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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모던아트여, 안녕!

박용숙


1.
지난해 문학동네에서는 한강이 쓴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면서 문화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미술동네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날 밤 꿈에서 쇠고랑에 줄줄이 매달린 푸줏간의 벌거숭이 고기를 보고 충격을 받고 한밤중에 일어나 냉장고에 들어있는 고기들을 모조리 쓰레기통에다 버린다. 식습관의 대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의 삶이 아직도 농경사회라면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기를 먹는 일은 종교적으로 제사의식 때만 경험하는 중요한 제의적인 행위이다. 본래 제사에는 사람을 제물(祭物)로 바쳤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믿는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짐승의 고기를 먹는 일은 곧 사람의 살을 대신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살이 동물의 살이기도 하고 식물이나 곤충의 살이기도 함을 알게 되는 의식이 제사인 것이다. 제사를 존중하던 옛사람들은 먼저 인간 정신의 소외현상을 걱정했다. 존재의 시작에는 하나의 뿌리가 있고 그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다시 그 줄기에서 무수한 가지가 뻗는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의 인식에 소외와 갈등이 발생하여 비극이 된다. 뿌리와 줄기를 보지 못하고 내살은 내 살이고 네 살은 네 살일 뿐이라는 철저히 분리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그러니 내가 전혀 남남인 네 살을 좀 먹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냐가 된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에서의 중대 사건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빵을 들고 “이것이 내 살이다”라고 말하고 또 포도주잔을 들면서 이를 나의 피로 기념하라고 말한다. 제의적인 메시지로 이는 소외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계시한다. 채식도 육식도 모두 남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행위로 원초적으로는 소외를 치료하기 위한 신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음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철학이나 문학의 주제이고 동시에 현대인이 앓고 있는 소외(疏外)의 문제이다. 이것은 모던아트가 마주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육식을 거부하기 위해 칼로 자신의 팔목을 그어 피를 흘린다. 수많은 가지 중 하나로 살다가 줄기와 뿌리를 보고 나와 네가 하나였다는 소외의 진실에 비로소 눈을 뜨는 히스테리컬한 흥분의 반응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우리의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이야기에서도 만난다. 원효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한 동굴에서 잠을 잔다. 밤중에 목이 말라 주변에 놓인 바가지에 담긴 물을 맛있게 마시지만, 새벽에 눈을 뜨고 보니 바가지의 실상은 해골바가지였음을 깨닫는다. 나무줄기를 잡자마자 그것이 꿈틀거리는 뱀으로 변하는 느낌도 든다.

그것이 충격인 것은 바가지나 해골이 존재의 뿌리에서는 둘이 아님을 잊었기 때문이다. 진리란 놀라움이다. 원효는 이 깨달음으로 그 시점에서 중국으로의 구법행을 접었지만 그 뒤에 그가 가령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승려의 옷을 입고 불법을 열심히 전파했으니 차마 육식이야 했겠는가마는, 사실 채식은 근본적으로 불교 계율에 있어 필요충분적인 것이 아니므로 원효 같은 인물이 설사 육식을 했다 하더라도 비난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것이 오늘의 부조리(不條理) 체험이고 모던아트의 이야기다. 존재의 근원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다.

2.
70년대 세계미술의 주류였던 모던아트의 실험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본 채식주의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다. 여기서 채식의 실험은 일차적으로 캔버스의 무게를 더는 일이었다. 화가들은 벽화시대의 강력한 접착성질의 안료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 과제를 적극적으로 자각하게 되는 시기가 70년대이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튜브 물감과 캔버스에 끈적거리는 물감도배를 하는 나이프를 버린다. 수성 물감이 도입되고 스프레이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던아트실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성급한 화가들은 캔버스를 무겁게 만드는 액자 틀을 벗어 던졌고 한층 더 급진적인 화가들은 캔버스 자체를 버리고 몸으로 메시지를 대신하는 행위 미술을 고안했다. 이를 해프닝, 이벤트의 퍼포먼스라고 한다. 그림이 연극과 만나는 것도 이때이다, 우리는 이를 전위미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캔버스를 버리면 그림이라는 표현수단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채식주의실험의 사망을 선고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회화(繪畫)라는 말은 물감과 붓으로 그리는 그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회화란 본디 비단에다 염색 실과 뜨개질로 그림을 새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회화의 본질이 육식체질적인 것임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채식주의를 흠모했던 문인화가들은 종이에다 담채로 그림을 고안하여 이에 저항한다. 동양미술에서의 모던아트의 탄생이다. 그들이 이미 서양화가 유행하기 이전에 채식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무겁고 복잡한 것이 꼭 선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들이 여백(餘白)의 아름다움을 존중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왜 무거운 것은 나쁜 것이고 가벼운 것이 선한 것인가.

