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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미술사 잊혀진 미술가들 학술심포지엄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객원연구원



2019년 5월 17일(금) 오후 1시50분~6시 국립문화재연구소 주최로 월북미술가 학술심포지엄 『분단의 미술사 잊혀진 미술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1층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진행되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1984년부터 시작된 북한 문화재 학술연구의 일환인 월북미술가 연구를 통해 지난 연구과정과 분단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남과 북으로 분단된 미술사를 하나로 잇는 가교의 역할을 모색해 보고자 마련되었다.

식순은 국민의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정창운(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 사회, 최종덕(국립문화재연구소장)개회사,윤범모(국립현대미술관장)축사로 진행된 후, 심포지엄은 총 2부로 나뉘어져 개최되었다.



이날 개화사를 맡은 최종덕 연구소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88년 해금 전부터 정보를 취득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북한 문화재에 대한 민족공동의 유산이라는 당위감(사명감)을 가지고 지난 50년간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특히, 냉전과 북한문화재가 금기시 되던 사회구조 속에서 잃어버리고, 등한시되었던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을 한국미술사에 잘 끼워 넣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최종덕소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본격적인 연구시작에 앞서 월북미술가연구자들과 월북미술가 후손들이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윤범모 관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은 공백기의 남북미술사를 복원하는 아주 뜻깊은 자리이자, 남북 화해의 시대에 통일의 길목에 있는 연구로 활성화되는 민족적 사업이 되길 바란다고 축사했다. 윤관장은 1990년대 초 예술의 전당의 최초 북한미술전시 기획 담당,평양 당국의 남한 미술인으로 첫 초청방문, 평양미술기행 단행본 출판 및 다수의 월북미술가 관련 논문 집필한 북한 미술 전문가라는 이력이 있다. 



1부 연구주제발표에 앞서 사진촬영 시간을 가졌다.
최열(미술평론가), 김이숙(연구자), 박대남(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실장), 임덕진(임근홍 화백 아들), 윤범모(국립현대미술 관장), 최종덕(국립문화재연구소장), 정단일(정종여 화백 손자), 박재영(박문원 화백의 조카), 박윤희(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1부
1부는 각 세 개의 연구주제 발표로 30분씩 시간이 배분되었다.



박윤희(학예연구사)은 ‘해방 후 미술계 분단과 월북미술가 연구 의미’라는 주제로 연구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박 연구사는 이번 연구주제 발표가 새로운 연구자료 공개보다는 미술문화재 연구실이 새롭게 시작한 월북미술가 연구사업의 취지와 의미를 소개하는 기조발표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1.월북 미술가 연구를 시작하며: 문화재가 된 근대 회화
1984년 남북 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에 대한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1998년 북한의 학술정보서비스를 일원화하라는 정보지침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면서, 2016년 남북문화의 이질성의 원인과 배경에 의문을 가진 계기를 설명한다.이에 대한 분석으로 문화재에 대한 남북의 전시체계가 시간적으로 다르게 전개되었음을 지적하며, 현 문화재의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하여 도입을 근현대 미술에도 적용되는 등록문화재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현저히 낮은 참여로 인해 근현대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문화재 가치평가의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2.해방 정국과 남북 미술계의 분단
분단직후, 북한의 미술계는 당의 지원하에 각 지역마다 조직을 결성하고, 선전용 초상화와 기념탑 제작을 한다. 반면, 남한의 미술계는 좌우로 편향되어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이러한 남북의 상황을 비교하며 월북미술 연구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조명한다.
3.북으로 떠난 미술가들과 그들의 사연
6·25전쟁 이전에 월북한 작가는 본인의 소신이나 사회경제적보장의 도전인 반면, 전쟁이후, 대부분의 미술가들은 인민군 치하 3개월 동안 스탈린과 김일성의 선전용 초상화 제작에 대한 부역 심사를 받자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민군을 따라 월북하는 사연을 조명한다.
4.월북 미술가의 해금(解禁), 그리고 미술사 연구 과제
1988년 해금 이후 이구열, 윤범모, 최열, 김복기에 의한 많은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오랜 시간 동안 망각된 만큼 소실되어 있는 작품현황을 제시한다. 이 현황에 대한 앞으로의 과제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미술평론가뿐 아니라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최열(미술평론가)은 ‘월북미술가 복권과 북한미술사 인식의 기원’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북한미술바로알기운동과 월북미술가 연구는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개된 북한미술에 대한 통제(국가보안법 및반공법과 같은 초헌법)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정족공동체가 처한 의지에 대한 가능성으로 발현된다. 특히, 통일운동의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로 북한미술을 아는 것과 월북미술을 공부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1. 북한미술바로알기운동
1987년 무렵 대학학생회 및 동아리를 시작으로 최열 평론가는 대학에서 북한미술 슬라이드강의를 진행한다. 특히, 북한미술바로알기운동에 나설 수 있는 거점이 되었던 1979년 국토통일원에서 간행한 이론서 『북한미술』, 1980년 일본에서 간행한 화보집 『조선미술박물관』, 1983년 사단법인 북한연구소에서 간행한 『북한총람』, 『문학예술사전』 등 네가지 자료를 소개한다.
『북한미술』 간행본은 1979년 국토통일원이 미술가에게 의뢰하여 반공시선을 담은 이일, 유준상, 오광수, 화가 윤명로의 집필이 수록된 책이다.

