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18 ② 글로벌 프랜차이즈 미술관, 아트페어, 갤러리

이나연



② 글로벌 프랜차이즈 미술관, 아트페어, 갤러리 



1. 글로벌 프랜차이즈 대형행사의 미래 

“나는 예술에서 이른바 개혁자로 불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르겠다. 작품이란 미래의 세대들에 의해 이해될 것이라는 소리인가. 왜 그런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 세대가 작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하면 무엇에?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러나-아직도 모호하긴 하지만-모든 예술작품이 가장 웅장한 범위에 이르려면, 무한한 인내와 노력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태고의 밤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작품 안에서 죽은 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 1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할 거라 말한다. 새로운 산업혁명은 문화예술계에 어느 정도의 파급을 미칠까? 모든 것이 새롭게 재편될 혁명의 시대에 문화예술계에선, 좁게는 미술계에선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 걸까?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마트 시티, 가상현실,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전 등이 미술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들은 전세계 미술계의 움직임을 어떤 방향으로 바꾸게 될까? 미술계 만국박람회(국제 대형행사)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지켜보고, 미래의 대안적 활동은 무엇이 될지 상상해보고자 시작한 이 연재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대형행사들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살펴보기로 했다. 중간 신뢰기관없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의 가능성을 논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이 4차산업혁명을 일으킬 중요한 기술이라면, 사실 대형자본이나 기관의 브랜드와 신뢰성에 의존하는 프랜차이즈 형식의 산업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나가려는 산업조차 아직 미술계에서 본격적이고 제대로 발현해 낸 적이 없다시피 하므로, 지난 사례들이나마 추리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려는 참이다. 

미술작품들의 고유성이 미술이 가치를 보전할 거의 유일한 보루라면, 미술관이나 지역기반의 미술 행사가 다른 산업처럼 프랜차이즈화가 될 수 있을까? 프랜차이즈화를 한다는 것은 경제적 효과가 입증됐다는, 즉 하나의 산업으로서 인정받았다는 뜻인데, 미술계에서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둬 무려 글로벌 분점을 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쩌면 기적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랜차이즈화를 분석해보자면 미술관은 문화관광의 수단 혹은 지역의 브랜딩을 위한 방편, 아트페어와 상업갤러리는 돈이 모이는 지역을 좇는 양상을 보인다. 찬찬히 살펴보자. 

일단 미술관 프랜차이즈의 경우. 문화관광을 위한 전략은 다양하겠다. 도시마다 별다른 고민없이 성공한 사례를 모방하는 게 가장 흔하다. 성공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방식이라 대부분이 도시 혹은 지역에서 그런 사례를 찾아 고스란히 적용한다. 전세계의 모든 도시에서 왁스뮤지엄(마담투소 박물관)을 짓는 이유다 .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유명인의 실물같은 조각이 모여있는 박물관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게 수치로서 입증됐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구겐하임 미술관의 프랜차이즈 사례는 꽤 창의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그 뒤엔 역시 상업적인 목적이 다분하긴 했다. 



