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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예술의 녹색 패러다임

유근오

최근 모 회사의 보일러 광고는 위험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데 할리우드 영화 속의 히어로들처럼 막강한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해준다. 그 시놉시스(Synopsis)는 이렇다. 보일러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아빠를 둔 한 아이가 슈퍼맨을 흉내 낸 듯 망토를 어깨에 두르고 자랑스럽게 ‘우리 아빠는 지구를 살려요. 공기를 맑게 하고요, 빙하를 녹지 않게 하고요, 북극곰을 살린대요’라고 말한다. 효율이 좋은 보일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으니 공기를 맑게 하지는 않더라도 지구 환경에 도움은 되겠다 싶다. 그렇다. 굳이 어벤져스가 아니더라도 지구를 위한 환경 개선에 작은 실천만 있어도 멀리 보면 지구를 구하는 게 된다.

21세기 들어서 환경 문제는 뜨거운 이슈를 넘어 코앞에 닥친 재앙 수준이다. 이 재앙은 지구 곳곳에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이를테면 20세기 중반 이후 바닷물 수온이 2도나 올라가고 열대 지방에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곡창지대가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몇몇 작가들은 지구를 구하는데 슈퍼 히어로에게만 의지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슈퍼 히어로마냥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지구환경을 살리는 데 일조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지구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그만큼 소모되고 버려지는 쓰레기도 점점 증가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지구는 어디까지나 한정된 장소이고, 버려지는 수많은 쓰레기를 그저 쓰레기로 방치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쓰레기의 재활용은 지구를 살리는 환경의 희망이자 예술의 가능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그런 환경 쓰레기에 주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삶을, 그것도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만든다. 일컬어 폐품에 새 생명과 새 의미를 부여하는 ‘업사이클 아트’가 그것이다. 업사이클은 버려지는 쓰레기를 단순히 리사이클하는 차원을 넘어 조형성을 구사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종의 환골탈태를 의미한다.



Tim NOBLE and Sue WEBSTER, WILD MOOD SWINGS, 2009-10,
2 Wooden stepladders, Discarded wood, Light projector,


폐 오브제의 사용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그 양태는 많은 변모가 있어 왔다. 시기와 유형별로 보자면 입체파,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콜라주 이후, 본격적인 정크 아트의 출발점이 된 것은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 그리고 6-70년대 공업제품의 단편이나 일상적인 오브제를 거의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현실의 직접적인 제시’라는 기치를 든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 모래, 시멘트, 나뭇가지 등 빈곤한 재료를 가능하면 손질을 최소화하여 배치하면서 자연, 초자연, 언어 등에 대한 작가의 사색과 성찰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 등이 적극적으로 오브제를 활용하였다. 이들은 현대 문명에 의해 소비되고 버려진 쓰레기들을 아상블라주 형태로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근자 그 방법론은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우선 다이어트 위그만(Diet WIEGMAN), 팀 노블과 수 웹스터(Tim NOBLE and Sue WEBSTER) 등은 폐기 수준의 쓰레기를 넘어 죽은 동물 사체를 이용하여 고전적 명작과 현대의 불확실한 정체성의 젊은 초상 등을 사실적 실루엣으로 재현함으로써 플라톤의 동굴 그림자의 철학적 요소를 빗댄 미학에서의 환영의 의미를 곱씹게 하고있을 뿐 아니라 지구 환경의 심각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유형으로 제인 퍼킨스(Jane PERKINS), 톰 데이닝어(Tom DEININGER), 제크 프리맨(Zac FREEMAN) 등이 보이고 있는 극사실에 가까운 인물 초상은 쓰레기가 가진 우리 시대의 질료로서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재료는 필요성은 인정되나 환경에 있어 골칫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나아가 담배꽁초 등이다. 사실 그들의 쓰레기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시대까지도 반영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풍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작품에 즉물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쓰레기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 쓰레기의 업사이클은 변화하는 시대를 직접적으로 반영했다는 점과 조형적인 가치를 동시에 지닌 새로운 영역의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단순한 쓰레기의 조합이 아닌,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거듭나는 게 된다. 이제 쓰레기는 하나의 작품이 되고 하나의 형식적 구문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녹색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다.


- 유근오(1958- ) 홍익대 동 대학원 회화과, 프랑스 파리 1대학(판테온-소르본)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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