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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송수남, 정체된 정체에서 벗어나기

정다영

나답게, 나다움이라는 말은 어떤 삶의 지향을 말할 때 너무나 흔하게 쓰여서 새삼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미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된 지 오래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나다움을 찾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현저해지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이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색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더욱 강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기 탐색과 관련하여, 한국화의 현대화를 이룬 남천 송수남(南天 宋秀南, 1938-2013)의 작품과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송수남, <붓의 놀림>, 1998, 캔버스에 한지, 먹, 130×16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천은 198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수묵화 운동을 주도하여 한국화의 현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 작가이다. 그는 수묵을 통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한국화의 정립을 이루고자 했으며, “무분별하게 추진되었던 서구 지향적 근대화의 파행성에서 빚어진 자아 상실의 증후를 자기 힘으로 극복”(송수남, 「수묵의 정신성」)하고자 했다. 그는 작가들이 세계미술 조류의 첨단을 추종하는 데 급급했음을 한국 미술계의 문제점으로 지적하였고, 이를 극복할 방법으로 한국 전통과 정신의 뿌리인 수묵화를 현대의 양식으로 재창출하고자 했다. 이는 전통에 안주하며 “낙후된” 양식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화에 대한 개혁이기도 했다. 지난 1월 중순 종료된 《필묵변혁》(2023.11.28-1.14,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전에서 전시되었던 송수남의 <붓의 놀림> 시리즈는 먹물의 스며듦을 이용한 수묵 추상화로, 수묵의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고 담담한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한국미에 대한 관념에 접근하고 수묵의 정신성을 되살리면서도 현대성을 획득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송수남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한국화의 정신, 얼의 강조는 나다움을 추구하는 어떤 감상자들에게는 자칫 고루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방법의 하나는 자신을 속박하는 요소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동안 민족적인 것, 전통적인 것에 대한 환호의 압박은 오랫동안 개인을 속박하는 기제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속박이 다시는 일반적이지 않게 될 때 한국화의 정신과 얼은 보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우리가 송수남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감탄하게 되는 점은 작가의 부단한 자기 탐색 과정일 것이다. 송수남의 실험은 시대적, 사회적 바람에 부합하여 한국화 화단에서 이루어진 변혁이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작가 개인의 내면적인 성찰 과정이기도 했다. 류철하는 1980년대 이후에 송수남이 “수묵이 지닌 매제적 가능성과 내면에 깃든 고유한 정신세계를 추적하는데 노력을 경주했다”라고 평론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전통에서 찾고자 했으며, 사대부 정신을 잇는 이로서 현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했다. 빠르게 변모하는 세상 속에서 세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채 어떻게 자기를 지킬 것인가, 자신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고 탐색한 것이다. 자기의 근원을 찾고 개발하는 과정은 개혁인 동시에 유연한 유지였으며 변모하는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적응 과정이었다.

우리를 정체화하는 요소는 다양해졌으며 전통적인 것이 더 누군가에게는 내면화된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송수남의 작품에서 감동하게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작가의 끝없는 탐색, 그것을 조형화하고자 하는 부단한 시도와 그 결과물이 시대를 뛰어넘은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다움이 널리 탐색 되는 시대일수록 그러한 감동은 더욱 크게 와 닿아 가슴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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