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객원연구원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2023.8.3 - 10.25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하여 ‘상상’에 주목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9명의 미술작가와 1명의 시인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영상, 사운드, 텍스트,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북서울미술관이 지나온 궤적의 아카이브적 나열을 통해 현재를 정비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감각하려는 시도 속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적극적인 창조 행위로서 ‘상상’에 주목한다. 상상의 형식적, 주제적 본질이 어떻게 예술과 연결되는지를 탐구하고자, 전시는 상상하는 언어가 지닌 특유의 문법을 동시대 예술 작품에 내재한 특수성으로 치환하여 살펴본다. 이것은 우리의 현재가 어떻게 과거를 끌어안고, 미래를 맞이하며, 시시각각 도래하는 미지의 세계를 함께 개척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미학적 탐색이자 창작 실험이 될 것이다. 
 

구기정,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 깊은 곳>, 2023, 단채널 비디오, 폴리카 

인공 생태계의 자연과 디지털 기술에 의해 증강된 자연의 이미지가 한 장면 속에 포착될 수 있도록 고밀도의 얇은 상자 안에 응축, 설계되었다. 서로 이질적인 두 대상이 결합된 이미지는 감상하는 내내 몰입감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성을 인식할 수 있는 잠재적 균열의 순간들을 창출한다. 


전병구, <베를린, 캔디, 히잡을 쓴 여자>, 2021/2023

이미지의 재현으로는 한정될 수 없는 이 일상성의 강렬함이 어디서 연원하는가에 관한 궁금증과 헛헛함은 작품들을 더욱 골똘히 들여다보도록 한다. 일상의 장면들을 수집하여 캔버스에 옮긴 사물과 풍경 외에도 화면 속 대상이 발산하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기이함으로 인해 공간이 통째로 대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독특한 정취의 작품들이 함께 구성된다. 또한 전병구 작가는 회화를 하나의 창이라고 생각하며 관람객이 감정을 투여하길 언급한 바 있다.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2002, 전기램프, 나무, 전선,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이끈 선구자 박이소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당신의 밝은 미래>는 나와 당신의 ‘밝지 않은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허상을 쫓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나 체념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라는 뜻일까. 2002년의 박이소가 바라보았던 미래는 이제 우리의 현재이거나 과거 혹은 여전한 미래다. 그렇게 이 작품은 우리의 시간을 비추는 상징적 기호가 되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 유일한 과거 작품으로, 2002년작이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박경률, <만남의 광장>, 2023, 캔버스에 유화, 종에 유화, 종이롤, 도자기, 
스티로폼에 석고와 수채, 나무봉, 나무상자, 아크릴튜브, 구슬, 마스킹테이프, 고무줄, 거울, 조화, 공산품, 오렌지, 파

이 작품은 회화와 조각, 사물들을 구성하는 물질, 그 사이를 떠도는 정감,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우리의 고유한 경험이 만나는 장소다. 배치된 개별 작품들은 연결됨으로써 연장되고, 상호참조를 통해 재정의 되며, 공간에 새로운 맥락을 창출한다. 이러한 작품들 간의 관계는 이곳을 방문하고 매개하는 관람객과의 관계를 통해 다시 재배치 가능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재정의된다. 물질과 비물질의 마주침 속에 이 잠재적 창조의 공간은 각각의 구성요소들이 미지의 시간을 맞이하며 사적인 공간을 공적인 장소로 변화시키는 ‘광장’이 된다. 

  

김상진, <That body of yours is absurd>, 2023, 스테인레스, LED 조명, 200×400×6cm

 인터넷 밈(meme)을 차용하여 시각화함으로써 동시대 디지털 환경이 증폭시키는 부조리의 양상을 드러내는 방식은 김상진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작업 가운데 하나다. 단지 밈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을 왜곡함으로써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듯한 이 작품은 또한 언어와 기호 체계에 의거하여 작동하는 우리 세계를 은유하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벽에 투사된 그림자에서 사라져버린 문장이라는 상징적 형식을 통해 이러한 주제적 측면을 더욱 강화한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이 문장은 사라짐으로써 현존을 드러내고, 더 이상 도래하지 않음으로써 현재를 추동하는 미래-과거로 남는다. 


