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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예술은 노마드(유랑)의 길에서 줍는 것이라오

김주영

글이 있는 그림(113)

일반으로 모더니즘의 모태인 에콜 드 파리 작가들만 보더라도 예술의 산실은 아뜰리에였다. 파리의 몽마르트언덕에 자리 잡았던 예술가촌인 바또 라브아르가 예다.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청년시절 고향을 등지고 파리의 에트랑제 화가생활에 뛰어든 이유는 예술의 영감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소위 예술의 후기역사주의 이론가인 미국의 아서 단토의 사유에서 앤디 워홀은 그의 철학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이 유명한 1965년 그가 스타블화랑에서 본 브리오 박스가 아니었던가. 실제 워홀의 작업장은 팩토리였다. 워홀도 풍운의 꿈을 품고 뉴욕에 입성한 촌뜨기 프리랜서 디자이너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독일작가 볼프강 라이프는 시골 고향에서 옹크리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천성이 수줍은 의사였다. 민들레 꽃가루를 채취해 병에 담아 모으다 그는 결국 인도로 떠난다.


내가 파리에서 방황할 때 가장 나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던 볼프강 라이프의 전시장. 쌀, 우유, 꽃가루... 그 침묵의 아름다움에 숨막히었던 순간은 예술을 찾아다니던 내게 ‘그래 이거다’라는 마음의 스파이크가 일던 순간이기도 하다. 위의 전혀 기질이 다른 예술가들의 경우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예술을 찾아 이동(노마드 개념의 자리바꿈:이탈,탈주)했다는 점이다.

나는 길을 간다. 어차피 아뜰리에라는 폐쇄된 공간을 나왔지만 또 다른 폐쇄된 현실세계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냥 거기엔 길이 있어서 좋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왜? 길 위에서 예술을 주우려고. 가령 길 위에서 죽은 나비를 주워와 ‘영혼제’를 구상했다. 시베리아의 기차 길에서 ‘고려인의 한’을 다큐형식으로 내러티브할 생각이 떠올랐다.(광주비엔날레 Diaspora) 예술은 길 위에서 그렇게 줍는 거다. 그럼 누가 봐주냐고? 사실 이 고독은 춥다. 하지만 애절하다. 여기서 태어난 노마드 오브제는 기회가 되는대로 글이나 전시장에서 여러분들과 소통하며 따뜻한 활기를 찾는다. 그래서 예술을 주우려 또 길을 떠나려한다.
 
- 김주영(1947- ),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 박사(1992). 파리 볼가 화실/세잔느 예술가 촌 입주(1987-2006, 프랑스 문화성 제공), 『목마른 달팽이 여행』 동아일보사 서울(1999), <송화강은 흐른다> 신경 중국(2010), <신성한 소금> 시옹-마르세이-옌징(2008), <오솔길에서 만난 사람들> 오바뇨시 초대 레지던스/개인전 남불 외(2011), 『아티스트 김주영의 예술론 아르비방이 가는 길』 AMA 서울(2012), 현 홍익대 미술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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