2. 미술관의 경우 

“아니다, 아니다, 예술작품은 미래의 세대를 겨냥하지 않는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은 자들에게 바쳐지며, 작품을 인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다. 그거나 이 죽은 자들은 한번도 살아 있었던 적이 없다. 혹은 그들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루하긴 해도 구겐하임 가문과 미술관 설립 계기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이 미술관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철강으로 큰 돈을 번 벤저민 구겐하임은 1912년 타이타닉이 침몰하면서 사망했다. 그의 상속녀였던 페기 구겐하임은 당시 13살에 불과했다. 이 부자고아는 이른 나이부터 막대한 유산의 일부를 미술품을 컬렉팅하는데 할애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재산인데다가, 직접 번 돈도 아니라 물려받은 재산인지라 통 크게 현대미술 작가들과 지망생들을 후원하다보니 모인 작품의 수가 상당했다. 300여점이 넘는 유명작가의 작품들이 모였다. 벤저민 구겐하임의 형이었던 솔로몬 구겐하임은 본인의 재단을 설립해 뉴욕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한다. 페기 구겐하임은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과 협력하며 베니스에서 본인이 살았던 집과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세웠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점개념의 베니스 공간이 탄생하게 된 정황이다. 솔로몬과 페기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두 곳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1970~1980년대에 들어와 재정난을 겪게 된다. 텔레비젼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순수미술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컨설턴트로 영입한다. 토마스 메서(Thomas Messer)가 관장이던 시기에 고용된 전문 경영인은 바로 예일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토마스 크렌스(Thomas Krens)였다. 크렌스는 미술관의 수익모델을 찾기위해 미술계를 공부하거나 미술관 자체를 살피기 보다는 세계 정세를 살폈다. 미술계 밖 외부인의 시선으로 분석해 미술관을 혁신하기 위한 제안들이 대부분 수용되었고, 1988년에는 처음으로 미술계와 상관이 없는 경영전문가로서 관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전세계에 구겐하임미술관의 지점을 개설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전략은 바로 이 전문경영인, 크렌스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 결과로 현재 베를린, 스페인 빌바오, 라스베이거스에 구겐하임이 지점을 두는 플랜이 세워지게 됐다. 구겐하임 재단에서 보유한 작품이나 기획들을 전세계를 돌며 전시하는 방식으로 이 프랜차이즈는 운영됐다. 이 전략으로 구겐하임이 확장됐음을 증명하는 수치들은 몇몇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95개 전시를 자체 기획해 전세계 분점 미술관을 순회 전시한다는 계획에 따른 ‘기획 대량생산 유통체제’는 사업성과에 따라 매장을 개설하고 패쇄하는 방식도 취했다. 뉴욕 소호점이 문을 닫은 이유다. 2001년 문은 연 라스베가스 점은 2003년 폐쇄됐다. 같이 라스베가스에 있던 구겐하임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2001년 설립돼 2008년 폐쇄됐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점은 2011년 오픈 예전으로 진행중에 2009년 프로젝트를 취소한다. 대만의 타이쭝,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 홍콩 등에 연이은 분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같은 흐름에서 도이치 뱅크의 후원으로 1997년 설립해 2012년 문을 닫은 베를린 구겐하임 미술관의 역사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크렌스의 20여년에 가까운 관장 임기 기간 구겐하임은 기업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그리고 구겐하임재단에서 퇴임후에는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아부다비 구겐하임의 완성을 관리감독하는 국제 분과 선임고문의 직책을 맡고 있다. (2006년 시작, 2012년 완공예정이던 아부다비 구겐하임은 2017년에 건축을 완공하고 곧 오픈을 앞두고 있다.) 크렌스와 함께 하는 기간, 구겐하임은 돈줄이 되는 기업과 협력하는 전시를 열어 미술관의 존재가치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작점은 1988년 BMW의 후원을 받아 모터싸이클전을 연 일이다. 조르지오 알마니의 패션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기업의 행사에 필요하다면 강연장이나 전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의 혁신을 시작으로 기업과 협력하는 미술관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이 프랜차이즈 전략은 사실 기업과의 협력들보다는 도시 하나를 완전히 재생하는 결과를 가져온 성과를 남겼다.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던 조선소와 공장만 남은 빌바오 지역의 관광객 수를 10배 이상 끌어올린 것이다. 빌바오하면 구겐하임이라는 공식이 통하게 만들면서, 스페인의 한 무명의 지역을 문화도시로 브랜딩했다. 사실 빌바오의 구겐하임은 뉴욕 구겐하임의 분관이 아닌 협력 방식이다. 바스크 지방정부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구겐하임은 운영에 관여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협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빌바오의 표피적인 성공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한국의 지역들에서도 한 때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치에 최선을 다한 시기가 있었다. 부산과 광주는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유치단을 구성했고, 경기도, 대구, 인천을 도시도 관심을 내비치곤 했다. 구겐하임측은 도쿄 등의 대도시에서 유치를 권했지만 거절했다는 등의 기사를 내보내며 본인들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에 열심이었고, 전세계에서 쉽게 문화도시로 성장해보려는 지역들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았다. 빌바오의 성공이 확률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에도, 많은 지역에서 구겐하임의 거품에 대한 환상을 거두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도시 내부의 컨텐츠보다 구겐하임의 브랜드에 기대어 단기간의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건 성과위주의 얄팍하고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도시 자체의 차별화된 컨텐츠를 개발하고 키워나가는 오랜 시간과 공이 필요한 일보다는 쉽게 큰 효과를 얻으려는 욕심의 부작용은 라스베가스, 베를린, 과달라하라의 폐점과 계획무산이 보여준다. 이같은 실패와 성공은 결국 프랜차이즈 미술관이 미술을 매개로 삼는 미래 세대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획과 작품의 세계순회전-즉 프랜차이즈화는 실패했고, 오직 부대효과로 도시가 재생하게 된 한 지역만이 성공을 거뒀는데, 그 역시 미술관의 기획과 작품에 대한 논의는 없이, 프랭크 게리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독특한 건축물 덕을 봤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렇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삶의 담면을 읽지도 않고, 세상은 실패에서 배우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도박에 인생을 거는 한탕주의자들처럼, 더 많은 도시가 단순히 브랜드 미술관을 유치해서 도시를 문화로 활성화시키려 한다. 구겐하임의 엄청난 확장과 실패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프랑스의 루브르는 아부다비에 지난 2017년 11월 8일 루브르 아부다비를 개관하였다. 유서깊은 루브르 박물관의 최초의 분점이었다. 과연 기대한대로 세계적인 화제를 끌어모았고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황량한 사막의 나라에서 컨텐츠와 브랜드가 이미 탄탄한 루브르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석유산지의 아랍국의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작 ‘살바토르 문디’가 역대 경매 최고가인 4억 5030만 달러에 낙찰받아 전시를 한다는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30년간 프랑스 루브르 본관에 소장품 대여료와 브랜드 사용료 명목으로 1조 원의 비용을 지불한다는 뉴스도 놀랍기만 하다. 곧 뉴욕 구겐하임의 7배 규모인 구겐하임 아부다비가 오픈한다면, 과연 엄청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미술관 프랜차이즈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공식이 생길지도 모른다.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과 유명건축가의 힘을 빌어 문화도시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한 이래, 구겐하임이 한 때 가열차게 아부다비와 아시아 등으로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내보려던 시기를 설명했다. 맥도날도나 스타벅스의 기세처럼 세계로 뻗어나갔는데, 이 계획은 차츰 수그러들고, 취소되고, 폐점하게 된 사례를 말했다. 이 미술관의 프랜차이즈는 거대한 포부에는 못 미치고 말았지만, 한 아트페어는 아시아 지역에 그 분점을 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도 대성공이다. 바로 아트바젤이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 guggenheim.org


