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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자연인(自然人)으로 살아가기

이후창

나는 산속에서 태어났다. 깊은 산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큰산이었다. 우리집은 마을에서 떨어진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있는 마지막 집이었고, 아버지께서는 부동산을 하시며 목장과 농장을 경영하셨다. 어린 시절 집에는 젖소목장이 있었고, 사슴목장도 있었다. 집 뒤로는 넓은 밤나무농장이 있었다. 마을 큰길에서 집까지는 3㎞ 정도 걸어 올라갔는데 집 근처 초입에 다다르면 형과 나의 이름을 딴 석창농원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부모님의 자식사랑이 간접적으로 느껴지던 농장 이름.


6-7살 무렵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밤 줍는 일을 돕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지만 그래도 끈기가 있었던 것 같다. 밤을 소쿠리에 가득 담아가면 칭찬도 받았고 작은 용돈도 주셨다. 부모님은 과정과 결실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라 짐작된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처음 전기란 것이 들어온 곳, 집 앞마당에는 거위와 강아지 여러 마리가 있었는데 넓은 농장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거위는 생각보다 사나워서 맞닥뜨리면 나는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다. 주변에는 닭과 오리도 항상 많았다. 아침이면 닭과 오리 울타리에서 알을 수거해오는 게 어린 나에겐 큰 재미였다.


지금은 도심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나의 정서 속에는 유년시절 자연 속에서 산과 나무, 동물과 식물, 곤충, 새소리 등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자리 잡고 있다. 유년시절 살던 고향은 참으로 유토피아 같았던 곳으로 생각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그리운 곳이다. 나중에 다시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작업하며 지내는 게 나의 희망 사항이다.



이후창, Illusion, 2017, 유리, 금속, 빛, 가변 설치, 미국 뉴욕에서의 전시전경



이런 유년시절을 지내와서인지 나는 유독 자연이 좋고 동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작업실에는 고양이 8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천연(天然)스럽다. 동물은 거짓이 없다. 주인을 항상 따르며 배반하지 않는다. 그리고 겉과 속이 같다. 모든 생명체 중 아마 유일하게 겉과 속이 다른 존재가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사람은 다중적인 내면을 가진 존재이다. 나는 유년시절 자연에서의 순수했던 시절을 지나, 이후 학교나 군대, 사회, 도시의 여러 시스템적인 관계 속에서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이중성에 대해 항상 궁금증이 많았다.


나의 작업은 결국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첫 개인전의 주제는 ‘상실의 시대’였고 이후 줄곧 인간 내면의 이중성에 대하여 작업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타자성을 주제로 한 작업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Illusion 시리즈 작업도 결국 인간 내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내면의 진정한 나에 대하여 고민한다. 몇 년전 박사학위전의 여러 작업 중 <108개의 Illusion>이라는 작품은 108가지 번뇌에 관한 내용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번뇌하지만 거기서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것으로 작품화하였고, 또 다른 작업 <Illusion-기도>라는 작업은 실제 불씨가 특수유리로 만들어진 창문 속에서 끊임없이 중첩되어 무한대로 타고 있는 작품이었다. 실제로는 한 개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착시현상인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라지만 결국 초자연에 의지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이외에도 불, 물, 빛, 그림자 등을 이용한 작업이나 영상작업 등 공간 속에서 관람자가 현상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간은 다중적이라고 종종 생각되는데 내가 주로 유리 재질을 작업에 사용하는 이유이다. 유리는 겉과 속이 다르며, 액체와 고체의 성질, 투명과 불투명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며, 심지어 주변을 반사하여 자신을 감추기도 한다.


2017년 뉴욕에서의 전시에서 선보인 Illusion 설치작업들이 서양인에게 큰 관심을 받는 것을 보고 작가로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마이애미의 전시에서 나의 작업 중 크기가 큰 설치작업들이 모두 매진되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판매 여부를 떠나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설치작업을 구입한다는 것도 신기하기도 했고, 또한 동양적 정서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지점이 동서양을 떠나 결국 인간 본연의 고민에 대한 공감.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결국 내면에서 근원적 존재의 자아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사람도 자연(自然)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에.



이후창(1979- ) 홍익대 조소과 박사과정 수료(2012). 26회의 개인전과 280여 회의 국내외 그룹전 참여. 아르코 신진작가 비평 워크샵 1기 작가(2009), 서울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작가 선정(2009, 2010). 하정웅미술상(2011) 수상. 현재 (사)한국조각가협회 사무국장, ISF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사무국장(2013- ), 인천카톨릭대, 계원예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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