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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예술은 자료, 자료는 예술

이선영

지난 10월 ‘경기천년 대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경기 아카이브_지금,’전(9.10-10.31, 경기상상캠퍼스)은 주변의 뛰어난 풍광에 둘러싸인 채 15년 이상 방치되었던 폐교 건물에서 열린 대규모 아카이브 전시이다. 전시를 위해서 옥상 방수부터 철공, 목공, 전기 작업이 다시 이루어졌다. 층별로 300평 남짓한 공간의 복도와 방 안팎이 모두 활용되었다. 아카이브 전시라서 엄청나게 빽빽한 배열도 밀도로 다가왔다. 경기 대안공간네트워크 15년 기록들이나 경기도에 기반한 소집단들의 활동자료는 미술사적으로도 유용한 1차 자료이다. ‘기억의 도서관’이 있는 2층을 지나 3층에 올라가면 경기 천년을 상징하는 작품들로 구성된 ‘시간의 사원’이 펼쳐진다.


김현자, 동화사 약수암 감로도, 현대 불화


2년 전부터 시작된 수집 및 대여 자료/작품들이 채 한 달도 안돼 다시 흩어지는 것이 너무 아깝다. 물론 이 자료들은 백서를 비롯한 또 다른 자료로 재생산되겠지만, 정보란 직접 보고 느끼는 형태의 제시방식에 비한다면 빈약한 것이다. 죽었던 건물이 살아나는 것은 작품과 자료들이 살아나는 과정과 유사하다. 또한 그것은 밋밋한 일상이나 자연, 역사 등이 예술작품에 의해 활성화되고 재발견되는 것과도 유사하다. 세계는 이렇게 거듭된 해석을 통해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시킨다. 이렇게 현실화된 것은 다시 시간의 시험을 거치며 현실화될 때를 기다릴 것이다. 자연의 엔트로피 법칙과도 유사한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이다. 자연은 역사가 되고 다시 예술이 되며,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자연이 된다. 이 거대한 순환 주기 속에서 의지는 촉매작용을 한다. 그 많은 작품과 자료들을 모은 의지, 또 그러한 작품들이나 자료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그 의지들을 느낄 수 있는 이 전시는‘천년’까지 소급된 역사를 무색하게 하지 않는다. ‘천년’은 고려시대인 1018년 이 지역이 경기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시점과 연관된다. 명명과 분류는 불확실한 것들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것은 의미를 낳는다. 이 전시는 1000년 전에 일어났던 체계화를 다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옥상을 포함하여 3개 층의 복도와 방 구석구석 가득 들어찬 자료들의 면면을 보니 지나간 사료뿐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작품들 또한 적지 않다. 참여 작가 수만 해도 256명/팀으로, 총 616점의 전시물 중에서 작품만 400여 점이 된다. 작가들은 20대에서 80대까지 두루 걸쳐있으며, 경기지역에서 많이 본 작가들과 문화일꾼들이 포진해 있다. 비엔날레급으로 설치된 작품들의 면면은 이 매력적인 장소에서의 기획에 많은 작가가 기꺼이 동참했음을 알려준다. 심지어는 아카이브 전이라는 맥락이 무색하게 새롭게 제작된 작품들도 있었다. 현재와 과거는 그렇게 제작된 새로운 작품 속에서 만나곤 한다. 가령 3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린 걸개그림은 무형문화재 김현자의 작품이기도 한데, 감로도 하단에서 평택 미군기지, 판문점, 안성천주교 성지, 세월호 등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다. 과거의 형식은 현재화된다. 작품과 자료의 섞어 짜기가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이때 작품은 자료가 되고 자료는 작품이 된다. 이 무한한 서로의 반사 관계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주최 측은 ‘그물이 천 코면 걸릴 날이 있다’는 신념 아래, 그물코같은 전시 길잡이를 비치해 놓았다. 그 분류 방식-천년/역사+시간, 근대/근대성, 기억/상처+흔적, 분단/풍경, 신화/샤먼+전통, 도시/ 지역+공동체, 공공/학교+대안, 미술운동/시대+저항, 자연/생명+풍경, 초상/나들(개인)+너들(타자)-은 이 대규모 전시의 대략적 내용을 가늠케 한다. 10개의 키워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보는 순서에 따라 다른 서사가 생성될 수 있는데 관객은 각자의 선택을 통해서 다르게 방점이 찍혀진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듯이, 애써 수집된 자료/작품들이 흩어진 구슬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쇄도하는 자료/작품들 속에서 길을 잃는 관객 또한 예기치 못했던 것들을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즐거운 방황을 체험한다.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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