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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Eureka, 예기치 못한 발견

김승영

새해가 되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작업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내 삶에 있어 몇 번의 큰 변화는 늘 공간의 이동,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중에 가장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 뉴욕에 있는 MoMA PS1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이탈리아 루카 그리고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참여로 남극과 몽골, 바이칼호를 다녀올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은 온몸에 짜릿한 흥분과 에너지를 갖게 한다. 이런 긴장감들은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 뜻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나의 작품들은 삶 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과 시간의 흔적을 나만의 방식으로 엮고 풀어내서 만들어진다. 이런 작품 중에 하나의 사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2008년 12월, 당시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Strausbourg)에 있는 CEAAC 레지던스 작가로 참가하게 되었다. 해외 레지던스에 참여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서울에서의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욱이 이방인으로서 낯선 골목길에 들어서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관광객으로 활기가 넘쳤다. 매일같이 도보로 30분쯤 걸리는 숙소와 작업실을 다니다 보니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보이지 않았던 골목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녘 창밖으로 보이는 달, 그리고 백조의 울음소리와 교회의 종소리를 듣게 되면서 점차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었다. 한동안 이러한 여유로운 날들이 반복되자 한편으로 늘 작업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쫓기 듯 바쁘게 작업하던 나로서는 이곳의 생활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무렵 불과 얼마 전에 방문한 폼페이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오히려 그보다 더 현실적인 폐허를 발견하게 되었다. 허물어져 있는 시멘트벽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빨간 벽돌 벽, 그리고 바닥에 그어진 노란 선과 분홍 선 사이 위에 던져져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오래된 비둘기의 죽음. 이런 처참한 현장에서 무심하게 돌아가는 상업광고물. 그리고 살풍경 속에 돋아난 이끼와 잡초… 내게는 숨이 막힐 만큼 놀랄만한 광경이었다. 자주 다니는 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제야 보게 되었는지! 황급히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면서 머릿속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작업화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내가 느낀 이 놀라움을 담아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오랜만에 허허벌판에서 보물을 발견한 듯 흥분하는 나자신을 볼 수 있었다.

<Strausbourg>(2011) 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 작업을 통해 도시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 안에서의 일상에서 발견된 사소한 사건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 안에서 삶과 죽음, 생명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나에게 CEAAC 레지던시는 일상에서의 발견이 주는 감동이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발견되는 감동보다도 클 수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현재도 여전히 나의 작업은 먼 곳을 바라보느라 정작 내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올해는 또 어떤 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 김승영(1963- ) 홍익대 조소과 동 대학원 졸업. 일상과 타자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경계에 관심을 두고 <기억>, <삶>, <소통> 등의 테마를 주로 장소 특정적 설치로 보여주고 있다.



Strausbourg, 2011, 2채널 비디오 설치, 3' 6', 사운드: 오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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