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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똑같은 그림’

임영길

글이 있는 그림(98)

세상에는 ‘똑같은 그림’과 ‘비슷한 그림’ 그리고 ‘다른 그림’들이 존재한다. ‘똑같은 그림’에서 ‘똑같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류는 문명화 과정에 있어서, 석기시대에 석기의 ‘표준화’ 과정을 거쳤고, 그 후에 역사적으로 복제품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수메르 인이 ‘굴리는 인장’을 진흙 판에 찍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복제품을 사용한 것은 청동기 시대의 주조에 의한 동전 및 무기 등의 다양한 청동제품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최초로 복제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이상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똑같이 생긴 사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문명이전에는 우리에게 복제라는 개념이 없었을까? 복제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것이 우리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체의 번식에서 유전자 안의 암호화된 정보의 복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세포는 복제를 증식시키는 것이 그들 최대의 임무이자 목적이라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태초에는 복제에 의한 창조가 있었다. 세계의 최소단위는 원자인데, 원자는 오십 몇 개의 종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개별 원자는 근본적으로 모두 똑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달리 말하면 단지 오십 몇 개의 원자의 구성과 반복에 의한 복제로 이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똑같다’라는 개념은 인공적인 것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에 있어서도 매우 보편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의 ‘똑같은 그림’이었던 목판화가 등장한 이래,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기법으로 ‘똑같은 그림’을 제작해 왔다. 시각적으로 동일한 개념을 공유·저장·소통해서 다양한 학문과 문화,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대중화를 선도 하거나, 나쁘게는 ‘위작’을 그리는가하면, 학습을 위하여 ‘모작’을 하기도 한다. 드물게 자신의 예술관에 따라 똑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처럼 ‘똑같은 그림’은 역사적으로 사회·경제·문화적인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왔으며, 아울러 사람들은 ‘똑같은 그림’을 복제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과 자동 인쇄술이 발명된 19세기 중반부터는 폭발적으로 그 수요가 늘었고. 특히 최근의 디지털 환경에서도 이미지의 복제와 저장, 그리고 소통하기 용이하게 압축하는 방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디지털에 의해 달라진 문화, 예술의 지형에서 최첨단기술로 무장된 ‘똑같은 그림’이 또다시 어떤 변화를 몰고 오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 임영길(1958- )씨는 홍익대 회화과와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서울과 뉴욕, 멜버른에서 개인전 (16회)을 개최하고, 판화와 회화 및 북아트 등의 분야에서 많은 국제전 및 단체전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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