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27)콜렉티브와 콜라보, 현대 예술에서의 콜라보레이션 전성시대 : 집단창작 및 협력 기획의 명암 사이에서

유원준

1949년, 당시 68세의 피카소(Pablo PICASSO)는 자신의 집에 방문했던『 라이프(Life)』 매거진의 사진가였던 욘 밀리(Gjon MILL)와 협업하여 멋진 ‘빛 그림(Light Painting)’을 만들어냈다. 피카소의 작업 과정을 담으려던 욘 밀리에게 자신이 플래시 불빛을 이용하여 공중에 그림을 그리면 그 궤적을 담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결과물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위대한 협업의 작품으로 기억된다. 물론 모든 협업을 통한 작품이 이렇듯 위대한 결과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술 분야에서의 협업은 서로 다른 창의성을 교차시키고 인문학과 기술, 문화와 사회의 다양한 특성들이 조우할 수 있는 융합의 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협업, 콜라보레이션은 예술 분야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 이른바 집단지성(集團知性)의 시대, 세계는 연결되어있고 각자의 사유는 활발히 교류한다. 아이디어는 고정되지 않으며 한 개체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이의 것들과 마주하여 새로운 지평으로 확대된다. 또한 과거로부터 역사의 흐름에서 이러한 집단적이며 상호 협력적인 지식 축적의 장은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그것이 사회의 기본적 시스템으로 때로는 정치적 의사 결정의 단계로서 인식된 것은 비교적 근대의 것일지 몰라도 어쩌면 이러한 협력과 집단적 움직임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다만, 집단 지성과 협력 시스템은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답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다수의 방향성이 도출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것이기에 현대 사회의 다각적인 특성과 잘 연동되고 있을 뿐이다.

2018년, 한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콜렉티브-콜라보’ 전시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미시적으로는 작가들 사이에서 ‘아티스트 콜라보’의 형태를 지닌 시도들이 대폭 증가하였으며 좀 더 크게 보자면 전시의 기획에서부터 집단 큐레이팅 시스템을 통하여 전시가 기획되는 경우 또한 빈번하게 눈에 띄었다. 대표적으로 11명의 국내외 기획자, 43개 국가의 165명의 작가로 구성된 광주비엔날레 및 기획자 4명의 집단 콜렉티브를 표방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광주비엔날레를 살펴보자. ‘상상된 경계들’이란 주제를 제시한 이번 비엔날레는 현대사회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경계들 내지는 경계를 만들어내는 차이들에 주목하였다. 다국적 큐레이터들은 서로 저마다의 시선을 통해 난민, 냉전, 정보격차, 성차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는데, 어쩌면 경계 및 차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타자의 시선이 더욱더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는 주제를 진지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한 듯 보인다. 너무 많은 요소(전시장의 분리 및 파빌리온 전시 등)로부터 각자의 시선이 서로의 연결성을 상실한 듯 느껴졌으며 서로의 다름에 의한 경계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속내까지 접근하기에는 전시가 너무 파편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이러한 파편적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 전시였다. 4명의 기획자는 서로 저마다의 ‘좋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나 전시 주체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여 전시 서문을 몇 번을 읽어 내려가도 결국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포착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이는 집단 큐레이팅이 가지고 있는 맹점일 수도 있다. 시선의 교차를 시도하기에는 이상적 형태일지 모르나 그 시선의 방향이 한데 모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그러한 의미의 종합을 오히려 현대 미술은 터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적 비엔날레’라는 형식과 제도는 그러한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스타일로 귀결되는 콜렉티브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국제적 범주에서 현대 미술의 다층적 해석을 시도해야 한다는 당위가 예술제의 주최 측을 짓누르는 까닭이다. 작가들의 콜렉티브 작품들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경우가 다수 발견된다. 몇 해전부터 이러한 경향은 마치 유행처럼 나타나고 있는데, 서로의 정체성으로부터 일종의 공명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협업의 시도가 있는 반면, 작품을 아무리 면밀히 분석해보아도 그들이 콜라보를 결성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힘든 경우 또한 종종 마주하게 된다. 이는 서로의 특성이 완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수렴되거나 각자의 목소리가 서로의 연결점으로 제시되지 못한 채 공허한 스타일로 귀결되는 데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아티스트 혹은 기획자들의 콜렉티브는 여전히 크게 호응받는 동시대 예술의 한 형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그러한 형태가 보다 진지하게 예술을 향한 올바른 조합이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유원준(1976- )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학예술융복합 프로젝트 GAS 2016-2017 총괄디렉터, 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2018 총감독 역임.『 뉴미디어 아트와 게임예술』(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지음. 현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편집장, 복합문화공간 더미디엄 대표.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