정도이니 아카이브에서 왔다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전시의 핵심은 바로 아카이브인 EAI의 소장 기록물이었다. 여기에는 백선생의 사상적 궤적과 작업의 행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키워드가 담겨 있었다. 결국 다양한 아카이브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아카이브인 EAI가 소장한 기록물을 체험하는 것이 이 전시의 가치였다.


이번 전시는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는 아트아카이브가 한 사회의 문화유산으로써, 지식 집약체로써, 연구와 체험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고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둘째는 한국 미술계가 아카이브에 대한 이해가 박약하고 더 나아가 상당한 오해를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아카이브는 단순한 자료 혹은 자료실이 아니다 



비평그룹 A4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소속 비평그룹으로 아트아카이브 연구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아트아카이브 운영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기위해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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