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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박쥐 꿈

김윤철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때, 마치 태몽과도 같은 꿈을 꾸고는 한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작업실 한 가운데 서 있거나 알 수 없는 유물들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기도 하며, 때로는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야 하거나 멀리 도시가 보이는 오솔길을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어느 외딴 섬의 물가에서 죽어있는 파란색의 새를 보기도 한다.
 가끔은 친한 지인이 대신 꿈을 꾸어주기도 하는데, 그중 지인 S는 꿈에 나의 베를린 작업실이 보였고 창문 안으로 세 마리의 박쥐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조심스레 한 마리씩을 두 손으로 잡아서 창밖으로 내보냈는데, 처음 두 마리는 쉽게 잡아서 날려 보냈지만 마지막 박쥐는 한참을 지난 후에야 간신히 붙들 수 있었고 창밖으로 날려 보내려고 하는 순간 박쥐가 자신의 엄지를 꼭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하여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며 꿈을 깨었다고 한다.


좌) 이펄지, 2012-14, 아크릴, 유리, 알루미늄, 포토닉 크리스탈, 네오디움 자석, 모터, 일렉트로닉 마이크로 컨트롤러,
전자기장 발생기, 공기 펌프, 가변 설치
우) 이펄지(세부 이미지)

 그렇게 몇 달 후, 독일의 올덴부르크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신작의 조립과 설치를 위하여 한국에 있는 S를 몇 주 정도 베를린으로 초대하였다. 공항에서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작업실 근처의 베트남 식당에서 오랜만의 회포를 풀고 작업실로 들어가는 순간 그가 벽에 걸린 채 실험 중이었던 세 개의 공기 펌프를 보며 “박쥐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그것이 박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못 했지만, 그 순간 그것이 정말 박쥐와 비슷함을 느꼈고 동시에 많은 예감들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S의 꿈처럼 작업은 갈수록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힘들게 설치를 하는 과정에서 세 개의 아크릴 패널 중 하나에 그만 금이 가며 그 안에 담긴 액체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악몽처럼 세 번째 패널은 그렇게 오프닝 날 작동되지 못하였다. 당시 나는 작업을 한다는 것에 처음으로 크게 상심하였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S와 나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힘든 항해를 한 뱃사람처럼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몸도 지친 상태였다.

 S는 예정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금이 간 패널을 다시 세우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며칠이 지나고 쾰른에서 유학중이던 J라는 후배로부터 작업을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J와 올덴부르크에서 만나 힘겹게 새로운 패널을 제작하였고, 마침내 작품을 뜻한 대로 올린 후 벅차고 홀가분한 마음을 안고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날 밤, J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일찍 잠을 청하러 침대에 누웠다. J가 남은 술을 자작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 즈음에 벨이 울렸고, 위층에 사는 작가 M인 것 같았다. J가 내가 잠을 잔다고 설명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난 후 목이 말라 눈을 떴는데 J가 없는 것이었다. M과 J는 비록 안면은 있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둘이 이토록 오랜 시간을 그것도 새벽에 함께할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J가 땀을 흘리며 들어왔다. 어디 갔었냐며 무슨 영문으로 이렇게 땀을 흘리며 들어오냐고 묻자 그는 M이 잠시 도와달라고 하여 올라갔더니 M의 작업실 안에 세 마리의 박쥐가 들어와 길을 잃고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놀라 어떻게 했냐 물으니 처음 두 마리는 금방 잡아서 내보냈는데 마지막 한 마리가 너무나도 잡기 힘들어서 거의 한 시간 넘게 뛰어다닌 끝에 창밖으로 무사히 내보냈다고 말하며 어떻게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씩이나 박쥐가 들어오냐며 찬물을 벌컥 들이키는 것이었다. 나는 S의 꿈이 또 이렇게 새로운 작업의 태몽이었구나 하며 어느덧 새벽이 온 창가를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김윤철(1970- ) 추계예대, 쾰른매체예술대 졸업.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콜라이드상 수상(2016), 2016년 송은아트스페이스 개인전 등. 전자음악가이자 예술가로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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