3. 아트페어의 경우 

1970년 시작된 아트바젤은 이제 역사가 47년에 달한다. 매해 6월마다 유럽의 미술을 모아 전세계의 컬렉터와 갤러리들을 바젤이라는 스위스의 한 도시로 몰려들게 한 이 행사는 실로 명불허전이다. 아트바젤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그를 찾아온 전세계 갤러리스크와 컬렉터들 사이엔 새 작가를 발굴하리란 희망, 스타작가의 작품을 손에 넣으리란 갈망, 가져온 작품을 솔드아웃 시키리란 열망까지, 여러 가지 모양의 욕망이 뒤섞여 상업적이고 전투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2017년 기준으로 아트바젤에서만 출품되는 작품 총액만 3조 4천억원에 이른다. 엄청난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는 판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 품격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되려 그 곳엔 확실한 품격과 그 품격에서 비롯된 우아한 활기가 있다. 브래드 피트가 작품을 사면서 자리를 빛내준다거나, 비욘세가 등장하면서 특유의 생명력은 더욱 가시화된다. 이 장터는 유럽을 넘어 2002년부터 북미의 마이애미비치에서, 2013년부턴 아시아의 홍콩 아트 페어를 인수해 거점을 확장하고 몸피를 불려가고 있다. 간단한 수치로 그 명성을 확인하자면, 지난 2013년 아트 바젤의 열린 6일의 행사기간 동안 오간 방문자와 참가자를 합한 숫자는 8만 6천명. 전 세계 70여 곳의 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동향을 살피고 미술품 소장품을 늘리고자 방문했고, 개인 컬렉터와 갤러리들은 헤아리기도 힘들다. 런던 하우저앤워스갤러리의 마크 페이엇(Marc Payot)은 '바젤에 오는 컬렉터들은 확실한 구입의사를 가지고 온다. 그래서 정말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60여점의 작품을 중요한 개인 컬렉터와 미술관 컬렉션에 포함시켰다'고 말한다. 

