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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자연의 초상

김경렬






나는 오늘도 찌뿌둥했던 긴밤을 뒤로한 체 밝은 아침 햇살을 받는다. 의례적인 아침 식사 후 나의 애마(愛馬) 삼천리표 자전거에 몸을 의지하고 화실로 향한다.

길가의 가로수엔 어느 새 봄의 물기가 가득차 올라 상큼한 새싹이 움트고 있다. 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키며 해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나무는 항상 같은 나무이되 잎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이제 막 움트는 새싹에서 가을의 낙엽을 떠올려본다. 지난 가을의 낙엽이 있었기에 지금의 새싹이 더욱 싱그러울 것이다.

나는 자연을 통하여 인생을 배운다. 나는 숲을 통하여 삶을 본다. 나는 나무를 통하여 인간을 느낀다. 지는 낙엽 속에서 황혼의 아름다움을 본다. 겨울나무 속에서 봄을 향한 약동을 느낀다.

봄은 맑은 영혼을 지닌 어린이 여름은 건강한 젊음의 청년 가을은 우아한 멋을 지닌 중년이다. 겨울은 인생을 회고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노년, 나무의 겨울은 봄을 향한 희망이다.

나는 구름에서 희망을 본다. 나는 항상 희망을 안고 사는 이를 존경한다. 그것도 아주 큰 희망을 안고서, 저 불확실한 미래를 당당히 맞이하는 이를 본다.

나무는 인간의 초상이다. 나무의 외양(外樣)은 그의 일생을 보여준다. 가을의 낙엽에는 허무함이 아닌, 완숙한 중년의 미학이 있다. 나는 그것을 즐긴다.

겨울나무는 그의 역사를 의연한 자태로 보여준다. 또한 땅 속의 뿌리를 통하여 봄을 향한 말 없는 발길을 재촉한다. 나는 항상 그들을 느끼고, 그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윽고 나는 화실에 다다른다. 나의 팔렛트 위에 마르지 않은 물감과 잘 빨아 두었던 붓들이 나를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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