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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이우환도 사기꾼인가

박용숙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6, 117×11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우환(李禹煥)을 사기꾼으로 몰아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은 그렇다 치고 제법 미술가행세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렇게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막말의 근거는 이렇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점이나 선을 몇개 그리고서는 억대의 돈을 받아 챙기는 화가라는 것이다. 그러니 미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의 인식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런 심리에는 다분히 질투심이 뒤엉켜 있다. 현대미술의 텍스트가 사라지면 결국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돈과 연결된다. 간단히 점을 몇 개 찍고는 억대의 돈을 버니 질투심이 일어날 수밖에. 결국 그는 최근 천경자의 뒤를 이어 기어이 위작 시비에 휘말리고 말았다. 돈이라는 괴물이 그의 가랑이를 휘어잡은 것이다.


1978년 동아일보가 기획한 대담 프로그램에서 이우환을 처음만났다. 오래된 일이어서 그때 담론한 구체적인 주제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현대미술과 현상학(現象學)이었던 것 같다. 이우환은 화가인 동시에 이미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미술비평가의 한 사람이었다. 이미 『만남을 찾아서』라는 비평서가 우리의 화단에도 알려져 있었던 참이었다. 어쨌든 그 일이 있은지 얼마 뒤 이우환의 연락으로 우리는 광화문의 어느 다방에서 만났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다면서 나에게 만남의 기념이라고 하면서 소품 한 점을 주었다. 소품은 스케치북 한 장에 진한 묘필로 위아래로 휘는 토막 선을 반복적으로 그은 다음 문질러서 수묵(水墨)효과를 낸 것이다. 선은 세 개씩 세 줄로 나누어 모두 아홉 번 그었는데 첫 줄은 두번 위로 휘고 끝 선을 피리어드를 찍듯이 멈추는 드라마를 연출한다. 두 번째 줄은 선이 아래위로 번갈아 뒤집힌 다음 피리어드를 찍었고 마지막 줄은 첫 줄처럼 위아래로 휘고 피리어드 드라마를 연출한다. 피아니스트가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는 제스처처럼 느껴진다. 이우환은 언젠가 필자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저의 그림에 대해 민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테-마를 잃은 그림이란 얘기를 들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놈의 테-마라는 것을 좀 더 깨트리고 씻어버릴 수 없을까 하고 노력 중이랍니다.”


그가 소품에다 제목을 달지 않았던 이유이다. 물론 이 그림에는 우리 가족끼리 부르는 제명이 있다. <눈썹>이다. 학교에서 갓 돌아온 어린 딸이 그 그림에다 붙인 이름이다. 문제는 화제(畫題)가 왜 있어야 하는가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일상언어를 소거(消去)하기 위해서 엉뚱한 숫자나 알파벳을 자의적으로 결합하여 제목으로 쓴다. 백남준의 정의를 빌자면 ‘사기 치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해서 아홉 개의 선을 그은 이우환의 그림 한점을 가지게 되었다. 점 하나가 억대의 돈이면 도대체 이 소품 한점은 얼마나 되는가. 나로서는 정말 놀랍고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어찌 어찌해서 어느 지인의 도움으로 소품을 감정에 의뢰해 보았다. 결과는 흥미롭다.


“진품이라고 하더라도 유화(油畫)이면 1천만 원 상당, 하지만 화선지 작품이어서 500만 원 정도. 그렇지만 이 작품에는 화제( 畫題)가 없다. 실제로는 거래 불능.” 우리가 회화작품을 보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값을 매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에 화제가 없어서 거래 불능이라는 판단이다. 현대미술에서 화제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 깜깜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그 테마라는 것을 깨뜨리려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화가이다.


테마를 지운다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말한다. 아니 테-마를 지우기(消去) 위해 그림을 그린다니 그러려면 애당초 붓을 들지 말아야 하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말이 어디 가당키나 하나. 사기를 치려면 백남준처럼 제대로 치라고 하지.



이우환, 선으로부터

거인(巨人) 이우환 

사랑이라는 이름의 덫에 걸리면 남자들의 눈에는 곰보나 언청이도 미인으로 보인다고 그런다. 사랑이라는 마약에 취해서 사리를 보는 눈이 마비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전성시대였던 7,80년대가 그랬다. 물감을 먹은 걸레로 캔버스 위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 다음 이를 작품이라고 우겨도 미술계는 이의 없이 그에게 후한 박수를 보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텍스트(敎本)가 유럽에서부터 미국으로 쫙 깔려었던 탓이다.

하지만 90년대가 시작하면서 ‘묻지마 사랑’으로 통했던 텍스트가 그 본고장에서 사라지고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그때부터 영웅이던 전위미술은 사기 치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의 현대미술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미술평론은 왜 본고장에서 그 잘나가던 텍스트가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묻지도 않는다. 백남준이나 이우환이 사기꾼으로 몰려도 아무도 변호하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았던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TV에서 오랜만에 이우환 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위작 시비로 최근의 국내의 뉴스매체를 통해 유명인물로 등장하고 있던 참이다. 이우환은 인천공항의 출입구를 빠져나오는데 그 장면을 뉴스카메라가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잡은 그의 모습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허름한 잠바 차림으로 소탈한 모습이지만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실망할 모습이다. 세계적인 화가가 복덕방 영감처럼 보이니 말이다. 그는 몰려드는 기자들의 마이크를 피하며 도망치는 모습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이우환이 아니라 위작에 휘말린 범죄와 연관된 인물로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정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우환은 그토록 도망치려 했던 ‘현실’이라는 냉엄한 그물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그가 말하는 ‘현실’이란 OX라는 두 개의 추를 왔다 갔다는 하는 언어만을 고집하는 세계다. 카메라는 짓궂다. 기어이 이우환을 따라붙으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우환에게서 O와 X만을 강요하는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한다. 그러자 이우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그들을 향해 욕을 한다. 원치 않게도 이우환은 사기꾼들과 뒤섞이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우환의 작품을 위작한 범인이 나타났다. 그는 검찰에 출두하여 자신이 위작범이 라고 자수한 것이다. 기자들이 기를 쓰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상황도 이해될 만하다. 이우환이 이를 받아들이면 제2, 제3의 위작 파동이 줄줄이 이어질 상황이 된다. 상황은 꼼짝없이 그가 싫어하는 O, X로 간다. 나의 관심은 그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었다. 만약 O, X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의 <만남의 미학>은 어떻게 될까. 점이나 선을 찍거나 그으면서 억대의 돈을 받는 작업을 하는 화가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어쩌랴, 이 예측이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는 검찰에서이렇게 말한다.

“시비에 휘말린 모든 작품은 내가 그린 것이 맞다.”

역시 거장답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매스컴이나 화랑가는 놀라고 당황한다. 도대체 이 해괴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이렇게 감탄한다. 봐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저 말솜씨를 봐라. 저 사람이야말로 희대의 사기꾼이 아니냐.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현대미술의 텍스트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이우환은 자신의 대표적인 논문 「만남의 현상학」에 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만든다는 것은 우선 물음이나 해답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이고 싶다.”

지하에서 거래되는 모든 위작품은 다 자신의 진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우환의 말은 세속인이 쓰는 말이 아니다.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듯이 그도 거인(巨人)의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임을 말해 준다.


- 박용숙(1935- ) 동덕여대 예술학부 교수(1979-2004) 역임. 제4회 미술인의 날 대한민국 미술인상 부문별 본상 수상(2010). 『한국고대미술문화사론』(일지사, 1992),  『한국현대미술사이야기』(예경, 2003), 『샤먼문명』(소동, 2015) 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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