아트 바젤은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와 트루디 브루크너(Trudi Bruckner), 발츠 힐트(Balz Hilt)가 1970년에 처음 개최했다. 당시 10개국의 화랑 90개가 참여했던 행사는 이제 300여 곳이 갤러리와 4,000여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 됐다. 미국과 홍콩으로 다소 분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 행사는 세계 곳곳에 퍼진 미술계 인사들의 사교의 장이자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는 확실하고도 중요한 지표노릇을 한다. 거기에 이 명품 미술백화점에 그림 쇼핑 오는 컬렉터들이 다시 후원자가 된다. 전용기를 타고 오는 고객의 수가 단지 소수에 그치지 않는단다. 물론 그들 슈퍼리치 VIP고객보다는 아이쇼핑 인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일반 미술계 종사자나 애호가의 역할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트 바젤이 열릴 때마다 이 작은 도시엔 호텔방 구하기도 어려워지니 말이다. 기획이 잘 된 하나의 훌륭한 이벤트가 두루두루 지역과 문화전반에 끼치는 유익한 영향력이 엄청나다. 바라보고 쫓아다니는 입장에서야 부럽기만 하지만.

아트바젤이 매해 6월 유럽 미술과 갤러리에 초점을 맞춘다면, 마이애미는 미국 미술과 갤러리를 위해 2002년 12월 신설되었으나, 남미 미술이 급부상하자 남미 미술과 갤러리를 대거 소개했다. 12월의 마이애미는 미국의 부자들이 온화한 겨울 날씨를 즐기기 위한 별장을 찾아 연말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아트바젤이 아트 홍콩을 인수하며 2013년부터 시작한 홍콩은 매해 3월 아시아 미술과 갤러리에 집중한다. 아트바젤은 세계미술시장 보고서인 <아트마켓>을 2017년부터 발행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아트바젤 시티(Art Basel Cities)’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개최하는 등, 단순히 아트페어만 개최하는 기능에서 확장된 양상을 보인다. 아트바젤을 이끄는 스위스의 MCH그룹은 2019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아트페어를 선보일 예정이라는 발표를 했다.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샌즈의 전시컨벤션센터에서 2019년 11월1일 개막하는 새로운 아트페어 ‘ART SG’를 주관하게 된 것이다. 아트바젤 홍콩이 최근 수년간 급속도로 성장하며 스위스 아트바젤의 매출을 넘보게 되자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아시아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재단도 아닌 그룹에서 아트페어를 확장하며 수익을 내는 전형적인 기업의 방식을 갖추고 있다. MCH그룹은 현재 ‘인도 아트페어’의 지분을 60.3%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지난 2017년 11월 시작된 ‘아트 뒤셀도르프’(Art Düsseldorf)의 지분도 25.1%를 소유했다. 

Art Basel ⓒ myswitzerland.com



4. 아시아 프랜차이즈의 대성공? 

