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46)작품의 DNA와 아카이브의 컨텍스트화

황인

지자체의 미술관이 늘어나면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술관이 생기면 작품수집도 수반된다. 미술관의 작품수집에는 작품에 대한 진위감정과 시가감정이 필수적이다. 진위 감정은 진품으로 인정된 기존의 기준작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는 감정이고 시가감정은 시장에서의 기존 유통가격을 근거로 삼아 감정이 성립한다. 
시가감정이 좋다(Good) 나쁘다(Bad)라는 시장에서의 가치(Value)라는 축에서 형성된다면, 진위는 진(Right)과 위(Wrong), 즉 옳다와 그르다 라는 규범(Norm)의 축에서 성립한다. 좋다와 나쁘다의 구간에는 연속적으로 수많은 가치의 값과 선택이 존재하지만, 옳다와 그르다의 사이는 불연속적으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라는 양자택일 밖에는 없다. 그만큼 규범의 축 위에서 벌어지는 진위감정은 엄정하다. 

진위감정에 동원되는 방법론은 매우 다양하다. 작벽, 패턴, 레이어의 구조, 구도, 색감, 사인 등의 조형성과 물감, 캔버스, 나무틀의 재질, 못 혹은 스테이플러의 종류 등의 재료학과 시간성,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 작가와 작품과의 관계, 전시경력과 소장경력의 프라버넌스 등 여러 영역에서 검토를 거친 후 진위를 결정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진위는 제시된 작품과 진품의 DNA의 근접성에서 결정된다. 
작품의 진위감정 혹은 평론을 위한 글의 기초자료 수집 등 이런저런 이유로 작가와 작품의 아카이브를 찾으려 하면 몇몇 주요 작가를 빼놓고는 많은 작가가 자료의 빈약함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지역작가의 경우 작품 아카이브는커녕 기초적인 연보조차 정리되어 있지가 않은 경우를 가끔 본다. 지역미술관은 증가추세이고 거기에 따라 해당 지역작가의 작품수집도 늘어날 터인데 아카이브의 부재는 적극적인 수집 의지에 걸림돌이 된다.

아카이브에는 정형정보와 비정형정보가 있다. 이 둘 다 넓은 의미에서의 텍스트다. 그런데 텍스트는 단독으로 생명력을 갖지 않는다. 텍스트가 컨텍스트로 활용될 때 유기적인 생명력을 가진다. 컨텍스트에 왕성한 생명력이 더해지기 위해선 텍스트에 가능한 한 노드(Node, 접속점)가 많이 걸리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텍스트를 데이터를 순차적으로 나열시키는 선형구조뿐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에 여러 개의 데이터가 이어지는 비선형구조의 자료구조(Data structure) 배열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정형정보든, 비정형정보든, 선형구조든, 비선형구조든 자료를 몇 개의 단순한 키워드로 환원시키는 작업이 전제된다. 환원 작업을 통해서 모든 정보를 수학적 공간상에 재배치할 수가 있다. 이는 유기물을 단순한 몇 개의 분자구조로 환원한 다음 재배치하는 작업과 마찬가지다. 유기화학에서 보듯이, 일단 물질이 분자로 환원 과정을 거친 다음 다른 분자와 만나 새로운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는 환원 과정을 거친 다음 새로운 정보의 통로가 되거나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정보의 유기체, 필경에는 풍요로운 정보의 숲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기본적인 아카이브의 수집도 중요하지만 이를 유기체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못지않게 중요하다. 다행히 모든 자료를 디지털 기반의 환원 상태로 처리하는 컴퓨터의 발달로 정보의 유기체화 과정은 과거에 비해서 매우 수월해졌다. 다만 모든 정보처리에는 중요도, 밀도라는 개념이 적용되므로 한국미술에서 요구되는 우리만의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하는 일은 순전히 우리 미술인들의 몫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환원 상태의 혹은 분자상태의 차원에서 정형정보, 비정형정보의 처리작업이 가능해졌다면 이미 분자배열 상태의 DNA는 확보된 셈이다. 이 DNA가 발산을 할 때는 컨텍스트로 변형되어 정보의 확산을 초래한다. 반대로 이 DNA가 수렴할 때는 작품의 진위여부의 기준이 되는 구조성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 아카이브의 컨텍스트화와 진위감정에 있어 작품의 DNA 분석작업은 동일한 환원 작업임을 알 수가 있다. 작품에 있어, 정보의 환원 작업이 곧 정보의 확산작업이자 진위의 규범(Norm)을 규정하는 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황인(1958- ) 한양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학사,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계간 『현대미술』 편집장(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 큐레이터 역임(1987-91), 홍익대 대학원 출강(2012-1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