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9)대중을 설득할 전시의 묘(妙)

강혜승

미술만큼 극단을 오가는 영역이 또 있을까 싶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지만, 소수만 소유할 수 있다. 감각되지만 누구나 인식하지는 못한다. 보이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크니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문화인 동시에 학문이고, 학문일 때 미술의 문턱은 더없이 높다. 이름있는 진보 매체 기자가 언젠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냥 느끼면 된다”며 미술 애호 취미를 소개했을 때 솔직히 조소했다. 현대미술 앞에서 “제목이 없다. 뭐 이리 성의가 없냐”며 툴툴거리던 관객을 마주쳤을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느끼면 된다”는 말이 맞지만, 전제가 필요하다. 이름부터 알아가며 상대를 겪어야 친구가 되듯, 작품에 녹아 있는 역사와 철학을 이해해야 미술도 느낄 수 있다. 마음대로 보는 일방의 시선은 사람을 향할 때처럼 작품 앞에서도 불편하다. 그런데 즐기고자 하는 관객에게 공부부터 요구하기는 어렵다.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전시 기획자 입장이 되면 고민은 더욱 깊어질 터다. 예컨대 기증자나 작가 이름에 기대지 않고, 물량 공세도 퍼부을 수 없는 지역 미술관의 물리적 한계 안에서 어떻게 기획의 묘를 발휘할 수 있을까.



대전시립미술관의 소장품전 ‘개척자들’ 전시 전경


최근 대전시립미술관에서 ‘개척자들’(5.2-10.9)을 보며 대중친화적 요소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수장고를 열며 기획된 전시는 대중적 장르도 아닌 데다 소장품 수도 적은 미디어아트를 다루고 있었다. 최종병기가 없진 않았다. 백남준(1932-2006)의 <프랙탈 거북선>이 먼저 관객을 맞았다.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 한다. 1993년이라… 교복 입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전교생이 관람해야 했고, 대전엑스포에 동원돼 땡볕 야외 전시장에서 과학도시 대전의 위상을 주입식으로 현장 체험해야 했던 해였다. 바로 그해 비디오아트로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높였던 백남준도 민족 영웅 이순신과 첨단무기 거북선을 모티프로 당시로는 첨단매체인 모니터 309대를 쌓아 올린 거대한 하이테크 작품을 제작했다니 흥미로웠다. 이제 전시는 백남준의 아우라를 빌려 연결고리가 있는 비디오아트 작가들을 소환한다.

백남준을 잇는 개척자로 호명된 작가는 박현기, 육태진, 김해민이다. 먼저 박현기(1942-2000)는 1974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1973)를 보고 영상 매체에 눈떴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1970년대 말부터 우리 토양에서 비디오아트를 탐색했던 1세대 비디오 작가로 통한다. 소장품 <무제>(1993)는 자연 사물인 돌과 모니터에 담긴 돌을 차례로 쌓아 물(物) 자체와 미디어 이미지의 차이에 대해 질문한다.

2세대 육태진(1961-2008)은 목원대 출신으로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했다. 비디오 영상을 신체로 확장한 특징이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고가구 두 점에 기술의 산물인 모니터 두 대를 각각 결합한 작품 <배회>(1996)는 마치 두 다리로 움직이는 오브제로 기능한다. 모터를 설치한 모니터는 고가구 위를 반복 왕복하는데, 영상 속 배회하는 남성의 걸음을 닮았다.

연결고리는 대전 출생 김해민(1957- )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백남준의 작업을 오마주하듯 영상 매체의 정체성을 파고든다. 백남준은 이미 1960년대에 TV를 새로운 오브제만이 아닌 기술로서 접근했고, 그저 바라보는 바보상자가 아닌 보는 사람이 조작할 수 있는 TV를 만들고자 했다. 김해민은 <접촉불량>(2006)에서 내부 조작되거나 다이얼을 돌려야 변형되는 화면을 보여주며 TV 화면 안팎을 넘나드는 동시에 공간을 관객 차원까지 확장한다.

전시작품은 단 8점. 육태진의 <숨>(1999) 앞에서 작가의 들숨 날숨에 집중하려다가도 김해민의 <TV해머>(1992) 소리에 산만해질 만큼 전시공간은 협소하다. 미술관 소장품 중 그 비중이 4%에 불과한 미디어아트 영역을 전시공간을 통해 현상 자체로 지각하게 한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작품들은 모니터가 새로운 캔버스가 될 거라는 백남준의 1960년대 예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전시 의도는 선명하다. 관건은 역시 관객이다. 전시를 보며 백남준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 강혜승(1978- )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 서울신문, 동아일보 취재기자. 홍익대, 연세대 출강. 「197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결정적 장면, 《서울비엔날레》(1974)와 ‘새로운 평면’」(2022), 「1960년대 세대 전환과 반모더니즘 미술 현상」(2023) 등 학술논문 발표.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