기슬기, <지난 전시와 다가올 전시를 위한 기념비>, 2023,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 전시 포스터, 나무합판, 120×120×240cm 

이 작품은 동일한 포스터가 반복해서 덧붙여진 덩어리로서의 조각-이미지를 통해 동시대의 디지털 이미지가 생산, 공유, 삭제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이 설치된 현재전시,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의 포스터를 재료로 제작된 이 인쇄물 기둥을 통해 현재전시가 과거를 아우르고 있고 이 전시가 끝나면 또 끝난 전시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어 과거와 미래 사이의 경계로서 현재라는 개념을 조각적으로 치환한 기념비 형태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최재원, <목련 나무 아래에서>, 2023, 텍스트

《SeMA 앤솔러지: 열 개의 주문》을 위해 집필된 열 한 편의 시로 구성되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지나온 10년을 기념하고, 다가오는 1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상상의 언어’를 주제로 창작된 이 작품은 고유하고 독자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른바 계열시의 형식으로 선형적인 동시에 비선형적이며, 서사 구조와 비서사 구조가 혼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상상하는 언어로 가득 찬 전시의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잉여’이자 ‘내부의 공백’으로서, 전시가 스스로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작동한다. 전시의 충만함과 결핍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목련 나무 아래에서>는 이 전시에 또 다른 틈을 내는 제3의 공간이자, 책갈피처럼 존재한다.
 
박성준, <Cinema Experience(#Tribunalism)>, 2023, 설치, 컴퓨터, UV라이트, 스마트 조명, 
스피커, 무선 헤드셋, 프로젝터, 가죽 소파, 가죽 카펫, 약 9분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 작품은 융복합 전시/공연인 <Cinema Experience, With Space Without Screen Ⅱ>(2021)의 특정 장면을 발췌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불안과 욕망이 함께 커져 감에 따라 개인과 집단의 심리적 경계가 무너져가고, 자신의 불안을 타자의 불안으로,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관계의 폭력과 갈등 구조를 시청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미디어가 자본주의 체제와 결탁하여 생산해내고 부추기는 광기와 그로부터 연유하는 정신분열적 상황들이 단편적인 단어와 문장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들, 혹은 뉴스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상투적인 문구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날카로운 사운드 조각처럼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권혜원, <초록색 자기로 된 건축물>, 2023, 2채널 비디오, 컬러, 스테레오 사운드, 미러볼, 8분

‘미술관’을 배경으로 시간에 대한 복합적인 통찰을 담은 SF 단편영화다. 화면은 미래의 어디선가 재생되고 있는 가상의 시공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안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과거를 탐색하는 플레이어의 시점을 따라가는 동안 기록, 기억, 픽션이 혼합되고, 진실과 허구가 뒤섞이며 왜곡된다. 관람객, 작가로 보는 미술관과 직원으로서 보는 미술관은 다르다고 작가는 언급한 바 있으며 이에 흥미를 느껴 미술관 직원을 인터뷰 촬영했다. 직원들이 차를 마시는 ‘휴게공간’이나 바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풍동실’과 같은 숨겨진 장소들을 포탈을 타고 시공을 점프하듯 이동할 수 있다. 화면에는 이미 지나버린 어떤 미래를 기준 삼아, 미래가 된 과거 나 나오며 뒤엉켜 있는 시공간을 넘나들어 미래와 과거가 혼재된 미술관이 나온다. 남겨야 하는 것과 누락되는 것, 그리고 폐허가 돼도 남아있을 것 같은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은주, <공중 형태>, 2023, 캔버스에 유화 220×160cm

이 전시에서 선보이는 네 점의 신작은 <공중 형태>의 연작으로 각 작품에 표현된 운동성은 그 자체로 시간을 응축한 채 조금씩 밖으로 흘려보낸다. 생성부터 사라짐까지 지속되는 동적 이미지의 흔적이다. 흔적은 지워지고 상실됨으로써 반복된다. 움직이는 물체의 조형성을 포착하는 동시에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지속의 순간들을 종합하려는 이 작업은 결국 흔적으로서의 회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작가가 주로 정해진 형태가 없이 불완전하고, 쉽게 변형되며, 부스러지거나 흘러내리는 파편적 사물들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장면 속에 동일한 사물을 반복해서 등장시키며, 대상의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장면에 담는 노은주의 회화는 생성과 사라짐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이채현 cogus0215@naver.com

영상 : 김달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