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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밤과 낮

정소영


하우스 파티 2016, 싱글 채널 비디오, 8’40”, 사진: 김준성


양지리의 밤과 낮 사이를 오가며 4개월을 보냈다.
해의 극명한 밝음과 달빛의 적막한 어둠 사이에서 머물렀다.
밝음 속에서는 마을의 질감과 색을 관찰하였고 어둠 속에서는 공기의 흐름과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민북마을로 조성된 양지리 마을은 이방인인 나에게 하나의 고요한 무대처럼 보였다. 구획된 길들을 따라 세월 속에 증축되고 변형된 가옥들을 지나면 해가 내리쬐는 그늘 없는 마을 광장이 있고, 다시 직선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철원 평야가 펼쳐진다. 
뜨문뜨문 보이는 마을 주민들은 도시인들과는 다른 시간대에서 다른 속도로 살아간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사라진다. 빛이 있는 동안만 움직이는 연극 속의 주인공과 같다.  
이 무대에서 나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은 DMZ 접경지로 주민들 대부분이 쌀농사를 짓고 비닐하우스에 작물을 키우는 일상의 공간이다. 철원평야에 물을 대주는 토교 저수지를 바라보면 DMZ 지역과 북한의 산능성이가 보인다. 저곳에 북한이 있구나 생각해볼 뿐 자세히 볼 수도 체감할 수도 없다. 겹겹이 차단되어 알 수 없는 저 땅은 지금 철원 양지리에서 일구는 논과 밭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양지리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막을 항상 앞에 두고 사는 것과 같았다. 그 막의 투명도에 따라 종종 관찰이 가능해지고 장소에 동화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실체에 다가갈 수 없다는 느낌을 항상 받게 된다. 그 실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항상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범할 수 없는 장소는 고정된 실체로 대상화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시선- 즉 빛에 따라 때로는 투명하게 때로는 불투명하게 반응하는 막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다. 막의 투명도를 결정하는 것은 빛이다. 아침에서 밤까지 양지리 마을을 밝게 비추기도 하고 깜깜하게 적막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듯이 DMZ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으로 생성한다.
한낮에 논 한가운데 섬처럼 빛나는 비닐하우스는 자기만의 온도와 빛으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간다. 투명과 불투명의 중간 지대로서 비닐하우스는 안과 밖의 개념을 동시에 지닌다. 빛에 반응하여 때론 빛나고 투명해지기도 하고 잿빛이 되기도 한다. 비닐하우스는 그 안에 자라는 생명을 보여줄 듯 말듯 감추고 드러내는 공간으로 DMZ와 양지리 마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유동적인 공간이다. 
<하우스 파티>는 안과 밖, 앞과 뒤의 경계를 해체시킨 비닐하우스 형태의 설치 작업을 양지리 경로당 앞마당에 설치하고 마을 분들과 함께 공연과 파티를 즐긴 시간을 담은 작업이다. 열려있지만 분리되고, 보이지만 비닐로 막힌 미로와 같은 공간과 그 안으로 초대된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낸 이 풍경은 DMZ의 공간적 역설과 중첩되며 일상적 삶과 정치적 긴장이 공존하는 양지리 마을을 떠오르게 한다. 철원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연단, 문학인들을 초대하여 일상의 공간인 비닐하우스가 하나의 무대로 작동하게 하였다. 자연광에서는 투명하게 은근히 존재하던 비닐하우스는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짐에 따라 밤과 낮이 함께 공존하는 듯한 장소로 변모한다. 
경계와 최대한 가까이 지내보려 했던 노력은 결국 이곳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의 거리감을 다시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농촌의 일상 풍경에서, 밤과 낮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비닐하우스의 보이지만 들어갈 수 없는 비닐 막에서, 마을 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들려오는 지난 세월 이야기를 통해 나는 지금 우리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 정소영(1979- )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졸업. 금호미술관, 사루비아다방, OCI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 오프사이트아트선재 국내 개인전 외 그룹전 다수. 프랑스 에르메스재단, 르시클롭, 릴3000 등 국제 그룹전 및 프랑스,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등 유럽기관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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