가. 북한미술 연구사
1979년 군사정권당시 북한미술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연구와 이에 반해, 1988년 신군부독재가 완화되면서 계간미술과 가나아트의 북한미술 특집에 대해 다룬다.

2. 월북미술가 연구
북한미술바로알기운동과 다른 맥락에서 시작한 월북미술가 연구의 개념과 영역을 설정하고,  김복기 기자가 발굴하고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한 특집, 연구논문, 단행본, 월북미술이론가 중심으로 전집간행본 등을 소개한다. 

가. 월북미술가 연구의 기원
북한미술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및 해방직후의 미술사가 중요한 까닭은 분단이전의 전체상이기 때문이다. 북한미술과 월북미술가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남아있는 이데올로기적 태도와 관점을 인정하고, 통일된 미술사적 서술을 위해 남한 중심의 집필이지만 북한에 대한 성찰적 태도 또한 놓치말아야 할 기본자세임을 설명한다. 특히, 객관적 관점과 태도를 위한 귀납적, 사실적 연구방법을 제시했다. 



김복기(아트인컬쳐 대표, 경기대 교수)기자는 ‘‘분단’의 미술사에서 ‘통일’의 미술사로 - 월북미술가 재조명과 연구과제‘라는 주제로 연구발표를 하고 있다.

1.월북, 월남, 이산, 분단의 표상
이쾌대(50점)와 변우성(175점 중 45점)과 같이, 획기적 연구성과가 있는 몇몇 월북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0점이하로 이러한 연구한계 때문에,  월북미술가 연구는 미완성 프로젝트임을 시사한다.
2.다시보는 월북미술가의 윤곽
월북미술가의 윤곽은 확인된 조사에 따르면 거의 170~200명 수준에 이른다. 해금조치 명단은 이미 그 당시 화단의 중견작가로 명성이 있던 작가이다. 반면, 월북한 청년작가, 미술대학 학생, 고등학교 재학생은 북한자료에 상당부분 올라가 있다. 현 상황에서 월북시기나 배경에 따라 월북미술가들의 윤곽을 되짚어 볼 필요성을 제시한다. 
3.북한미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월북미술과 관계된 북한미술의 현재 동향을 설명한다. 최근 북한미술의 동향 중 흥미로운 점은 미술과 외화의 관계다. 90년대초반 북한은 고려청자등으로 외화벌이를 한 반면, 지금은 만수대 대외개발(MOP:만수대 OVERSEAS PROJECT)의 기념비적 조각이 제 3세계(아프리카)에 설치되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 하나는, 90년대 이후로, 북한 자체내의 도록이나 출판물 생산량은 현저히 적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미술계의 인적구조는 해방직후 북한미술과 월북미술이 섞이면서 미술계의 인적구조가 재편된 사실이다. 특히, 북한미술은 월북미술가, 재북미술가, 제3세계 월북작가로 볼 수있다.
4.이질성의 간극을 좁히는 길 
1)북한의 자료생산이 낮아 적기에 공적차원의 정보교류가 필요하다. 그에 따른 인적교류에 있어서는 월북미술가의 생존가족을 이산가족찾기와 같은 인도적 차원의 접근 필요하다.
2)미술사, 박물관, 언론 종사자 등 전문가 인력이 필요하다.
3)전시교류가 필요하다. 전시장르는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공예와 같은 쉬운 장르부터, 전시장소는 제3국을 통한 완충된 지대에서 시작하는게 필요하다.

2부
정현웅, 박문원, 임근홍, 정종여 월북미술과 소개 영상을 상영하고 좌담회가 진행되었다.



최열, 김복기, 임덕진, 정단일(정종여 화백 손자), 박재영, 신수경(연구자, 정현웅 화백의 가족을 대신해서), 박윤희(진행)
‘분단 70년, 기억 속 그들과의 만남’을 주제로 진행자 박윤희 연구사, 패널 최열, 김복기, 미술가 후손들이 좌담회를 가졌다. 

박윤희 연구사: 월북하게 된 동기, 혹시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없는지?
김복기 대표: 월북의 사연도 중요하지만, 우선 월북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시점, 배경의 논의가 필요하다. 월북미술 연구라든지, 분단미술사를 통일미술사로 끌고가는데 있어서, 월북 문제에 억매이기 보다는 북으로 간 미술가들에 대한 통일미술사에 초첨을 맞추는 것이 앞으로 연구의 진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박윤희 연구사: 연구소의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최열 평론가: 국가보안법이 있지만 국가체제로는 심하지 않은 시대이고,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우리에게는 남북/월북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월북이라는 말은 단순히 북쪽으로 갔다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된다. 무엇보다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에 충실한 연구이다. 현장에서 연구를 많이 한 김복기 기자나 새롭게 합류한 신수경 연구관 등이 문화재청,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앞으로 풍성하게 연구를 해 나가면 유족들이 겪었던 역사의 빈자리들이 채워질 거라 기대된다.
김복기 대표: 유족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거나, 유족들이 혈육에 대한 미술사적 조명에 대한 열망이 있거나 그런 경우인데, 연구가 유족차원에서 진행되어 왔고, 그에 따른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에 여전히 한국에 와야되는 월북미술가들의 대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공적차원에서 작품수집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된다. 상당부분 미술관에 소장이 되어있지만, 아직도 소장처가 불확실하고, 작품구매에 대한 참여와 소장처에 대한 체계적이 조사연구 이런 것들이 이루어질 때 남북간의 이데올로기를 떠나 통일의 미술사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원고작성 및 사진촬영: 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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