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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검증 안된 문화권력이 난무하는 사회

홍가이

최근에 언론에서는 뮤직비디오 감독, 개그맨, 시각디자이너, 광고 및 홍보업무종사 출신들의 문화권력 행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 한국사회에서는 ‘딴따라’ 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문화인의 대명사가 되어, 국회의원도 되고 역대 문화부 장관 자리도 꿰차고 있다. 왜?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국민의 혈세를 멋대로 쓰는 자리들을 차지하고, 한국 문화융성을 운운하게 되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들의 분야에서 요구하는 것은 유행에 대한 감각과 발 빠른 재치 그리고 테크닉적 완성도 등이지, 한 국가의 문화융성 본질과 방향성을 제시할 문화적 소양과 지식, 문화적 비전을 소유하여 거시적인 역사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탄탄한 교육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아니다. 즉, 그들의 한국문화예술계의 지도자로서 군림할 하등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 같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런 수준의 사람들을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계 지도자로서 나서 문화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문화교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 있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백남준의 말이다. 자기도 전위예술이란 것에 대해서 뭣 좀 아는 내색을 하려는 것이다. 이분들이 모르는 것은, 백남준은 ‘전위예술가연 하는 행위’로서 내뱉듯 한 말이지만 사실 하버드대의 스탠리 카벨 교수는 예술 철학적으로 아주 진지하게 이미 1968년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예술의 상황을 특징 지워주는 것은 항존[恒存, 상존(常存) 또는 산재(散在), pervasive] 하는 사기의 가능성이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서구 중심부의 사회행위로서의 예술 행위의 규범(또는 문법)이 와해하여, 더는 어떤 짓이 예술 행위이고 아닌지를 구별할 잣대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없는 가치의 혼돈 속에서, 별 쓰레기를 그럴듯한 전위예술 담론으로 포장하면 그것이 예술로 인정되어 경매에서 엄청난 가격이 매겨진다. 아, 물론 이것이 금융시장에서의 계속된 새로운 금융상품개발, 그럴듯한 금융 공학적 포장과 그것의 시장조성을 통한 일확천금을 다반사로 기획해내는 것과도 사실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광고와 홍보와 판매가 전부이고 쓰레기를 천만 파운드에 팔면 천재로 불리는 세상에서, 한국이라고 누구든 나서서 문화권력을 자처하고 또 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누가 탓하랴.


소위 말하는 문화선진국에서도 쓰레기가 판치지만, 그들이 아직도 문화선진국인 체할 수 있는 것은 부패하진 않은 탄탄한 지적 도덕적 교육과 소양을 가진 엘리트층의 자부심이 버텨주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그런 탄탄한 기초의 문화교육을 제대로 받은 엘리트층이 없어서, 아무나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2002년의 한국축구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한국인들이 보고 배워야 할 교훈을 주었는데, 그걸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교훈은 이것이다. 즉, 90분 동안 뛰는 축구에서 기교만 좋다고 대표 선수로 선발하면 안 된다는 것. 기초체력이 중요하다는 것. 기초 체력을 단련하면서 필요한 기본 근육군(群)을 키우면, 근육도 나름의 인텔리전스를 갖고 있어서 다른 기교적인 것은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성의 기초체력이 되는 지적 근력을 키우는 훈련이 필요하다. 탄탄한 지적 기초 세우기, 그것이 교육의 목적인데 한국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기초 지력(智力)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다. 일회용 수험생들만 양산하지 기초 지력을 갖춘 지성인으로서의 학자, 교수, 의사, 법관, 예술가를 교육 훈련하고 양성하는 데는 완전 실패다. 그러니 감각 있는 한류 스타는 양산되지만, 그런 것만 갖고 문화대국 진입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화적 소양과 기초 지력을 연마하는 것을 영미권에서는 ‘자유교양교육(Liberal Arts Education, LAE)’이라고 부른다. 최근의 한국사회에서의 인문학 열풍이 LAE에 대한 동경 같은데, 말로만 인문학이니 융복합학문이지, 그런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나서서 되겠나.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불가능한 사회에선 아무나 나서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이 길들여진 ‘참고 서식’ 지식정보를 외우기 쉽게 정리해주는 것으로 될 것이 아니다. 요새 강남 졸부들이 문화교양을 아르마니 신사복 사 입듯이 배우려고 와인테이스팅 과외 수업도 받는다는데, 과외 학원 없으면 한국 사람들 어떻게 하지? 신문방송에선 매일 노벨상 타령인데, 노벨상 받는 고액 과외 학원을 정부주도로 차리는 것을 권한다.


제대로 된 지성미를 갖추기 위한 LAE를 통한 문화 소양이 있는 사람인가의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이 나아갈 문화·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할 사람들은 개그맨, 광고홍보전문가나 한류스타들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문화적 비전을 갖춘 제대로 된 교육훈련을 받아서 무엇보다도 기초 지력이 탄탄한 지성미 있는 문화엘리트일 것이다.



홍가이(1948- ) 미시간대 수학·물리학·철학 학사, 이탈리아 우르비노대 국제기호학과 언어학연구소 디풀롬학위 취득, MIT 철학박사. 이화여대, 와그너대, 프린스턴대, 케임브리지대 처칠칼리지, MIT 및 한국외국어대 교수 역임. 『현대미술문화비평』(미진사) 및 『Nostoi: Chilcdren of Prometheus』(Space Publication, 1988), 『Hiroshima Elegy』(International Youth Theatre Centre, 1984, Amazon Reprint, 2014) 등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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