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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In Transit’ 프로젝트 시리즈를 끝내며

이요나


In Transit (Intro),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6


1997년 9월 뉴질랜드에 이민을 온 후 종종 한국을 방문했었지만, 작년 처음으로 작가로서 한국을 찾았었다. 이제는 살아온 나이 반을 넘어 20년이란 시간을 뉴질랜드에서 보내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이질감, 소속감을 잃어버려 외로웠던 시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을 한국이란 문화에 노출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성숙하고 싶었고 또 치유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에서 한국까지 비행 12시간. 네이버 지도에 의지하며 버스, 택시를 타고, 지하철 앱이 가리키는 출구 번호를 따라 걷고 또 걷고. 어떤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하며 보낸 시간은 이동하는 데 소모된 시간에 비해 너무나 미미했다. 몸이 두 개라면, 순간 이동을 할 수만 있다면 3개월이란 짧은 레지던시 시간을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텐데. 몸과 공간 그리고 시간이 주는 제한이 너무 안타까웠다. 

유난히 걷길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곤 시청역에서부터 광화문역, 종각역, 종로5가역까지 걸었는데 지하철만 타고 다녔던 나는 처음으로 이 장소들이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고 이 공간들에 대한 나의 이해가 풍부해 지는 걸 경험했다. 아마도 인터넷의 발전, 비행기, 기차가 당연해진 현대화 시점에 있는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편리해졌지만 상대적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는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평평해진 것은 아닐까. 전시 오프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런 전시다 미디어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무색하다. 몇 장의 사진으로 전시를 다 본 듯이 얘기하는 사람들 또 그만큼 사진이 가진 위력을 알기에 작가들은 아무래도 전시 사진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된다. 또 시간이 흐르면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일까? 초월적인 역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고 싶은 열망일까? 시간이 주는 제한과 공간이 주는 제한을 마치 정복할 수 있을 듯 몸부림을 쳐온 현대화 역사를 돌아보면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 많은데 또한 부정적인 결과물도 함께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In Transit, 대안공간루프, 2016


서울 곳곳 널려있는 파라솔, 여기저기 가리키고 있는 표지판,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 비슷하지만 다른 지하철역들. 많은 시간 이동하며 주변을 관찰하면서 사람과 공간과의 관계, 여러 가지 보편적인 제한들, 그리고 그 제한을 넘어서고자 하는 우리들의 노력과 욕망, 또한 그 결과물을 생각하며 <In Transit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는데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지나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6개월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을 끝낸 후 뉴질랜드로 돌아와 4개월간 작업한 In Transit (Arrival). 

나는 어디로 도착한 걸까? 어느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걸까? 작업하게 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분명 예술을 통해 많이 성숙하고 예술은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해줬다. 어쩌면 나의 정체성에 대한 흑백 적인 질문이 틀렸는지 모른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당신에게 Home의 뜻은 무엇인가?” 라고 누군가 질문을 했는데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Home is where my music is.”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반한 In Transit처럼, 뉴질랜드에 살듯 한국에 살고 한국에서 살듯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에 속해 있는 나는 이 안에서 자유롭다.


- 이요나(1986- ) 오클랜드 미대 석학사 졸업. 대안공간루프 신진작가, 2017 OCI Young Creatives 신진작가로 선정,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등 국내 활동 외 뉴질랜드, 호주 주요 기관 Artspace, Te Tuhi, Dunedin Public Art Gallery, Enjoy Public Art Gallery, Blue Oyster Art Project Space, West Space 개인전 외 그룹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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