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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가라면 누구나

안창홍

글이 있는 그림(99)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이나 젊은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마다 빈번히 받는 동일한 질문이 있다. “작업이 가장 잘 되는 시간이 하루 중 언제세요?”, “영감은 언제 떠오릅니까?”, “외롭진 않으세요?” 마지막 질문은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인적 드문 시골에 묻혀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 외에는 화가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보편적 관심사일 것이다. 사실 나는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지도 않고 작업에 집중하기 좋은 특별한 시간도 없다. 그러니 생각과 그리기가 들쑥날쑥 그날그날의 생체의 리듬에 따라 내키는 대로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고 나면 밤이 깊었으니까 자고 낮이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개념도 없다. 졸음이 오면 자고 배가 고프면 먹는다. 그러니 며칠씩 잠이 밀려 있기도 하고 며칠씩 밤낮없이 잠에 골아 떨어지기도 한다. 누워서 편안히 자는 경우도 있지만 의자에 기대 앉거나 엎드려서 틈틈이 잘 때가 많다. 작업 중에는 먹는 것도 미뤄뒀다가 폭식으로 허기를 채우기 일쑤다. 그러다가도 매사 제쳐두고 하염없이 빈둥대기도 한다. 작업을 위한 것들과 개인적 생활이 전혀 규칙적이지도 전혀 불규칙적이지도 않다. 영감도 특별한 분위기나 집중을 통해 떠올리지 않는다. 머릿속은 항상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로 뒤숭숭하다. 마치 이미 가득 찬 만원 버스에 억지로 사람들을 밀어 넣듯 그렇게 떠오르는 생각의 잡동사니들을 쉼 없이 밀어 넣는다. 끄집어 내보면 대부분 얼토당토않거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이다. 그래도 그 중에는 쓸 만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화폭을 마주하고 붓질을 해대는 동안에도 생각들이 마구 떠올라서 잊어버리기 전에 손닿는 곳에 메모를 해 두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은 특별한 영감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이런 단편적 생각들이 모여서 퍼즐 맞추기처럼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나의 작업 내용과 방향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떠오르는 생각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땐 간혹, 아주 간혹 진행 중인 작품에서 손을 아예 떼버리곤 생각에 잠길 때도 있다. 아주 간혹 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그리다 만, 꽤 많은 양의 미완성 작품들이 있다. 애착을 가지고 골똘히 그리던 작품이라도 붓을 놓고 며칠이 지나고 열정이 식어버리면, 대부분 다시 완성시키지 못한다. 미련도 없다.

이런 식으로 그림 그리기와 생각들이 뒤엉켜있고 사생활과도 확연히 구별 되어있지가 않다. 머릿속엔 항상 두 가지의 필름이 돌아간다. 하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상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림에 필요한 정보수집용이다. 영화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대화를 나누다가도, 꿈을 꾸다가도, 응가를 하다가도 그림에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재빨리 다른 한쪽 필름에 입력 시킨다. 이러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느라 늘 바쁘다. 이렇게 반쯤 정신 나간 듯, 어리버리하고 뒤숭숭하게 산다

- 안창홍(1953- ) 1976년 첫 발표 이후 28회의 개인전과 그룹전, 기획전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해 오고있다. 그림모음 1, 2집 『인간에 대하여』. 작가론으론 『어둠속에서 빛나는 청춘』 (최태만 저, 눈빛)이 있으며, 프랑스 카뉴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부일미술대상, 봉생 문화상, 이인성미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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