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관람에 앞서 이충석 씨는 남편인 한묵을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던 분’이라 말하며 평생을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했던 남편의 모습을 회상했다.
<한묵: 또 하나의 시詩질서를 위하여>展 전시장 입구
이 전시는 한묵이 추구한 작업세계의 본질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시는 지리적으로는 서울시대와 파리시대로 크게 구분되어 있으며, 1950년대의 구상작업부터 시공간이 결합된 역동적 기하추상이 완성되는 1990년대까지의 작업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작품 변화의 특징을 조명하고 있다.
1953년에 제작된 한묵의 첫 번째 작품 <공장지대>
전시 제1부인 서울시대는 작가의 작업세계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다. 1950년대 전반기는 한국전쟁의 참상, 가족이산, 가난에 대한 경험들이 작품에 주로 등장하며, 195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적 부조리와 사회상에 대한 개인의 감성들이 주요한 소재가 되며, 가족, 십자가 등이 주로 그려졌다.
<가족>, 1957
제2부 파리시대Ⅰ는 1960년대에 해당하며, 평면구성에 주력한 작가가 대상이 완전히 사라진 평면을 색, 선, 형태로 자유롭게 구성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십자구성>, 1969
제3부 파리시대Ⅱ는 한묵의 예술세계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1970년대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기 작가는 공간에 속도를 담아내는 새로운 공간개념을 모색했고, 평면에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판화작업에 몰두했다. 특히 컴퍼스와 자를 사용하여 엄격하게 계산된 동적 공간구성을 시도했는데, 이는 동심원, 나선, 방사선으로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다.
<푸른 나선>, 1975
제4부인 파리시대Ⅲ는 1980년대 이후에 해당된다. 한묵은 현실의 삶을 우주의 유기적인 공간 개념으로 확장하면서 이를 ‘미래적 공간’이라 명명하며, 색과 선이라는 조형요소만으로 완전해지는 시각예술의 독자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미래적 공간’에 대한 탐구가 지속된 이 시기는 기하추상 작업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봉>, 1991
제5부인 파리시대Ⅳ는 1980년대부터 말년까지로, 이전의 기하추상 작업과는 달리 먹과 한지, 종이 콜라주가 주요한 매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5년에 제작된 종이 콜라주 작품 <외치는 사람>
특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드로잉 작업은 한묵의 작업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심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계산한 식들이 적혀있는 드로잉
전시의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한묵의 서예작품과 전시 관련 자료 및 생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상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작가의 인생과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요망금강(遙望金剛)>, 연도미상
이번 전시와 연계해 2019년 3월 9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공동주최로 개최되는 학술심포지엄은 한국미술사에서 한묵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