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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달팽이 걸음> 이벤트-로지컬

이건용

‘제7회 ST전’(1980)에서 선보인 <달팽이 걸음>, 갤러리현대 제공


일반적으로 ‘이건용’하면 행위미술가로 먼저 인식한 부분이 많기에 설치작품이나 신체드로잉보다는 ‘이벤트-로지컬’(퍼포먼스) 중에서 <달팽이 걸음>에 관련된 글을 쓰기로 하였다. 이 <달팽이 걸음>은 2014년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초대개인전 때 제목으로도 사용했을 만큼 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내가 ‘이벤트-로지컬’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1973년 제8회 파리청년국제비엔날레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작가 자신의 신체(몸)가 얼마나 리얼한 예술매체인가를 재인식하며 1975년 이후부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자신의 신체를 매체로 지금까지 80여 가지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이 명칭은 나 자신이 내 퍼포먼스에 붙인 명칭)을 실현해 왔다.

하지만 신체에 대한 사유(思惟)는 엄밀히 말하자면 그 역사가 긴데 내가 다니던 배재고등학교 1학년에는 논리학 학과목이 있었는데 그 수업을 하시는 시간 강사님이 가끔 현대철학을 곁들여 현상학을 이야기하면서 지각, 신체, 관계론 등을 들려주었고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철학까지 이야기했던 것이 당시 매우 흥미로웠다.
결국,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4년 후인 1971년 여름, 한국미술협회전이 당시 경복궁 현대미술관에서 있었는데 거목 하나를 뿌리째 담긴 지층과 함께 옮겨 놓은 <신체항-71>을 실현하였다. 이 작업은 그 후 3년이 지난 1973년 제8회 파리청년국제비엔날레에서 주최 측의 후원으로 프랑스 국립공원수를 기증받아 재차 실현하였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작가 자신의 신체’야말로 탁월한 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이 ‘신체(몸)’에 대한 장기간의 나의 사유는 현대철학사의 측면에서 볼 때 신체, 지각, 관계론 등은 근대 관념론의 치유적 처방이었겠지만 역시 나 자신이 미술가로서 당면하고 있는 ‘그린다는 행위의 문제’와 ‘작가 자신도 세계 내의 존재로서 세계를 지각하는 상호 관계론적 의미’를 어떻게 미술(예술)로 보여 줄 것인가 하는 것을 신체의 측면에서 그 방법론을 천착(穿鑿)하였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바로 이러한 사유의 궁구가 설치 작품인 <신체항-71>이나 <몸(體)-71>, <무제(無題)> 시리즈 등으로 나타났고 1975년 이후로는 <장소의 논리>, <건빵 먹기>, <이어진 삶>, <달팽이 걸음> 등 이벤트-로지컬로 보여주었으며 1976년부터는 <신체드로잉(The method of Drawing)>으로 ‘그린다’는 행위는 그리는 자의 신체와의 관계에서 구체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나의 신체드로잉은 <달팽이 걸음> 이벤트-로지컬을 포함하여, 신체 외의 어떤 보조수단의 효과적인 장치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단순한 매체(분필, 연필, 목탄, 매직잉크, 물감의 붓 등)를 사용하여 그리는 자의 신체 행위만으로서 현상되고 사유 된다는 단순성이 불필요한 예술의 극적 과장성과 허구성을 극복하고 있다.
이벤트-로지컬 <달팽이 걸음>은 1978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낯선 대전으로 이사하여 고생할 때 발상된 것으로 1979년 봄, 대전 남계화랑의 초대개인전 때 행하였고, 1979년 오광수 선생께서 커미셔너를 맡았던 제5회 상파울루국제비엔날레 프레스 오프닝에서 행해져서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행위는 한국이 공식적인 국제비엔날레에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참여시킨 경우이다.

이 이벤트-로지컬 <달팽이 걸음(Snail Gallop)>은 행위자가 맨발로 앉은 자세로 자신의 발 앞에 좌우로 선을 반복하여 그으면서 진행하는 것인데 무수히 그은 선들의 띠 위를 두 개의 발바닥이 동시에 지우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이 행위를 1979년이래 뉴욕, LA, 샌디에고, 덴마크의 실케버그바드, 쾰른, 에센, 베이징, 동경, 요코하마 등에서 실현했고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에서도 행함으로써 언제나 원초적 선 긋기의 소통의 장(場)을 만들 수 있었다.


- 이건용(1942- ) 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제8회 파리청년비엔날레(파리시립미술관), 제8회 까뉴국제회화제(까뉴슈메르, 프랑스), 제15회 상파울루국제비엔날레(브라질) 참여. LIS’79리스본국제전 대상, 이인성미술상 수상. 개인전 37여 회. 現 국립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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