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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한 편의 소설, 한무숙문학관

김달진

“…일곱 살 난 섭섭이가 악을 쓰고 있었다. 주재소와 면소에서 나온 사나이들이 강제로 거두어 간 유기들 속에서 자기의 작은 놋숟가락이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거리며멀어져 가고 있었다.”

한무숙(1918-93) 소설『 숟가락』(1983)의 마지막 문장이다. 한무숙문학관에서 그의 단편소설집을 펼쳐보다 숟가락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예술은 진실을 깨닫게 하는 거짓말이라 했던 어떤 화가의 말이 소설『 숟가락』을 읽으며 떠올랐다. 물론 읽는 이들마다 다르겠지만 가족 간의 존중과 신뢰가 어떤 사회활동보다 중요하다는 오래된 교훈이었다.

 


한무숙은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었지만, 결혼 이후 낮에는 가정을 돌보고, 밤에는 펼쳐놓고 그림을 그릴 수 없어 문학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4개 국어에 능통해 문학관련 국제행사에 다수 참여하였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문학 강연(1987)을 하기도 했다. 한편 시서화 모두 뛰어나 여러 명사들과 교류했다. 1976, 1985년 등 두차례 부부서화전도 가졌다. 천경자는 한국전쟁 부산피난시절 만난 후 장편소설 『역사는 흐른다』재판본(1956)의 표지화를 그려주었고, 월전 장우성과 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으로 반환 받은 것으로 유명한 손재형이 함께 그린 <모란도>(1973) 등이 문학관에 남아있다. 문학관은 1993년에 문을 열었는데, 초대관장이던 한무숙의 남편 김진흥이 2003년에 타계한 후 장남인 김호기 관장이 이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좌) 김호기 관장, 우) 한무숙문학관 전경

 
한무숙문학관은 혜화동로터리에서 혜화동주민센터 쪽으로 올라가다 몇 미터 지나 왼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향정 한무숙기념관 현판이 보인다. 서울미래유산(서울특별시2013_277)으로 지정된 문학관은 그 건물자체로도 작품이다. 한무숙문학관은 작가 한무숙이 40년을 살다간 전통한옥을 일부 개조한 것으로 제1전시실은 대청마루가 있는 남방향으로 육필원고, 저서, 국내외 저명인사 편지, 훈장 등이 있고 매년 1회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제2전시실은 오세창, 이상범, 장우성, 박승무, 손재형 작품 등이 있고, 2층 별도의 집필실과 3층 제3전시실로 이루어졌다.

 

  
    좌)  천경자가 표지화를 그린 『역사는 흐른다』재판본(1956)


한무숙의 ‘숟가락’으로 떠올린 생각
“평소 선행을 쫓더니(平時善行蹟),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구나(今日始揚名).”, 문학관을 둘러보던 중 신사임당상을 수상한(1973) 한무숙이 시아버지께 받은 축하글이 보였다. 그 옆에서“일상은 평범하게, 사상은 비범하게!”, 김호기 관장이 어머니가 생활신조로 삼던 말이라며 힘을 주어 말했다. 시아버지의 글귀와 김호기 관장의 말과 얼굴을 통해 가족 간의 신뢰와 애정, 문학관을 운영하며 후대에 전하고 싶었던 가치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 김호기 관장이 회갑에 받은 편지

앞으로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문에 김호기 관장은 종로구에 기증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한무숙재단이 주관해오던 한무숙문학상(1회 1995년 박완서 수상)을 20회 2014년부터 종로구와 공동주최하고 있다. 김호기 관장은 현 2,000만원(재단과 구청이 절반씩 분담)인 문학상 상금을 일부 인상하고 인상분에 대해 종로구청 측이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이번 22회 시상식은 1월 31일에 진행되었다.

 
 좌) 뽕피두 프랑스대통령과 한무숙의 장녀 김영기

“사랑하는 호기야, …어느 봄이 황금 같은 날로 차 있으면 나머지 생은 그 시절에 채운 빛과 따뜻함으로 항상 빛에 가득 차있을 수 있다고, 나는 지금 너를 생각하며 그 말을 실감한다….”, 문학관 3층 진열장에 놓인 어머니의 편지를 보며 미소 짓는 75세의 노(老)관장의 얼굴에서 소설『 숟가락』 속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어 행복했다던 양득이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한편의 소설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무숙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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