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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불편하게 기억하기: 히로시마 원폭 피해와 미술

김현재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3층에는 원폭피해 참상과 원폭 투하 당시의 현장을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주로 생존자이자 일반 시민들이 그들의 기억을 통해 그린 작품들로, 기념관은 약 2천 여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사실 문화유산학계에서 히로시마라는 단어는 전지구적 기억 문화 (global memory culture) 연대의 상징적 존재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연대하여 희생의 기억과 실천적 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우리에게 (필자에게도) 왠지 모를 불편함을 준다.
그렇다고 이들의 행위를 부정하기엔 생명 존중에 관한 윤리적 가치가 충돌한다. 갈등의 역사가 지속되는 지금, 각기 다른 지역의 희생의 역사와 그 시각예술의 표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연대의 역사는 1963년 ‘히로시마-아우슈비츠 평화의 행진 (Hiroshima-Auschwitz Peace March)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반핵활동가인 4명의 일본인이 히로시마부터 아우슈비츠까지 순례의 여정을 하였고, 아우슈비츠에서 이들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만났다. 이후 히로시마-아우슈비츠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이들은 공동 전시회를 통해 폭력적 역사와 희생을 알렸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15년 뒤에 중단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들어 ‘숭고한 희생자 (noble victim)’라는 관념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고, 메모리 붐으로 인해 전 세계 곳곳의 희생자의 역사가 경쟁적으로 봇물이 터지듯이 드러났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민할거리가 생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또는 누구의 희생을 추모해야 하는가, 그런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우선 한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라는 역사를 생각할 때, 한국인들에게는 우선 식민지 역사와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로서 일본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원폭투하로 인한 그들의 패망은 한국의 해방을 가져온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원폭 피해는 무관심해질 수 있다. 또는 당시 조선인이었던 한국인 피폭 희생자 문제 등 한국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는 견해도 존재할 것이다. 군국주의의 희생자로서 당시 일본의 일반 시민들의 입장을 들여다보고 그들 또한 생명이 희생된 한 집단으로서 생각하는 견해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기억 또는 해석은 이렇게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 기억의 충돌에서 가치 판단을 위해 대개 윤리성을 판단의 기준으로 내세운다. 윤리적으로, 식민지배를 통한 타국의 주권 박탈과 억압은 나쁜 것이다. 또한 전쟁의 폭력 속에서 민간인을 희생시킨 원폭 투하 또한 나쁜 것이다. 이런 ‘나쁨’의 역사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윤리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모호한 존재, 즉 회색지대가 나타난다. 바로 히로시마 원폭 피해 일본인과 같은 존재이다. 식민지배자라는 가해자이기도 하였으나, 세계대전의 피해자인 사람들이다. 역사를 교육할 때, 각국은 자국이 어떤 일을 잘했는지 얼마나 그것이 옳은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보고 싶다. 역사를 바라볼 때 옳은 것을 찾기보다, 그른 것을 찾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랬을 때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이들에 대해 다양한 인식과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동아시아의 ‘화해학(reconciliation studies)’을 창설한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역사의 화해에 있어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다양성, 국민 감정에 대한 존중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원칙으로 역사적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여기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바로 ‘과정’이다. 화해를 위한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통시적 이해가 선험될 필요가 있다. 화해 또는 평화와 같은 사회학적 개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화해에 있어 첫 번째 필수 과정은 ‘변화’라고 주장한다. 양측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입장을 위해 변화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일본이 한국의 입장에서 변화를 고민해야지 한국이 왜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의 입장에서 무언가 하려는 시도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 또한 한국사람들에게 있어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과정 속에서 미술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생긴다.




일본의 마루키 이리(丸木位里, 1901-1995)와 마루키 토시(丸木俊, 1912~2000) 부부는 히로시마의 참상을 그린 원폭도(原爆の図) 연작을 제작한 화가다. 원폭도는 1950년부터 32년간 총 15점의 시리즈로 제작되어 파노라마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 중 14부 ‘까마귀(からす)’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 ‘원폭이 끝난 뒤에 가장 끝까지 남아있던 시체는 조선인이었다.’고 서술하면서 까마귀가 다 갉아먹은 뒤 저고리와 치마만 남은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설명한다. 마루키 부부는 국제정치학적인 성찰을 작품에 담은 것은 아니다. 다만 희생이라는 의미를 작품 속에 각인하고자 한 것이다. 마루키 부부의 작품이 히로시마를 바라보는 우리의 불편함을 다 해소해준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직 일본 사회에서 이들처럼 히로시마의 조선인을 바라보는 이들은 소수이다. 그럼 왜 소수인가를 비판하기에 앞서 왜 소수가 되어야 했는가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또한 불편한 길이지만, 서로 단절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막고, 인류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서다.



- 김현재(1987- ) 케임브리지대학 문화유산학 석사(2020). 건국대학교 세계유산연구소 연구원(2021). Our World Heritage(2021) 조직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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