고대 이집트인들도 무겁고 가벼운 것에 대한 미학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의 심장을 떼어서 저울에 달았다. 심장이 기준치보다 무거우면 그는 전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이고 가벼우면 선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왜 하필이면 심장의 중량으로 미와 선의 척도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박서보, 묘법 No.031219, 2003, 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 182×228cm

3.
70년대 우리 화단에는 박서보(朴栖甫)가 채식주의 실험의 선두주자였다. 그는 어느 날 돌연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채식주의 선언이었다는 사실은 그 이전의 작업이 말해준다. 그는 전후에 유럽에서 유행한 앵포르멜을 모방하고 있었다. 앵포르멜은 어둡게 끈적끈적한 기름덩어리 튜브물감을 쏟아 부으며 화가의 내적인 어떤 욕망의 응어리를 분출한다. 따라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그의 선언은『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이 돌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어 모조리 쓰레기통에다 처박는 행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무거운 것은 악이고 가벼운 것이 선이라고 한 고대의 이집트인들의 가치관에 충실한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묘법(描法)이라고 한 말은 그림의 완성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그는 최근에 이르러 노구를 무릅쓰고 왕성한 전시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신작은 물론이고 묵직한 화집을 제작하여 해외전시에도 다닌다.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 활동에는 그늘이 따른다. 사실 채식주의자들도 늘 똑같은 채소 반찬으로만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 때로는 생으로 먹기, 무쳐 먹기, 데쳐먹기, 또는 다양한 소스로 퓨전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채식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선택의 전부이므로 선택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종종 오래된 가수들이 새로 무대에 설 때 새로운 버전을 발표하는 것을 목격한다. 버전의 다양화는 그 아티스트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언이다. 하지만 <묘법>은 계속 원판만 복사된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묘법>이 그래서는 안 된다.



김봉태, Dancing Box 2006-159, 2006, Acrylic & tape on frosted plexiglass, 90×180cm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한참 화제가 되던 해에 우리 화단에서는 원로화가 김봉태(金鳳台) 씨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품 발표회를 열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통설을 보기 좋게 깨는 전시였다. 작품은 <상자시리즈>다. 이 작업은 과거의 구상성이 강한 그의 작품의 흐름과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가 뒤늦게나마 채식주의 실험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작품은 우리의 일상성을 상징하는 박스이미지를 해체하는 실험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매개물인 박스는 그러니까 욕망과 육식체질의 상표가 되는 셈이다. 화가는 그 이미지를 해체하여 평면에다 납작하게 펼쳐놓는다. 이로써 욕망을 표상하는 박스들은 그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단순한 흔적의 역할만 한다. 냉장고에서 고기들을 꺼내어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화가는 박스의 이미지를 깡그리 지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봉태는 이미 옛말이 되어버린 미니멀아트와 모노크롬의 이름을 되찾는다.

4.
우리의 채식주의 실험의 열기를 한층 더 부채질한 것은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모던아트의 본고장에서 만들어진 이 연극도 캔버스에서처럼 무게를 덜어내는 실험이다. 무대는 물건을 담는 박스이지만 이 연극무대는 텅 빈다. 연극에는 달랑 가로등 하나와 벤치 하나가 관중을 기다린다. 등장인물도 단 두 명. 눈여겨볼 만한 액션이나 이렇다 할 이벤트 하나 없이 연극은 그 타이틀이 암시하고 있듯이 오직 ‘기다림’이라는 메시지로 관중을 붙잡아 둔다.

‘말라르메의 백지’같기도 한 이 연극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묘법>과 같이 공허하다. 연극의 채식주의 실험인 것이다. 이렇게 쓰면 오늘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정보의 첨단적인 기계화와 산업화만이 살아남는 우리 시대입니다. 채식주의 비유라니 무슨 말라죽은 귀신입니까. 이들의 항변이 옳다. 이른바 사이버네틱스라 불리는 괴물이 공룡처럼 나다니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 괴물은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한다. 괴물은 이미 우리의 손바닥에 침투한 지 오래다. 이른바 스마트폰이라는 바이러스를 통해서.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바이러스의 포로가 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땅굴을 다니는 전차나 지상을 달리는 버스에 창궐한다. 거리를 걷는 사람이나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도 이 바이러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손바닥을 좋아한다. 손바닥에 앉아서 주인의 눈을 빨아들이며 그를 자신의 노예로 삼는다. 사람들은 더 사이버네틱스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옛날 세대가 유행가를 부르듯이 말하던 ‘군중 속의 고독’이니 ‘생각하는 자아’니 하는 말은 어느새 정신병자의 잠꼬대가 되어 버렸다. 비디오의 세계적인 창시자 백남준(白南準) 선생이 아직 생존하신다면 그는 틀림없이 ‘비디오아트’를 접고 ‘스마트폰아트’를 생산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의 역기능은 더 구제 불능이고 거기에 신종 스마트폰 괴물이 인간의 눈을 파먹으려 하니 이를 그대로 방치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갈등, 모던아트의 채식주의 실험은 이미 구시대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사이버 월드라고 하는 더없이 가벼우면서도 그 무엇보다 무거운, 테제이자 안티테제가 있으니 말이다. 제2의 백남준을 기다려본다.

- 박용숙(1935- ) 동덕여대 예술학부 교수(1979-2004) 역임. 제4회 미술인의 날 대한민국 미술인상 부문별 본상 수상(2010).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일지사,1992)『, 한국현대미술사이야기』(예경, 2003)『, 샤먼문명』(소동, 2015)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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