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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코리안 디아스포라, 생존자이자 개척자인 조선족, 자이니치 그리고 탈북민의 이야기

김수정

이주 미술인의 작품과 삶을 통해 한국 미술사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아리랑 꽃씨’(2009, 국립현대미술관)전은 아카이브를 통해 이주민의 고된 삶과 개척자로서의 성과를 탐색하며 코리안 디아스포라 미술의 포문을 열었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지금 재외한인 사회에서 자발적인 민족문화 행사가 이어지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 시작은 지역사를 ‘직시’하는 것으로, 이주의 사회적 배경과 계기, 이주민 주체적 관점의 서술과 지워진 우리 반쪽의 역사를 언급해야 한다. 동아시아를 뒤흔든 일본 제국주의의 종식과 함께 미·소 혈맹이 무너지며 동아시아 국가의 진영 대립은 내전으로 이어졌고 한반도를 관통한 냉전의 칼은 조국 밖으로 이동한 한반도인*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일한인 혹은 조선인인 자이니치는 광복 당시 기준 2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나, 패전한 일본과 내전에 빠진 남북한 모두 이들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거주국과 모국의 외면 아래 일본에 남은 이들 대다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 국적마저 상실했다. 이후 남한 보다 경제 수준이 높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북한과 이들 문제를 처리하려는 일본의 이익이 만나 북송 절차가 진행되자 1962년까지 8만여 명이 북송되어 또 다른 이산을 낳았다. 북측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남측 ‘민단’으로 나뉘어 민족학교 설립 등 민족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 갔으나, 일본 내 차별로 인한 조직력 약화와 젊은 세대의 무관심으로 점차 일본사회로 동화되었다.



신광, 이사와 이주,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2012-현재


중국 조선족은 사회주의 건립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연변 조선족 자치구를 설립했다. 1860년대 간도에 초기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고,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독립운동가들이 합류했다. 만주국 건설을 위한 강제징용되었다 해방 후 중국에 잔류한 한반도인 인구는 130만 명에 달한다. 중국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이들은 소수민족을 지지하는 공산당 편에 서서, 귀국을 종용한 국민당에 맞서 신중국 건설에 공헌했다. 하지만 승리한 공산당 또한 과도한 이념운동으로 조선족을 분열주의자로 핍박하자, 다수가 시민권을 얻을 수 있고 당시 경제 상황이 좋았던 북한으로 귀국했다. 1980년대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로 연변 조선족이 중국 대도시와 한국으로 대거 이동하며 조선족 자치구 인구는 점차 감소했다. 하지만 이 현상은 조선족이 한국과 경제적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구축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미국 등지에서 동포타운을 형성하며 초국가주의로 전환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북한에서 보인 디아스포라는 국경을 넘어 탈주한 난민, 탈북민이다. 경제가 좋았던 70년대는 정치적 망명이 주를 이루었지만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식량을 구하러 온 생존형 탈북이 대부분이다. 2000년대 이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이민형 탈북이 나타났고 계층도 다양해졌다. 연간 3,000여 명이 국경을 넘어 중국과 제3국을 거쳐 난민의 지휘를 획득해 남한으로 왔으며 현재 국내 거주 탈북민은 33,000여 명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비인도적 탈북과정과 북한의 탈북자 처형 등 인권 문제가 불거졌고, 정착 과정에서 겪는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도 조명되며 탈북민의 권익에 대한 고민을 안겼다. 탈북의 끝에 기다린 것이 사회적 포용이 아닌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등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돼 이념의 쟁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반성도 요구된다.

조선말 하와이와 멕시코에서 노동자로, 일제강점기 징용군 혹은 독립투사로, 근대 이후 미주·유럽·호주 등지로 유학, 이민으로 퍼져나간 한반도인은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며 현지 사회에 뿌리 내리고 모국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탈지역 초국가적 민족으로 자리 잡았다. 소수이자 경계인으로 규정하는 편협한 시선으로 그들을 표현한 기존 한국사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한 이 글을 통해,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간, 생존자이자 개척자인 이주민의 역사에 박수를 보낸다.



- 김수정(1982- ) 2016 제3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큐레이터, 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객원연구원 역임. 2014 아마도 전시기획상 수상.

*통합적 지역사 기술을 위한 중립적 입장에서 ‘한인’ 혹은 ‘조선인’으로 구분되는 정체성을 통합, ‘한반도인’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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