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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능소화의 삶

이철량

글이 있는 그림(80)



간밤의 소나기를 탓해 무엇하리. 이제 막 활짝 피어난 능소화 꽃송이가 몸체로 뚝뚝 떨어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 삶을 되돌아 볼 뿐인 것을. 어릴 적에 남의 집 담장 너머에 핀 능소화를 그리 좋아했던 아내가소화를 심었다. 능소화는 대지에 열기가 득실거리기 시작하고 먹구름이 간간히 피어올라 장마를 부르기 전까지는 마치 죽은 나무 같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혹한을 견디기 위해 죽은 듯이 서 있지만 특히 능소화 넝쿨은 정말 죽은 나무 같다. 대단히 건조해 보이는 피부가 그렇고, 갈색의 빛깔이 그렇다. 매우 단단해 보이지만 꺾으면 가차 없이 단번에 부러진다. 봄이 되어 꽃나무들의 피부가 화색이 돌기 시작할 때도 능소화는 죽은 듯이 남아 있다가 모든 봄꽃이 화려할 즈음 서서히 마른 몸에서 싹이 솟는다. 아마도 대지가 태양의 열을 품어야 비로소 싹을 키우기 시작하는 것 같다. 꽃은 통꽃이며 빛깔은 분홍으로 매우 고상하다. 화려함이 지나치지 않고 귀품이 돋는 아름다움이 있다. 6월의 진한 먹구름을 먹고 피어나는 꽃송이의 기품일 것이다.





6월을 지나면서 능소화는 갑자기 흐드러지게 핀다. 줄기는 붉고 꽃잎에는 선연한 핏줄기가 섬세하게 흐른다. 이런 능소화가 활짝 피면 마파람이 천둥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찾아올 것을 알려준다. 능소화는 이 소나기와 함께 화려한 젊음을 끝낸다. 정말 불꽃같은 삶이다. 한여름 능소화를 보면서 우리 인생은 무엇을 위해 끈질기게 연명하려 하는지 참 부끄럽기 그지없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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