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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동아시아와 ‘뼈에 새겨진 계엄령’

홍성담

서구는 우리의 땅을 ‘아시아’라고 불렀다. 그들의 언어 ‘아시아’에는 미개한 땅이라는 경멸과 모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1839년 아편전쟁이라는 중·영전쟁이 동아시아의 ‘근현대 100년’ 역사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서구열강들의 아시아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동아시아는 길고 긴 전쟁과 ‘계엄령’이 시작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으로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가 우리들과는 상관없는 전쟁의 늪 속에 빠졌다. 동아시아만 보더라도 타이완과 한반도가 일본 군국주의의 식민지로 되고, 중국 대륙은 유럽열강과 일본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어 나누어진다. 일본 천황제가 만들어낸 국가주의의 오만과 미국의 욕망이 태평양을 참혹한 전쟁터로 만들었다. 인류 최초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할 원자폭탄 2개가 미국에 의해서 아시아에 투하되었다. 전쟁 직후, 전범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뉘른베르크 재판’은 그나마 나치의 전쟁범죄를 가혹할 만큼 처벌했지만, ‘동경 재판’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 의해서 매우 부실하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일본은 미국의 보호 아래 천황제를 유지하며 태평양전쟁을 총괄하던 ‘대본영’을 ‘일본식 민주주의’에 습합시켜서 현대일본국민들의 의식구조를 계엄령화 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화가 오우라 노부유키(大浦信行)는 1987년에 천황제와 야스쿠니를 비판하는 그림을 도쿄에서 전시했으나 당국에 의해 전시장이 폐쇄되고 고발되었다. 우익들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반도는 분단 전쟁을 전후로 남·북 양쪽 모두 국민들의 뇌 속에 계엄령이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다. 1989년에 한국의 청년작가들이 <민족해방운동사>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슬라이드를 북조선 ‘평양 세계학생축전’에 보냈다는 이유로 24명의 작가가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감옥을 살았다. 필자는 2014년 광주비엔날레 ‘광주정신특별전’에 작품 <세월오월>을 출품했으나 당시 한국의 대통령 박근혜를 허수아비로 그렸다는 이유로 전시가 거부되었다. 우익들이 검찰에 고발하고 작가의 집 앞에서 시위하며 살해 위협을 했다. 이후, 당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사찰을 당했다.




홍성담, Vietnam 야유나무와 nipple, 2018, 캔버스에 유채, 650×162cm


중국의 농민혁명군에 쫓겨서 타이완에 들어온 장제스와 군부는 자신을 비판하는 2·28 민중봉기(1947년)를 진압한다는 핑계로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3만 명을 학살했다. 이 학살로 대만인들의 뼈에 계엄령을 새겨 넣었다. (대만의 극작가 연출가 왕모린의 글 ‘뼈에 새긴 계엄령) 그로부터 40년 만에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당시 타이완에서 활동하던 화가 황렁찬(黃英燦)은 2·28 민중봉기를 판화로 제작하였다. 이후, 당국에 체포되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타이베이 강변 마장터 사형장에서 총살되었다. 서구열강들로부터 많게는 300년, 적게는 50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아시아 각 나라는 세계대전 이후 독립되자마자 그들이 물러가면서 심어놓은 괴뢰집단들과 끊임없는 분쟁 속에 빠진다. 한반도 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리고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2백만 명 대학살이 그렇다. 지난 태평양전쟁으로 일본군에 의해서 아시아인 2천만 명이 살해되었다. ‘난징도살’과 오키나와에서 전쟁과 상관없는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일본 군국주의를 아버지로 섬기는 한국군부에 의해서 이곳 제주도에서 3만 명이 학살되었다. (1947년) 

이때, 제주도민 가슴속에 새겨진 계엄령의 트라우마는 지금까지도 해제되지 않았다. 이어서 한국군부는 1968년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민간인 학살을 서슴지 않았고, 또 1980년 5월 광주학살에서 그 잔혹함을 세계적으로 자랑했다. 지난 4월 남·북회담과 6월 북·미회담으로 동아시아는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동아시아 인민들의 뼈에, 가슴에, 뇌에 새겨진 ‘계엄령’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계엄령의 트라우마는 전쟁과 다르지 않다. 사유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파괴한다. 부상이나 폭행, 고문, 강간, 살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무너지게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깃들어 있는 유령 ‘계엄령’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체하고 녹여내는 적극적인 임무를 동아시아 예술인들은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4.3 학살로 이 좁은 섬에 약 3만여 명의 뼈를 묻은 제주도가 동아시아 문화예술인들에게 감히 평화의 창작연대를 구축하자는 목소리를 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니, 백두에서 한라까지 삼천리 화려강산 골짜기마다 학살의 슬픈 뼈를 묻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도 또한 다르지 않다.


홍성담(1955- ) /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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