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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나의 삶, 나의 작업

송번수

“말하자면 당신이 걸은 만큼의 땅을 드리는 거죠, 그러나 꼭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와야 합니다.”


바홈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아득히 억새 초원 너머로 손바닥같이 평평하고 양귀비같이 검은 기름진 땅 그가 있는 힘을 다하여 달리고 달려 출발점까지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끝내 바홈은 지쳐 쓰러졌다.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으나 그의 입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정확히 3 아르신(1 아르신=약 70cm)의 땅에 묻혔다. 인간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인간의 욕망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달리고 있는 바홈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단편 중 하나인 이 글은 필자가 1989년 조선일보미술관에서‘Beyond Printing Art’라고 명명한 나의 개인전 카탈로그에 수록한 작가 노트이다.





송번수, An Experienced Truth, 1996, Wool, plain weave, 220×270cm



작가는 크게 두 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한 부류는 하나의 주제와 표현기법으로 평생을 일관하는 작가군과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넘나들며 조형 세계를 유람하는 작가군으로 대별할 수 있다. 나는 철저히 후자의 군에 속하는 작가이다. 나는 주제의 선정과 표현기법의 선택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보는 이들의 감성에 감동이 일어나기를 추구하는 작가이다. 그 변화와 자극은 자연과 사회구조 속에서 받아 들여지는 환경들을 내 생각 깊숙이 숨어있는 감성과 결합해 표출하는 것인데 나의 작품 테마는 60년대 말 목판화 기법의 화집점(火集点) 시리즈에서 70년대 장미 시리즈, 80년대 실크스크린 기법의 광화(狂花) 시리즈, 90년대 상대성 원리, 2000년대 종이 부조기법과 태피스트리 기법을 적용한 가시 시리즈 등 다양한 주제의 선택과 표현기법들로 이어져 왔다. 미술이란 보는 이에게 어떤 자극과 감성을 유발시켜야 되며 작가란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어떤 변화를 모색하여야 한다는 나의 창작이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상황적 시대적 배경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자세로 지금까지 나의 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미술이란 정신적 사고의 산물로서 그것을 시각 형태로 드러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번민의 연속이다. 나의 작품의 곳곳에는 나의 개인사적 혹은 사회사적 어둠과 슬픔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나의 아들의 죽음, 70, 80년대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현황들을 어둠과 슬픔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색채 자극과 다양한 대상의 선택과 변화로서 나타내고 싶었으며, 따라서 작품은 은유적이며 한편으론 직설적인 양면을 표현하고 있다.





송번수, Take Cover, 1974, Serigraph, 150×150cm



하나의 대상 혹은 주제로 조형적 변화만을 추구하는, 그래서 시간적 변화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나는 거부한다. 나는 어린아이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는 것과 같이 항상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리번거린다, 따라서 나의 작품에는 항상 신선한 충격을 내포하는 데 주력하는 바 여기서 새로움이란 진전된 그 무엇을 내포하여야 한다, 바로 그것을 나는 작가의 “의도(意圖)” 라고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뒤샹의 <변기>, 아르망의 <장기주차>, 올덴버그의 거대한 공공 조형물 등이 가지는 다양한 의도 그것을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의도란 바로 작가의 표현대상이며 방법이고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의 주장인 것이다. 이러한 나의 창작론은 나 자신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겨지기를 원하는 나의 바람 바로 “바홈”의 모습 나의 모습이다.



송번수(1943- ) 홍익대 미술대학 공예과 석사(1965), 헝가리 개국 1000년 기념 타피스트리 전시에서 최고상 수상(2001), 대전시립미술관장 역임. 현 마가미술관 관장, 홍익대 미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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