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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한국인의 정체성(Korean Identity)과 미술계의 정황

정택영

이미 50여 년 전, Paradigm shift란 말이 출현한 이래로 지구촌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또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의미의 이 말은 토머스 새뮤얼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 처음 등장했던 말로, 오늘날에도 패러다임 시프트란 말은 대중매체 속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란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디지털 혁명을 맞은 오늘날 과거의 전통과 결별을 고하고 신사고와 신개념의 융합과 통섭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세계화 현상으로 전 세계가 지역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하나의 지구촌으로 좁혀져가고 있는 듯하지만 국제사회는 자국중심주의와 자국민보호정책을 우선으로 펼치기 때문에 국가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환경 아래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세계화로 빚어지는 난제들을 부딪치며 풀어가야 할 과제들을 숙고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정체성(identification)이란 사전적으로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고 견고 하였지만 현대사회에서 정체성은 여러 환경과 요인에 따라 여러 가지 정체성을 얻게 되었고 그에따라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하여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정체성은 다른 문화와 차별될 수 있는 독특함을 형상화하여 그 가치를 통하여 구별되는 특성이라 볼 수 있다. 그간 한국적인 것은 존재하는가.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5천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한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호가 무수히 바뀌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고조선’ 시대, 삼한, 고구려·백제·신라 등 삼국시대, 이씨 조선의 고려를 ‘꼬레아(corea)’라 꼬레아는 코리아(korea)로 바꾸어 표기했고 고려를 이은 조선은 코리아로 불리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일본이 알파벳 순서대로 국명을 적을 때 꼬리아는 시(C)로 시작되고 재팬(japan)은 제이(J)로 시작되어 시가 앞에 가기 때문에 케이(K)로 바꾸게 작용했다는 말이 그럴 듯하게 떠돌았다. 대한제국 대한민국 한반도는 삼국시대와 이를 통일한 신라, 고려를 거쳐 오랜 기간 동안 불교의 땅이였고 그 시간도 유교보다 길지만 지금은 문화재가 상당수 소멸이 되어 그나마 남아있는 건 조선 후기의 것들인데 신채호 선생은 '나중에 일어난 왕조가 앞의 왕조를 미워하여 고려가 일어서매 신라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으며 이씨 조선이 들어서매 고려의 역사가 볼 것 없게 되었다. 이처럼 현재로써 과거를 계속하려 아니하고 번번이 말살하려고만 하였으니 역사에 쓰일 재료가 빈약해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정택영, Le langage de la lumière - LL 11 빛의 언어, 2016, 80×80cm


한국인은 누구이며, 한국사회의 좌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물결과 급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 국경을 넘는 인구이동의 증가와 초국가적 문화 교류 등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한국과 한국인은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가? 이에 대해 아세아문제연구소(ARI)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위한 시도로, 한민족의 범위와 한국인의 조건, 한국의 역사에 대한 평가, 이념에 대한 태도, 통일에 대한 인식, 한국사회의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한 다문화 정책과 이주자에 대한 태도, 국제 정세의 변화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한 바 있다. 이 결과 ‘한민족’ 또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이상 누구나 당연시하는 고정된 태도가 아니며, 한국인 내부에서도 세대, 계층, 가치관 등에 따라 복합적으로 분화되는 새로운 양상의 결과를 엿볼 수 있으며 진보와 보수, 성장과 분배의 대립과 같은 구래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조사함과 아울러, 이주민과 외국인의 사회통합, 다문화 정책의 도입,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인식 등 새롭게 부상하는 현안과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한 태도들을 폭넓게 그 결과를 말해주고 있다.

세계화는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에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교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다른 문화에 대한 접근과 혼성, 재창조가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이런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정체성의 부재'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정체성의 위기와 부재를 염려하기 전에 과연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의 정체성이란 어떤 성격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함은 자주 간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과연 타당한 것인지도 우리는 되묻게 된다. 왜냐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현존하고 있는가를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영향으로 세계 각지에 한국인이 퍼져 살고 있고 그들을 통해 다문화가 한국에 유입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환경으로 인해 다문화가 공존하는 시대를 맞게 되었는데 공유문화의 기본 전제는 쌍방향성의 존중이다. 타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 정당성을 얻을 수 없으며 문화의 세계 표준화(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각 문화는 나름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제는 현지화(localization)를 반영한 문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현재 한국의 미술계도 이러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면서 미술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자에 '세기의 동행'이란 제하의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은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문화사적으로 조망한 전시로 기획되어 미술을 재조명한 바 있는데 이 전시에서는 ‘계승과 혁신’, ‘이식과 증식’ ‘분단과 이산’ ‘추상과 개념’을 소개하며 ‘구질서에 도전’한 아방가르드운동의 대표작가와 20세기 후반의 개념미술 흐름을 정리하고 ‘민중과 대중’ 등의 장르별 전시 기획을 통해 한국 미술의 흐름을 정리한 전시라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제국과 식민의 역사를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군 근현대 역사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삶과 그 작품을 통해 격변의 시대를 증언한 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간파해볼 수 있다. 

근자에 이르러 미술계는 옥션을 통해 미술품 유통이 빈번히 이루어지는 추세에서 점차 아트 페어로 전환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서 아트 페어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아트 페어를 주관하는 주체와 갤러리, 참여작가 간에 불합리하고 미묘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복잡해져가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아트 페어가 많이 생겨나는 현상은 불황과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미술계의 어려움을 타개할 대안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합리와 부조리로 운영되는 폐단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은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우기 아트 페어에서는 무엇보다 작품을 많이 판매하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되기 때문에 작가들로서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고 작품들도 판매에 몰두하기 때문에 지나친 완성도와 휘황찬란한 색채와 표현들로 범람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세계화의 급물살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미술계 또한 격변하는 세계미술시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주시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과 작가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니할 수 없는 글로벌 시대임을 자각해야만 할 것이다.

정택영 재불 화가/ 전 재불 예술인총연합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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