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남신
“좀 놀어~, 노는 것도 공부여.”
대학 시절 어느 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의 뒤에서 선생님 한 분이 툭툭 의자를 치며 하신 말씀입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장난기가 느껴졌습니다. 뭐, 당시에는 죽을 쑤고 있는 나의 그림 탓으로 생각했습니다. 좀 쉬었다 여유를 가지고 해 보라는 의미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가 단순히 그런 의미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평생 예술과 더불어 살아온 나이 든 예술가의 혜안이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고서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는 모양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의 눈에 나의 전투적인 그림 만들기가 안쓰럽게 보였겠지요. 세상과 치열하게 대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놀아보라는 뜻, 아니었을까요? 예술가가 작품을 한다는 것은 투지를 가지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바라보면 자기가 다루는 매체를 통하여 세상과 노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호이징하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놀이본능이 문화를 형성해 왔다는 뜻이겠지요. 또 영어의 ‘스쿨(School)'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스콜레(Schole)‘는 여가를 의미하는 말이라 합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여가란 지식을 추구하는 자유를 의미했지요. 앎을 추구하는 자체가 즐거운 놀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담론은 가끔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근래의 미술은 지나치게 의미 지향적이고 세상에 관해 윤리적 견해를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애매한 개념이나 인문학적 담론을 내 세워서 우리를 훈계하려 합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도 필요하겠지만 예술가가 꼭 윤리적인 견해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그러한 작업들은 그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작업이고 자신의 내면에서 육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정한 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작품은 단순히 내 머릿속의 편린을 담아서 전달하는 그릇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의미는 작품이라는 그릇에 담긴 좋은 음식에서 퍼져나가는 향기 같은 것이지요.
이제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저 덤덤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점점 가벼움과 유머를 선호하게 되었으며 색상은 단순해졌고 마띠에르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이것이 혹시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는 징후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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