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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잘 돌아왔어.

써니킴


써니킴, 통로(Passage), 2016, Acrylic on canvas, 112×138cm


써니킴, 무대(Stage), 2016, Acrylic on canvas, 112×162cm


써니킴, 서있는(Standing), 2016, Acrylic on canvas, 112×138cm


잘 돌아왔어.

소설의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든다. 

이 문장은 행동의 묘사보다 감정 자체로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필시 내가 그 문장 속으로 들어가, 그 문장이 일으키는 바람을 느끼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곳에서 깊이 반응하는 나의 감정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어딘가 낯익은 곳이며 익숙한 느낌의 공간이다. 

잘 돌아왔어.
나에게 이 문장은 대화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하는 말소리. 
내가 나에게 하는 말소리. 
아니면 어디선가 들리는 말소리. 
아니 어쩌면 나의 생각 속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언젠가 이곳을 떠났었다는 말이 된다. 
떠나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나 사정이 있고, 원해서도, 원하지 않아서도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 떠난다는 것은 ‘영원’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끝없이 슬픈 이별이다. 그 이유로, 나는 현재를 느낄 수 없고, 과거를 반복해서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이 나에게 전해주는 느낌은 아마도 내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소속감’ 이 아니었을까. 

내가 유령처럼 붙들고 있는 것은 나의 삶에서 불현듯 사라진 것들, 그로 인해 존재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 시간은 과거이기도, 그래서 현재이기도, 내 것이기도, 타인의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들은 우리가 규정짓는 시간에서 떨어져 나가 스스로 만들어낸 공간에서 유동적으로 흐르기를 거부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작업은 허구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역할로서 존재한다. 알 수 없는 영역에서, 끝없이 나의 존재성을 질문하는 그곳에, 그림이 있다.

오랫동안 쓰던 컴퓨터가 갑자기 멈췄다. 
컴퓨터가 눈이 멀었다. 
암흑 같은 블랙 스크린 속에서 퍼지는 비프음만이 나의 심장 소리처럼 뚜욱 뚜욱 뚜욱. 
세 번.
나는 계속 불안해했다.

우여곡절 끝에 화면에 빛이 스며들고 점차 확실해지는 바탕화면의 ‘캔디’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잘 돌아왔어.
 

- 써니킴 (1969- ) 뉴욕 쿠퍼유니온대 회화과, 뉴욕 헌터대학원 종합매체과 졸업. ‘올해의 작가상’(2017, 국립현대미술관). ‘롤링호그’(2010, 갤러리현대 16번지), ‘완전한 풍경’(2006, 일민미술관) 등 개인전과 런던 A.P.T.(2018), 문화역서울284(2012), 비엔나 쿤스트할레(2007) 등 그룹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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