홍콩 아트페어를 인수해 아트바젤 홍콩이 된 이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게 홍콩 미술시장은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2017년 7만여 명에 이어 2018년에는 8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이 아트바젤 홍콩을 방문했다는 통계. 이 엄청난 수의 미술애호가들의 동선은 근처의 갤러리와 위성페어로 이어진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현대미술관인 엠플러스가 2017년의 파빌리온 설립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며 2019년 대형 공간의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홍콩 센트럴 지구에 신규로 오픈한 갤러리 빌딩인 에이치퀸즈엔 하우저 앤 워스, 페이스, 데이비드 즈위너 등의 갤러리리들이 홍콩 분점의 둥지를 틀었다. 진작에 홍콩 센트럴의 중국농업은행에는 화이트큐브와 페로탕갤러리가, 페더빌딩에서 가고시안과 리만머핀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국 유럽의 내로라 하는 페어와 갤러리들은 아시아의 거점으로 홍콩을 지정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거리와 비용, 참가기준의 까다로움 등의 이유로 바젤과 마이애미에는 참가가 어려웠던 한국의 갤러리들은 아트바젤 홍콩에는 꽤  높은 비율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총 11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한국에서 이 페어를 보기 위해 이동한 인구만도 3,000명에 가깝다는 기사도 나왔다. 어떻게 측정한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매년 아트바젤 홍콩을 찾는다. 전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꽤 간단한 일정과 비용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치퀸즈의 설립이나 엠플러스 전시 등 홍콩이 쏟아내는 미술관련 이슈들을 이 기회에 따라가보려는 마음도 있다. 아트바젤 홍콩을 기점으로 홍콩이 아시아 지역의 미술관련 종사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의 행사 혹은 기관이 브랜드가 되면 그 브랜드에 함께(묻어) 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미술이라는 세련된 미디어를 통과해 새 상품을 홍보하거나 기업가치를 높이고 싶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위에 구겐하임이 기업과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던 것처럼 아트바젤 역시 기업과의 효과적인 콜라보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아트페어는 전적으로 상업적인 행사가 미술관처럼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질문을 받지도 않는다. 아트바젤에서는 BMW 아트 저니(BMW Art Journey)라는 행사를 연다. 홍콩의 디스커버리, 마이애미비치의 포지션 섹터에 참여하는 작가 중 각 한 명을 선정해, 새로운 주제나 프로젝트를 발전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의 모든 비용을 BMW가 지원하는 제도다. 페어장의 VIP 라운지에 후원자인 기업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아트바젤의 성공 뒤엔 보이지 않는 갤러리들의 눈물이 숨겨져 있긴 하다. 크기에 따른 부스비만도 몇백만원에서 몇억에 달하는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출장비와 체류비 작품운송비 등을 합하면, 중소형 갤러리는 5천만원 이상, 대형갤러리는 4억 이상의 비용을 쓰게 된다. 아트시에서 집계한 평균에 따르면, 보통의 갤러리가 바젤에 참여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2억 7천만원에서 3억 8천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모든 갤러리가 이 행사에서 그만한 비용을 회수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다. 갤러리와 갤러리 소속작가들을 홍보하고, 컬렉터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투자치고는 성과에 비해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Art Basel | Hong Kong ⓒ Art Basel


5. 프리즈 아트페어의 경우 

아트바젤만큼의 성공을 거뒀다고 보긴 어렵지만, 견줄만한 상대라고는 볼 수 있는 프리즈 아트페어의 경우를 보자. 애초 <Frieze>라는 동명의 현대미술 잡지를 만들던 이들이 2003년 처음 프리즈 아트페어를 시작했다. 10월에 런던의 왕립 레전트 공원에서 4일간 열리는 행사를 준비하며 프리즈재단이 설립됐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생존작가들의 현대미술품에 주목하고 상업성보다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 덕에 여타 아트페어와도 차별점을 가지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런던에는 프리즈 주간도 생기고, 2005년부터 프리즈에 참여하지 못한 화랑들이 레전트파크 북서쪽 끝에 있는 동물원 구역에서 주 아트페어를 열기도 했다. 2012년에는 드디어 미술시장의 성지같은 뉴욕에 입성했다. 매해 5월에 뉴욕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페어는 맨하탄의 이스트 강과 할렘 강 사이에 위치한 랜댈스 아일랜드에서 열린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이 외로운 섬에 둥지를 튼 덕분에 페리와 버스가 관람객과 고객을 분주하게 실어 날랐다. 

