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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가요무대

조환



상) 조환, 무제, 2015, 철, 폴리우레탄, 375×732×353㎝
하) 조환, 귀로(歸路)-흔적, 2008, 혼합재료, 240×1200×65㎝


 아침저녁으로 언뜻 찬 기운이 드니 곳곳에서 전시회 소식이 들려온다. 지인들이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관심 있어 하는 이들의 전시이거나 모두 반가운 일이다. 전시회장을 찾아가는 길은 무척 설렌다. 또 어떤 작품을 들고 나왔을까? 그동안의 작업과정이 쭉 그려진다. 기대된다. 또 하나의 재미는 작업이 얼마나 깊어졌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얼마나 큰 공력으로 그 세계가 천착 되어 보일까? 하여튼 즐거운 일이다. 한 개인의 작품을 두 시각으로 구분하여 볼 수는 없겠지만, 작가의 성향에 따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 눈이 호강이다.

 추석 연휴 중 한 잔 술에 취해 오랜만에 가요무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는 가요무대가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KBS 최장수 프로그램이니 나이 든 이들은 물론이오, 젊은 세대들도 들어는 보았을 게다. 이번 가요무대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가슴 속에 신화처럼 숨을 쉬던 남인수. 그 남인수의 고향 진주에서 펼쳐진 추석 특별 무대다. 밤하늘을 밝힌 화려한 무대, 흥을 참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함박웃음으로 열광하는 관중,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라인업, 그 뒤에 음악에 흠뻑 취한 백댄서의 몸짓…. “암! 그렇지, 누구의 고향 진준데! 진주에서는 이 정도는 놀아야지” 역시 특집은 다르다. 한 잔 술에 신이 난다. 예전에 우리 엄니 살아 계실 때, 재외 동포, 국외 근로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하는 가요무대를 놓치질 않으셨다. 몇십 년 간의 똑같은 오프닝·클로징 멘트, 너무 익숙한 노래, 같은 가수, 변화 없는 진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헌데, 내가 술이 얼큰해 세상이 녹녹해 보일 때는 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노래가 나를 소주 한 병 들고 엄니방으로 들어가 2차를 하게 만든다.

엄니 “잘한다! 으, 잘한다.”
“하이고~ 맨날 똑같구먼요. 지겹지 않으오?”
엄니 “들을 때 마다 달라! 아범도 늙어봐.”
“…….”
엄니 “요즘 애들은 옛날 가수만 못해. 노래도 못하면서 흔들기만 하고 겉멋만 들었어.”
“와예? 못하는기 아니라 좀 다르게 하려는 거지요, 달랑달랑 흔드니 예쁘기만 하구먼요.”
엄니 “가사 뜻도 모르고 그냥 읊기만 하지!”
“읍!”

원나라 때 서화가 조맹부는 문가행략(文嘉行略)에서 왕희지는 이러이러해서 그의 글씨가 신품(神品)에 이르렀는데, 다른 얼치기 선비나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들은 아침에 붓을 잡고는 저녁에 이미 큰 재주를 익혔다고 자랑하는 것을 참 어리석다고 했다.
右軍人品甚高 故書入神品 奴隸小 夫 乳臭之子 朝學執筆 募己自誇 其能 薄俗可鄙 可鄙…

 우리 엄니가 요즘 가수들 나무라는 거나 조맹부가 유취(乳臭)라 했으니 젖비린내난다는 말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대간의 시각차이 관습에 따른 어떤 형식들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 인가보다. 우리는 이를 지금 당장 꼭 풀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으로 시비를 가리지 말고 살아가면서 서로 다름을 그냥 인정하면 안 될까?

 2000년 초반, 김동건 아나운서가 가요무대를 떠나며 한 신문기자와 인터뷰한 것이 잊히지 않는다. 기자는 세대가 바뀔수록 가요무대가 잊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데 반해 김동건은 인생은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것이기에 가요무대와 옛 노래는 영속할 거라며 고운봉의 <선창>을 불렀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 그 때 그 부둣가는 내 고향 부산 자갈치였다! 눈물이 났다!


- 조환(1958- ) 세종대 한국화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졸업, Art Student League of NY School of Visual Arts 조소 수학.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1986) 등 수상. 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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