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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보여지는 것

하용주

눈을 자주 깜박이고, 코를 훌쩍거리며 종종 말을 더듬기도 한다. 내 습관이다.


나는 유독 남을 많이 의식한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안 좋은 습관들로부터 남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안구가 건조하고, 비염과 생각한 내용을 급하게 말로 옮길 때가 습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공포로 다가왔는데, 내가 하는 습관들을 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외형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일치를 통해 상대를 인식하는 것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한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과 더 나아가 구조에서까지 그것을 인지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용주, Blind 14, 2016, 장지에 먹, 분채, 120×88cm



나의 작업은 앞서 언급한 내 습관으로부터 유발된 타자의 시선에 대한 공포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시작은 특정 소재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데, 나를 감추는 사회적 방어기제인 가면과 소통장치인 필터가 달린 방독면을 쓰고 힘겹게 걸러진 소통을 하는 인물들을 주로 그리며 작업의 내용이 개인에서 모두의 문제로 확장됐다. 그도 그럴 것이 작업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과 내가 바라본 세상의 외면과 내면의 다양한 면의 발견 때문일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여질 것과 보여지지 않을 것”

내용의 소재로부터 출발한 내 작업이, 형식의 관심으로 전환되었는데 <Blind>(2013- ) 연작부터라고 할 수 있다. Blind는 눈이 먼, 깨닫지 못하는 등의 의미를 가지고 가려지거나 익숙하지만 낯선 구조의 모순에 대해 기존 작업내용의 연계이며, 사회의 특정 사건들을 바탕으로 공간과 상황, 이미지들이 함축된 작업이다. 시각적인 재현성과 분위기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보이는 것을 매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의(寫意)적 심상표현주의 태도로부터, 직접적인 것과 은유 되는 것, 화면을 구성할 때 대상의 위치와 각도, 붓의 운용과 안료의 선택, 보여지는 방식의 실험 연작은 최근 검은 회화로 보여지고 있다.



하용주, Blind 35, 2017, 장지에 먹, 분채, 9.5×6cm



검은 회화는 우선 우리의 시지각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왔을 때 일시적으로 공간과 대상이 보이지 않다가 점점 보이는 현상처럼 검은 회화는 어두운 화면 안에서의 상황을 친절히 보여주지 않는다. 대상을 온전히 그리지도 않고 그것이 사람인지, 사람 모양을 한 것인지, 풍경인지 풍경같은 느낌인지는 보이는 것과 시간의 변화를 통해 일차적으로 판단하고, 작품을 경험하는 자의 정서와 가치관을 통한 주관적 요소로 인식되고 정의된다. 보여지는 것의 최소의 기준이며 감각하는 것과 사유하는 작품의 화면 속 이미지는 그 무엇의 외면일 뿐 그 무엇 자체일 수 없다. 나와 타자, 원활한 소통과 걸러진 소통을 통한 관계 사이의 수많은 레이어의 위장을 부정하면서도 개인과 집단, 구조, 체계 안에서의 익숙하며 필연적인 상황을 인정하기도 한다.


사회 안에서 당신이 속한 시간, 공간, 상황,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또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의 질문을 던진다



하용주, Blind 40, 2017, 장지에 먹, 분채, 385×1540cm



하용주(1979- ) 조선대 한국화과 및 중앙대 대학원 한국화전공 졸업. ‘GASMASK0200’(금호미술관, 2007), ‘준비된 위장’(갤러리정미소, 2008), ‘어느 연약한 짐승의 죽음’(아트스페이스H, 2012), ‘Blind’(플레이스막 2016, 영은미술관 2017) 등 연작의 순서로 현실과 타자, 구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재현과 은유의 방식을 오가며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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