공간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결국 아트페어의 핵심은 출품작과 갤러리들의 수준, 여타 프로그램의 내용일 것이다. 제아무리 외양을 치장했다 한들 작품과 프로그램이 저열하다면 칭찬받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프리즈는 온갖 요소요소에 세심한 관심을 쏟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만장일치에 가까운 여론으로 '성공적'이란 단어로 수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선별된 180여개의 갤러리들은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됐다. 기존의 유명한 갤러리들이 다수 포함된 보통 아트페어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프레임과 포커스 부분을 추가한 것이다. 프레임 섹션은 생긴지 6년 이내의 신생 갤러리에게 장소를 제공한 행사다. 작가들의 개인전 형식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포커스는 2001년 이후에 생긴 갤러리들에게 최대 세 명의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게 기획했다. 런던과 뉴욕이라는 현대미술컨텐츠의 집약 지역에서 동시대성을 강조한 미술들을 중심으로 한 짜임새있는 기획으로 프리즈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아트바젤과 프리즈의 국제적 성공, 한국에선 적용 가능한 이야기일까? 

Frieze art fair ⓒ gokams.kr



6. 한국의 미술시장 지형변화와 국제적 행사로 성장 가능성

한국에서는 KIAF가 대표적인 국제미술시장이 된다. 국내에서는 최대 규모 미술장터이고, 키아프라는 이름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키아프)의 줄임말이다. 17회에 가까운 운영기간, 국내외로 몸피를 넓히며 활동을 이어왔고, 국내에서는 꽤 자리잡힌 행사임을 인정하지만, 국제적인 수준으론 논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아트페어 프로그램은 오히려 지원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실험을 하는 형식이 더 국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이후로 국내 미술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 정부나 재단 등이 자립형 시장, 대안 시장을 지원하면서 흥미로운 기획들이 미술계의 새로운 이슈가 됐다. 서울문화재단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시내의 다양한 장소에서 게릴라형식으로 열린 <바람난 미술>이라는 사업을 진행했다. 기존의 아트페어는 전통적으로 갤러리가 참여하여 소속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을 유지해왔다면, 이런 지원프로그램에서는 갤러리가 없는 작가에게도 판매의 기회를 주기위해 작가들의 직거래 프로그램에 대체로 힘을 실어주는 방식을 취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작가미술장터개설 지원이 대표적이다. 굿즈와 유니온 아트페어, 더스크랩과 퍼폼이 모두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하에 탄생한 새로운 아트페어의 대안들이다. 외국의 성공한 아트페어어 미술관 프랜차이즈가 기업적 운영으로 자생은 물론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척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한국에서는 지역과 작가 위주의 운영을 국가지원금 형식으로 장려한 형태가 된 셈인데, 규모와 지형을 비교하기엔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한국이라는 하나의 로컬에서 나름의 특색있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우수한 기획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형성하고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결론은 없겠지만, 미술시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이기만 하다.  



KIAF 2017 ⓒ kiaf.org


아트페어나 국제적 미술행사나 기관을 논의하려는 후기의 미술문화시장 개척은 좀더 창의적인 경험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진 문화적 재산을 발굴하며 진행돼야 한다. 어떤 도시나 행사의 성공사례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끌어내는 지점이 필요하다. 유행을 따라서 이미 만들어진 사례를 따라서 쉽게 가려는 방식은 그 사이클이 짧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컨텐츠를 계속 개발해내려면 결국 문화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인적자원들과 기관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한국의 국가지원형 아트페어들이 흥미로운 기록들과 반응들을 끌어내며 꽤 성공을 거뒀다고 여겨지는 지점이 있다. 이 성공을 단순히 거래비용같은 금전적 수치로만 환산하기 보다는, 미래의 시장을 개척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바젤이라는 한 로컬에서, 홍콩이라는, 런던이라는 한 도시에서 시작된 기적이 서울이라는 혹은 한국의 한 로컬에서 시작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1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열화당
2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열화당



필자: 이나연 quelpartpress@gmail.com
82년생 이나연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성인기의 대부분은 서울과 뉴욕에서 보냈다. 전공은 회화와 미술평론. 2015년, 제주에서 글로벌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퀠파트프레스를 차려 <뉴욕지금미술>과 <뉴욕생활예술유람기>를 발행했다. 2017년 한영판으로 별도 발행되는 문화예술신문 <씨위드>를 창간했다.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강연을 한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8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이나연 필자 -달진닷컴 매체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